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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vefaith Aug 03. 2024

일렁이는 예인(藝人,曳引,銳刃)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 스포일러가 많습니다.


무한도전에서 '아름다운 불륜'이라고 언급했던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잊고 있다가 몇 년 전 영화를 보고선 하루 종일 싱숭생숭한 마음이었던 기억이 난다.  프란체스카 존슨에겐 남편과 두 아이가 있고, 로버트 킨케이드는 내셔널 지오그래픽에 실을 촬영을 온 사진작가다. 그들이 함께 한 시간은 나흘이다. 그녀의 남편과 아이들은 일정을 마치고 다시 돌아올 것이고, 로버트는 다시 떠나갈지를 고민하고 있다. 비가 쏟아지던 날 그녀를 기다리던 로버트와 그걸 알고도 픽업트럭 문을 열 듯 말 듯 열지 못하던 프란체스카의 손끝. 함께 마음을 졸였던 기억이 난다. 프란체스카였다면, 로버트였다면 어떤 결정을 내리는 것이 좋았을까?


드라마 <부부의 세계>의 명대사인 '사랑에 빠진 게 죄는 아니잖아'를 여기에 적용하면 꽤 설득력이 생기는 기분이다. 결국 다 똑같은 불륜이라고 말할지 모르지만 그가 말한 사랑과 이 사랑은 분명 다른 점이 있다. 육체적인 사랑은 공통점이지만 정신적인 사랑의 측면에서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이 다르다. 자신의 일에 충실했으며 감정은 변하지 않고 확고했다. 시간이 증명해 주는 부분이다. 


로버트와 프란체스카는 서로를 존중했고 서로의 결정도 존중했다. 프란체스카는 평생 그가 찾아다녔던 존재였지만, 그녀가 남편과 아이들에 대한 책임감으로 떠날 수 없다고 한 것도 이해했다. 물론 아이가 없었다면 조금 더 마음 편히 떠날 수 있었겠지만 남편 리처드가 아이오와에서 혼자 남아 고통받는 모습은 계속 마음에 걸려 했을 것이다. 함께 해온 시간이 쌓아놓은 정도 있겠지만 아이오와 사람들이 얼마나 폐쇄적으로 사람을 몰아붙이는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로버트의 등장만으로도 수많은 동네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으니.


차라리 애초에 서로에게 거리를 두어서 사이가 깊어지는 걸 막을 수는 없었을까? 그것만은 책에서 확실히 알 수 있다. 이 둘은 결국 가까워졌을 것이다. 나흘 중 언젠가는. 그가 말했듯 그는 사랑을 완벽하게 결정지었을 것이다. 생각해 볼수록 세기의 인연이 따로 없다. 비아냥이 아니라 진심으로. 함께 하지 못했더라도 이런 존재를 만난 것만으로도 감사할 일이 아닌가 싶을 만큼.


영화로 보았을 때는 이 둘의 사이는 끌림과 사랑이라고만 생각했다. 프란체스카는 특별히 남편 리처드를 사랑해서 결혼한 것은 아니었다. 드디어 사랑하는 사람을 만난 것이고, 그게 안타깝게도 이미 가정을 이루고 난 시점이었다고 말이다. 둘이 잘 통하고 마음을 나눌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로버트, 당신 안에는 내가 들춰낼 수 없는 뭔가가 있어요. 나는 거기에 닿을 힘이 없어요. 때때로 당신이 여기 오랫동안, 한 사람의 생애보다도 더 오랫동안 있었던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어요. 다른 사람들은 꿈도 꾸지 못할 혼자만의 공간에 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다고요. 당신은 내게 다정하게 대해 주지만, 나는 당신이 두려울 때가 있어요. 당신을 향하는 내 마음을 제어하려고 나 자신과 싸우지 않으면 난 내 중심을 잃게 되고 말 거예요. 그래서 다시는 찾지 못할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p. 25


하지만 책을 보고 나서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둘의 사이를 남녀 간의, 시기가 좋지 못했던 안타까운 사랑으로만 말하기에는 폭이 좁은 표현이 아닐까. 


