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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vefaith Nov 07. 2020

좋아서 야근하는 사람 있으랴

이상하게도 평온하다고 생각했다. 복닥 복닥 하게 할 일이 많은데도 마음은 조급하기보다 차분한 듯 보였다. 그래, 그럴 때도 됐지. 옛날보다 성장한 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언제까지 작은 일에도 심장 떨려야 할까. 그렇게 잠잠할 때쯤 늘 일은 터진다. 정신없이 일을 마무리하고 나면 그때서야 밀려온다. 새벽녘에 집에 가는 도중에야, 혼자 일어난 그다음 날 아침에야 왈칵 마음이 넘친다. 잠잠할 리 없었다.


매일 같이 급한 불만 끄자고 생각하지만 불은 보란 듯이 튼튼하게 타오른다. 좋은 사람도 있지만 냉랭하게 느껴지는 사람도 있다. 힘을 북돋워주었으면, 방향을 제시해주었으면 할 때 힘도 방향도 크게 제시해주지 못한다. 손해를 보지 않으려 작은 일에도 앓는 소리를 하고 잘잘못을 따지고 다른 이를 바보로 만든다. 답답한 건 그걸 알면서도 장기말처럼 장단을 맞추거나 고스란히 당해야 한다는 것이다. 웃음 속에 담긴 바늘에 찔리고도 웃어야 하는 상황은 징그럽기도 하다.


아주 밉거나 상종을 못할 사람들은 아니다. 현실적인 사람들이다. 다시 똑같은 상황이 와도 그들은 똑같은 선택을 할 것이다. 잘못되었다고 생각조차 하지 않을 수도 있고 알면서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할 테니까. 누군가의 어머니와 아버지, 딸과 아들인 그들은 큰 부귀영화를 원하는 것도 아니며 잘 먹고 잘 살기 위해 그럴 뿐이다.


무척 당연한 일이면서도 이상한 기분이었다. 그들의 저마다의 사정에 내가 없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래도 이 정도인가. 모르는 사람이 전화로 수십 분을 소리를 지르고, 아는 사람은 스스로를 위해 말을 다르게 하는 모습을 목격하고, 누군가는 딸처럼 아끼면서 나는 일하는 땔감처럼 홀대하는 기분이 들 때면 더욱 이상했다. 누군가의 소중한 존재가 때로는 나를 이렇게 헤집어 놓고 난도질한다는 게. 밥도 잘 먹고 잠도 잘 자고, 적어도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고 편하게 살아갈 거라는 게.


하루가 어찌 가는 지 모르는 전화도, 야근도, 사람 사이도 다 괜찮다가도 작은 것에 되려 기운이 빠진다.

주말에 일하러 오지 말라는 그 한 마디에. 무슨 일 하려고 오냐는 말에. 어디서부터 말하면 이해할 수 있을까. 정신없이 오는 전화에, 티 안나는 일까지 내 몫이라 늘 시간이 부족해서라고, 나는 아직 부족한 점이 많고 그 일을 마무리하는데 야근하지 않고서는 될 수 없어서라고 하면 뭐라고 하실까. 그 일은 결국은 누가 대신해주지 않는 일인데 어찌해야겠냐고 되물을까. 누가 좋아서 야근하겠냐고. 주말에 나오면 안간힘을 쓰고 있는 거라고 넘길 수는 없을까.


말문이 막혔다. 걱정이 섞인 말인 줄 뻔히 알면서도 대답할 수 없었다. 잔뜩 화풀이를 하는 전화에도 대화를 포기했다. 안 되는 일을 되게 하고 되는 일을 안 되게 하는 일 앞에서도, 위로를 해주면서도 아무런 해결을 해주지 않을 때도. 알면서. 다 알면서. 정말 모르는 것도 아니면서. 피차 아는 마당이니 더 할 말이 없다.


작은 것에 되려 기운이 빠지는 건 왜일까. 권선징악의 범주에 들기엔 미친 듯이 악하지도 않은 것들에 왜 입이 마르고 마음이 휘발되는가. 그것마저 견딜 수 없도록 지쳐가는 걸 깨달아서인가. 저마다의 사정과 이유가 보이는 건 과연 성장한 것인가. 그 길을 따라가고 싶지 않아 발버둥 치는 건 허상인가. 마음은 갈수록 평온해지는가 지쳐 스러지는가. 절전모드처럼 생각도, 감정을 뒤로하고 앞만 보기도 벅차지만 다채로운 혼란이 가만히 두지 않는다. 아직은 침묵하고 있지만 침묵의 끝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 누가 좋아서 야근하겠느냐고, 누가 좋아서 마음에도 없는 것들을 견디겠냐고 말하고 나면 어떻게 될지 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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