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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vefaith Oct 25. 2020

물구나무 서기, 놀라운 건 지금부터


  참 신기하다. 모두들 물구나무를 서슴없이 하는 것 같다. 나는 일단 빼고. 그저 보면서 감탄한다. 얼마나 멋있나. 질리지도 않는다. 다니던 요가원에서도 한 달 정도 물구나무 자세를 익혀보자고 했지만 다리조차 떼지 못하고 한 달이 지나갔다. 요가를 한다고 해서 반드시 물구나무를 서야 한다는 건 아니지만 궁금하다. 남들이 다 해서 해야 하는 게 아니라, 내가 했을 때의 기분이. 당장은 물음표만 가득하다.


  비단 물구나무만은 아니다. 언제부턴가 시간이 지날수록 못하는 것들의 목록이 그렇게 두툼해졌다. 스스로에게 한계를 긋는 게 많아졌다. 아마 그게 원인이었을 것이다. 경계선 너머의 것들은 덩달아 로망이란 이름으로 차곡차곡 늘어났다. 언젠간 해봐야지 하는 건 마음 편하게 한 소리고, 사실 눈앞에 닥치거나 꽂히지 않으면 그렇게 노력을 하는 사람이 못됐다. 예전에 체육시간의 수행평가였던 앞뒤 구르기를 연습하고, 뜀틀에서 앞구르기를 했던 건 그때의 열정이 지금과는 달랐기 때문일까? 함께 평가받거나 경쟁하지 않아서일 수도 있겠지만, 결국은 내 앞에 닥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미룰 수 있을 만큼 잔뜩 미루는 건 또 그 나름대로 이상한 즐거움이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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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가원이 잠시 정비에 들어간 동안, 한두 달을 내리 쉬지 않도록 다른 요가원을 찾았다. 말끔한 곳이었다. 오래된 곳이지만 낡진 않은 곳에서 어리둥절한 마음으로 자리를 잡았다. 동작은 조금 더 단순해졌지만 그렇다고 쉬운 건 아니었다. 호흡을 훨씬 더 길게 참아야 했는데 숨이 막히고 차오르기 일쑤다. 익숙하지 않은 호흡법에 머리가 어지럽고 때로 아침이라 졸기도 했지만 호흡을 마치고 나면 개운하고 생각들이 가라앉는 잔잔함이 찾아온다. 하지만 제일 흥미가 동했던 건 바로 물구나무서기를 한다는 점이었다. 혹시나 이곳에서 물구나무를 할 수 있진 않을까. 성공한다면 어떤 기분일까. 어느 정도는 물구나무에 혹해 더 열심히 요가원에 나가지 않았나 싶다.


  처음부터 물구나무서기 완성 자세를 한 건 아니었다. 벽을 대고 하는 것부터 시작이었다. 머리로는 당연히 벽이 있으니 자세만 잡으면 다리를 올리면 되는 비교적 간단한 일이었는데 막상 마음은 그렇진 않았다. 늘 안된다고 생각하는 걸 또다시 몸소 실패를 느낄 필요는 없는데. 그런데 이상하게도 같이 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그런지 다리가 벽에 무사히 닿았다. 어찌 됐든 벽을 대고 물구나무서기를 한 것 아닌가! 평생 처음 있는 일이다. 일희일비하는 편이라, 알고 보니 원래 할 수 있었던 게 아닌가 싶어 집에서 해보니 아니나 다를까. 집에선 언제 그랬냐는 듯 잘되지 않았다. 그럼 그렇지.



   한 달에 걸쳐 매일 물구나무를 하다 보니 처음보다 점점 두려움이 잠잠해졌다. 물론 매일 마음대로 잘 되진 않았다. 몸의 상태에 따라, 자세에 따라 5분 넘게 버티는 게 쉽지 않았다. 벽에 두 발을 대고 버티는 게 익숙해질 때쯤 선생님께서는 발을 한쪽씩 떼어보면서 두 발을 떼어보라고 하셨다. 몇 초씩 발을 뗐다가 붙이던 게 한 달 끝 무렵이 되니 두 발을 모두 떼고 버틸 수 있게 됐다. 평일엔 요가원에서, 주말에도 몇 분씩 했던 게 익숙해지는 데 도움이 된 모양이다. 드라마가 심심할 땐 물구나무를 하면 시간이 스릴 있게 간다. 플랭크를 하면 1분이 이렇게 긴 시간이었나 알 수 있는 것 못지않다.