이 둘은 모두 예인이었다. 그리고 서로가 갈망하는 것을 가지고 있었다. 로버트에게는 자신만의 확고한 이상형의 척도가 있었다. 지성과 열정. 마음으로, 정신으로 감동시키고 감동받을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 시간을 통해 배우고 어려움 역시 겪어본 연륜이 있는 사람.


누군가를 만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를 알거나 그와 만났던 사람들은 진짜 그를 알지 못했다. 그는 아내와 각자의 삶을 살면서 자연스럽게 소원해졌다. 아내는 자신의 음악을, 그는 그의 사진을 만들고 싶어 했으니까. 그나마 가깝다고 할 수 있었던 여자는 저렇게 자신이 그를 감당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가 쉬이 범접하기 어려운 사람인 것은 아주 오래 묵은 고독이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남들과는 다르게 세상을 보던 어린 시절은 지나, 부모님이 세상을 떠난 이후 그는 혼자인 것이 익숙했다. 군대에서 처음 사진을 접하고, 전쟁의 현장에서 살아 돌아오고, 계속 다양한 곳에 사진을 찍으며 방랑하는 삶이었다. 그의 일부가 되어버렸으니 낯설지는 않더라도  외롭지 않았던 것은 아닐 것이다. 그 역시 누군가를 필요로 했기에 여자나 골든리트리버가 함께 해주기를 마음 한 켠에 떠올렸던 것이다.


하지만 프란체스카 존슨에게는 정말로 그를 끌어당기는 무엇인가가 있었다. 지성적인 면모가 풍겼다. 그는 그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리고 열정이 있었다. 비록 그로서는 그 열정이 어떤 방향으로 향해 있는지, 혹은 방향이라는 게 있기나 한지, 정확히 알아차릴 수는 없었지만.
p.64
미남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못생긴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뭔가 있었다. 그에게는 무엇인가가 있었다. 아주 오래되고, 세월에 약간 시달린 듯한 무언가가. 외모가 아니라 눈빛에 그 무언가가 있었다. 
p.55

서로에 대한 초반의 인상은 시간이 만들어낸 아름다움이었다. 그는 처음에는 그녀를 피사체로서 봤다. 사진을 만드는 사람이니 당연한 일이다. '적어도 예전에는 아름다웠을 얼굴, 다시 아름다워질 수 있는 얼굴'. 그녀가 본 그의 얼굴 역시 오래된 무언가를 담고 있는 눈빛이었다. 


처음에 그는 다리로 가는 길을 물어봤고, 그녀는 길을 안내해 주기 편해서 함께 갔고, 그러다 돌아와 둘은 저녁을 먹게 됐다. 식사를 하면서 그는 어렵지 않게 그녀의 마음 깊숙한 벽을 넘어섰다. 아이오와에서의 삶은 어떻냐는 그의 질문에 그녀에게서 자신이 꿈꾸던 생활이 아니라는 솔직한 답을 들었으니까. 그는 섣불리 위로하지 않았다. 꿈이 있었다는 것 자체가 좋은 일이고,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꿈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쁜 일이라고 짚어줄 뿐이다. 


그는 몰랐을 것이다. 로즈먼 다리에 같이 가게 되었을 때 잘 알지도 못하는 그녀에게 꽃을 준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그저 그의 다정함일지도 모르지만 꽃을 한 번도 받아보지 못했던 그녀에게는 잊지 못할 생애 첫 꽃다발이었다는 걸.


잠시 한 귀퉁이에 붉은 줄들이 그어졌다.
"저는 저걸 '일렁임'이라고 부릅니다."
로버트 킨케이드는 머리 위쪽을 가리켰다. 그러고는 이어 말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너무 일찍 카메라를 가방에 넣지요. 해가 진 후 정말로 멋진 광선과 색깔이 하늘에 나타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단 몇 분간이지만 해가 지평선 아래에 있을 때만 광선이 하늘에서 일렁이지요."
프란체스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초지와 초원의 차이를 중요하게 여기는 남자, 하늘 색깔에 흥분하는 사람, 시를 약간 쓰지만 소설을 그다지 많이 쓰지 않는 남자에 대해 생각했다. 기타를 치는 남자, 이미지로 밥벌이를 하고 장비를 배낭에 넣어 가지고 다니는 남자. 바람 같아 보이는 남자. 그리고 바람처럼 움직이는 남자. 어쩌면 바람을 타고 온 사람.
그가 리바이스 청바지 주머니에 손을 찌르고 하늘을 쳐다보았다. 카메라가 왼쪽 엉덩이 부근에서 달랑거렸다.
"달은 은 사과, 태양은 황금 사과."
그는 중간쯤 되는 바리톤 음성으로 직업 배우처럼 시구를 읊었다.
프란체스카는 힐끗 그를 바라보았다.
"W.B. 예이츠의 <방랑의 노래>군요."
"그렇습니다. 예이츠의 시는 좋지요. 리얼리즘, 경제성, 관능, 아름다움, 마법을 갖춘 시죠. 제 몸 속을 흐르는 아일랜드 기질을 흔들어 깨우는 시들이지요."
p. 91-92


내가 프란체스카였으면 이미 여기서 깨달았을 것이다. 로버트를 좋아하지 않을 수 없다고. 이끌림 자체는 불가항력에 가깝다. 이제는 농부의 아내, 이전에는 영문학도, 문학을 가르치던 선생님이었던 그녀가, 마음속에 문학과 감성을 꽁꽁 숨겨둔 채 살았던 그녀다. 달과 태양, 하늘과 풀, 어스름한 저녁을 아름답다며 예이츠를 자연스럽게 꺼내는 그가 반가울 수밖에 없다. 그녀가 머무는 아이오와에서는 가족을 포함해 누구도 그런 것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 누구도 '고대의 저녁과 멀리서 들려오는 음악에' 건배` 같은 것도 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녀는 다시 예이츠를 인용해서 마음을 전했다. 굳이 그 로즈먼 다리에 가서 쪽지를 압정으로 꽂아둔 것이다. 그가 다음 날 새벽에 읽을 수 있게. ''흰 나방들이 날갯짓할 때' 다시 저녁 식사를 하고 싶으시면, 오늘 밤 일이 끝난 후 들르세요. 언제라도 좋아요.'


로버트가 자신이 인용한 예이츠의 실제 모습과도 비슷한 부분이 많다는 느낌을 받았다. 아일랜드 '기질'이라는 것을 시작으로 그와 예이츠 모두 현대보다는 고대의 문명과 마법에 관심이 많았다. 예이츠가 아주 오래 사랑하지만 이루어지지 못한 모드 곤의 사이가 로버트와 프란체스카와도 닮아있다. 모드 곤이 예이츠에게 평생의 뮤즈였듯이, 프란체스카 역시 로버트의 뮤즈였다. 다른 점이 있다면 예이츠는 그 오랜 기다림 이후에 다른 사람과 결혼을 했다는 것이고, 로버트는 이혼을 한 후 그녀를 만났고 그 후에는 죽는 날까지 그녀만을 기다렸다는 것이다. 