  벽에서 조금 더 떨어진 곳에 머리를 대고 물구나무를 서보기 시작했다. 아직은 완성되지 않았다. 여전히 처음에 발이 벽에 닿고 있었다. 오늘은 할 수 있을까, 오늘은, 이번엔? 이런 의문을 가지고 2주가 지났을 때였다. 그날은 평상시처럼 '언제 될까. 이번엔 될까?'라고 의문을 품는 대신 '해보자'란 생각으로 내심 결의를 다지고 물구나무서기를 했다. 그 생각 때문이었을까. 벽에서 떨어져 물구나무서기를 성공했다. 예쓰! 속으로 얼마나 뿌듯했는지 모른다. 누군가에겐 별것 아닌 일일 수도 있겠지만 내겐 너무나 별일인 일.


  동네방네 자랑을 하고 싶던 생각도 잠시. 운이 좋아서는 아니었나 금방 되돌아보고 의심도 한다. 한 달 반은 성공하지 못했고 겨우 한 번 성공했을 뿐이다. 의심이 무색하게도 다행히 지금까지 계속 다행히 벽에 대지 않고 물구나무를 할 수 있어서 기쁘다. 물론 아직도 벽에서 조금 더 멀리 떨어져서 하는 연습이 필요하겠지만 그래도 지금 이 길이 틀리지 않았다는 건 분명하다. 동시에 마음속에서 '못하는 것들의 목록'에 대한 의심이 생겼다. 과연 정말 못하는 것들일까?



아직 두 다리가 이만큼 자유롭진 못하다

  다른 사람들은 다 해도 내심 나는 못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것을 하나 했다는 것만으로도 우습게도 얼마나 스스로에 대한 믿음과 확신이 생겼는지 모른다. 지금 하지 못한다고 해서 못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조금 더 실험해보기로 했다. 불가능'각'으로 생각했던 것들은 무척 많으니까. 물구나무서기를 성공했을 때 기뻤던 이유는 단순히 이 동작 하나를 성공해서라기 보다, 못한다고, 두렵다고 생각했던 것들에 대한 마음의 빗장이 풀린 개운함 때문이었다. 이제부터가 시작이겠구나 하는 기대도 물론이고. 불가능과 가능의 경계는 만들기 나름이고, 불가능할지 가능할지 모르는 경계에 다가설 때 조금 덜 두려워해도 괜찮다는 걸 보여준 첫 번째 증명이기 때문이었다. 못한다고 생각하고 밀쳐두었던 시간이 아깝진 않았다. 두려움이 꼭 틀리거나 나쁜 것만도 아니었으니까. 때로는 정말 못하는 것들도 있을 테고,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한 일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스스로에게 종종 보여주고 싶다. 안될 줄 았았는데 알고 보니 할 수 있는 거라고.


  거꾸로 나를 들어 올리면 긴장되면서도 평온하다. 바람도 없는데 휘청거리기도 하고 떨리기도 하지만 다시 제자리를 찾을 수 있다. 너무 힘들 땐 다시 다리를 땅에 내려두고 쉬면 된다. 아무 생각을 할 수 없는 구조인 듯하면서도 오만가지 생각을 다 하기도 한다. 이제는 다른 사람에게도 원한다면 물구나무서기를 할 수 있으리라고 응원할 수 있다. (디스크 등에 무리가 되거나 몸이 다칠 수 있는 경우는 물론 제외한다) 대단할 것 없는 사람도, 한 달 반이 지나니 이렇게 말할 수 있게 되지 않았나. 언제의 문제일 뿐이다.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이마저도 하나의 시작일 뿐이다. 당장 물구나무서기도 아직 해보지 못한 다양한 자세가 가득하다. 잊고 있었던 것 같다. 가능과 불가능의 경계라고 거창하게 말하지 않아도 시간이 주어진 한 우리 모두 스스로에게 놀라고 배울 일은 차고 넘칠 텐데. 안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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