왜 그와 리처드는 이렇게 살지 못할까? 부분적으로는, 오랫동안 지속된 습관의 관성 때문일 것이다. 그것을 그녀는 알고 있었다. 모든 결혼이, 모든 관계가, 그렇게 될 여지가 많았다. 습관은 미리 예측할 수 있게 해 주고, 미리 예측할 수 있는 것은 나름대로의 편안함을 가져다주니까. 
그리고 농사 때문이기도 했다. 끊임없이 관심을 쏟지 않으면 안 되는 병자 같은 것이 농사일이니까. 꾸준히 농사 장비를 바꾼 덕에 과거보다는 노동이 덜 요구되기는 하지만.
그러나 여기에는 그 이상의 뭔가가 있었다. 미리 이렇게 될 거라고 예측하는 것과 변화에 대한 두려움은 다른 문제다. 그리고 리처드는 그들의 결혼 생활에 어떤 식으로든 변화가 오는 것을 두려워했다. 변화를 가져오는 것이라면, 어떤 것도 이야기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섹스에 대해서는 더더욱 그랬다. 에로티시즘은 위험한 것이었고, 그의 사고방식으로는 못마땅한 것이었다.
p.131.
왜 에로티시즘이 없는 상태로 살아갈까? (중략)
여자들은 침실에서 일어나는 일뿐만 아니라 전체 인생에서 차지하는 자기들의 위치에 새로운 기대를 하기 시작했다. 여자들은 남자들에게 시인이 되라고 요구하면서 또 동시에 열정적인 애인이 되도록 몰아가고 있었다. 
여자들은 거기서 모순을 찾지 못했다. 하지만 남자들은 그런 요구가 모순이라고 여겼다. (중략)
그러니 에로티시즘이 섬세한 문제이고, 프란체스카가 인식하는 것처럼 예술적인 형태를 지닌 것이라면, 그것은 남자들의 생활에 파고들 여지가 없는 것이었다. 그래서 남자들끼리만 있을 수 있는 산만하고 편리한 문화가 계속되었고, 그 사이 여자들은 한숨을 내쉬며 매디슨 카운티의 수많은 밤들을 벽 쪽으로 얼굴을 돌리고 보냈다. 
이런 점을 미묘하게나마 이해하는 로버트 킨케이드의 마음 속에는 무엇인가 다른 점이 있었다. 
p. 132-133


흥미로운 부분이었다. 로버트가 프란체스카에게 반했던 지성을 문학을 통해서 엿볼 수 있다면, 그녀의 열정은 낭만과 에로티시즘에서 볼 수 있다. 프란체스카는 자신의 매력과 아름다움을 알고 있고 상대방 역시 그 아름다움을 소중히 여겨주기를 바란다.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나 변화 역시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것을 욕망과 쾌락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나라면 그녀는 낭만과 꿈이 있는 사람이라고 부를 것이다.  그리고 이런 갈증을 느끼고 있던 것은 프란체스카뿐만이 아니었다. 매디슨 카운티의 수많은 여자들이 함께 공감하고 있던 일이었다.


"세상에."
그는 나직이 감탄의 소리를 냈다. 그 모든 감정이, 찾고 생각했던 그 모든 것이. 평생 느끼고 찾고 생각했던 그 모든 것이, 그 순간 거기 다 모여있었다. 그리고 그는 프란체스카 존슨에게서 사랑을 느꼈다. 오래전에는 나폴리에 살았고, 이제는 아이오와주 매디슨 카운티에 사는 농부의 아내, 프란체스카 존슨에게.

그의 감탄이 진심이라는 것을 그녀는 알 수 있었다. 그녀는 그 감탄을 받아들였고, 거기에 휩싸였으며, 그것이 온몸에, 온몸의 피부 구멍에 스며드는 것을 맛보았다. 그녀를 오래전에 버렸던 신이 어딘가에서 다시 나타나 부드러운 손길로 기름을 부어주는 것 같았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그녀는 로버트 킨케이드에게 사랑을 느꼈다. 워싱턴 벨링햄에 사는 사진작가이자 작가이자, 해리라는 털털이 픽업트럭을 모든 그에게.
p. 134-135

로버트는 그런 그녀를 사랑한 것이다. 먼저 길을 직접 안내하겠다고 한 그녀, 먼저 저녁을 청하고 예이츠를 인용하며 그다음 저녁을 청한 그녀, 약속을 취소할 수도 있었지만  그대로 만나자고 한 그녀, 통조림이 아니라 밭에서 난 것들로 따뜻한 식사를 만드는 그녀, 흰 셔츠에 청바지, 부츠를 신은 그녀를, 무릎까지 오는 새 핑크색 원피스를 입고 스스로 만족한 상태로 그의 앞에 선 그녀, 그를 두려워하고 무서워하면서도 도망치지 않았고, 감정에 푹 빠지면서도 동시에 스스로를 잃어버리지 않는 그녀를. 그를 이해한 그녀를.


" 그래요, 이렇게 사는 것은 지겨워요. 내 인생 말이에요. 낭만도, 에로티시즘도, 촛불 밝힌 부엌에서 춤을 추는 것도, 여자를 사랑하는 방법을 아는 남자의 멋진 감정도 여기에는 존재하지 않아요. 무엇보다도 이 생활에는 당신이 없으시까요. 하지만 내게는 지독한 책임감이 있어요. 리처드에게, 아이들에게. 내가 그냥 떠나 버리면, 내 육체적인 존재가 사라지는 것만으로도 리처드에겐 너무나 힘들 거예요. 그것만으로도 그를 파멸시킬지도 몰라요.
p. 166-167

그럼에도 그녀는 가족을 떠나지 않았다. 매디슨 카운티 또는 수많은 밤에 벽을 본 다른 여성들 역시 마찬가지다. 스스로의 인생을 지겹고 불행하게 만들더라도 가족들이 적어도 남의 입에서 수군거림이 대상이 되는 것을 견딜 수 없어서였다. 프란체스카로서는 혼자 행복해지자고 세 명이 불행해지게는 할 수 없다는 생각이었을 수도 있지만, 남편인 리처드를 잘 알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프란체스카 자신 때문이기도 했다.  안나 카레니나같이 될 수는 없었으니까. 나라는 개인의 자유와 행복이 사회 구성원 속의 나와 충돌하는 걸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녀의 딸은 이혼을 했지만 그녀의 시대에서는 특히 결혼이라는 제도와 관습은 한 사람에게 신성하고 절대적인 책임을 요구했다. 한번 발을 들여놓으면, 개인의 생각이나 만족과는 상관없이 법과 사회에 평생을 함께 하기로 약속했으니 결국은 깨기 어렵다. 


구성원의 테두리에서 벗어나면 부적응자로 낙인찍힌다. 어쩌면 로버트와 떠났다면 계속 여행을 다니면서 그와 '고속도로를 달리며, 돛단배를 타고 방랑자가 되어' 도망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반대로 그녀의 가족이나 매디슨 카운티의 사람들이 내셔널 지오그래픽까지 연락을 했을지도 모른다. 로버트 킨케이드라는 사람에 대해서 알고 있냐고. 그 사람이 리처드 존슨의 아내와 함께 도망쳤다고. 게다가 사랑 앞에서는 자유주의는 통하지 않는 영역처럼 보인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책임 있는 자유'란 걸 행할 수 있는 것일까. 사랑 앞에서 상처를 주지 않을 수는 없는 일이라면 이번 생은 어쩔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른 건 아니었을까.



시대에 낙오될 수밖에 없는 그런 사람이 있습니다. (중략) 
어떤 사람은 다가오는 세계에서도 잘 적응하겠죠. 하지만 어떤 사람은, 우리 몇몇은 그렇지 못할 겁니다. 컴퓨터와 로봇이 활개치는 세상에서 말입니다. 옛날에는 우리가 할 수 있고, 우리가 하게 되어있는 일이 있었죠. 누구도, 어떤 기계도, 할 수 없는 일이 있었어요. 우린 빨리 뛰었고, 강인하고 재빨랐고, 공격적이고 끈질겼습니다. 예전에는 용기가 있었죠. 우린 멀리멀리 창을 던질 수 있었고, 맨손으로 싸울 수도 있었어요.
틀림없이 컴퓨터와 로봇이 세상을 운영할 겁니다. 인간은 그런 기계를 통제하지만, 거기에는 용기나 힘 같은 것은 요구되지 않지요. 사실 인간은 이제 필요치 않아요. 필요한 것은 종족을 보존시킬 정자은행이고, 그런 세상이 지금 오고 있습니다. 여자들은 말하지요. 남자다운 남자를 이젠 찾아보기 어려워졌다고요. 그러니까 과학이 섹스의 자리를 대신 차지한다고 해도 별로 잃을 게 없죠.
p. 146-147


로버트는 스스로에게 지은 별명이 많았다. 로버트는 스스로를 '마지막 카우보이'. 고속도로, 방랑자, 돛단배라고 말하곤 했다. 프란체스카는 그를 유성 꼬리에 탄 표범, 누군가는 그를 매나 화살 같다고도, 마법을 아는 사람이라고도 했다. 어딘가에 정착하지 않았고 과거의 가치를 중시하는 그의 모습이 담겨있는 별명이다. 그는 컴퓨터와 로봇으로 대표되는 과학기술은 싫어하는 사람이면서도 그 흐름을 막을 수 없다고 봤기에 '마지막'이라는 수식어를 썼을 것이다. 


이 부분만큼은 로버트에게 동의한다. 우리의 생활이 편리해진 대신 우리는 약해졌다. 로버트가 보면 깜짝 놀랄 인공지능도 등장했고 챗 GPT는 자세히 보면 이상한 구석도 있지만 꽤 그럴듯한 답변을 내놓는다. 그는 과학기술을 통해서 좀 더 외롭지 않은 방랑을 할 수 있었을 수도 있고 여전히 자유와 주체성을 빼앗아 간 불신의 대상이 되었을 수도 있다. 우리가 만든 기술은 인간처럼 완벽하지 않다. 때로 문제가 생기면 우리를 곤란하게 만들곤 한다. 컴퓨터와 로봇이 사람에 비해 속도나 정확도는 높더라도 완전히 넘길 수는 없다. 기술이 발달하면서는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 각자만의 생각이 필요하다. 개인적으로 인간스러움이란 예스러움을 간직하는 것이다. 디지털이 압도적일수록 아날로그 방식이나 감성으로 균형을 맞추려는 노력이기도 하다.  스스로의 생각이나 감정을 그 아날로그 한 방식으로 나만을 위해 쓰는 것도 좋고. 


로버트는 스스로를  `남자다운 남자`의 범주에 들어간다고 할 것이다. 그는 픽업트럭 해리에 하이웨이라는 이름의 리트리버와 함께 세상을 누비고 있지 않나. 한편으로 '남성호르몬'에는 부정적인 입장이다. 그에게 남성호르몬이란 전쟁을 일으키고, 자연을 파괴하고, 서로를 이간질하고 논점에서 벗어나게 만드는 힘이다. 스스로도 남성이지만 남성들을 절제해야 한다고 하는 게 일면 모순적으로 보이기도 했다. 이런 비판은 남성호르몬의 산물이라 불렀던 전쟁을 그가 직접 겪었던 영향도 클 것이다. 전쟁 중에 그가 찍었던 사람들은 온전한 경우가 없었다고 했으니. 절제 없이 몰아붙이는 힘이 사람들을 얼마나 미치게 만드는지 보고 나서 그는 절제된 강인함을 갖추려고 애를 써왔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그때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지진 않은 것 같지만 그나마 카우보이가 마지막이라고는 생각하진 않는다. 


예술 행위를 통해 밥을 먹고 사는 데는 바로 그런 문제가 있습니다. 언제나 시장-대형시장-만 생각하죠. 그리고 시장은 평균의 기호를 충족시키도록 만들어집니다. 많은 수가 거기에 속하니까요. 
p.80-81

그는 내셔널 지오그래픽이 원하는 사진을 알고 찍을 수 있지만 자기만의 사진을 많이 찍기도 했다. 나다운 작품도. 좋은 작품도 반드시 성공과 부로 연결되지는 않는다. 그가 자신만의 사진을 모아 전시를 할 수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 고민이 사라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람들이 좋아할만한 소재와 방식을 선택하는 건 너무나 매력적인 선택지였지만 그는 적당한 돈을 벌 수 있는 정도로만 활용했다.


프란체스카가 잘 알지 못하는 로버트를 우리는 알고 있다.  로버트와 테너 색소포니스트 나이트호크의 이야기도 마음에 깊이 남는다. 50달러짜리 사진으로는 볼 수 없는 멋진 프로필 사진을 찍어주고, 늘 그녀와의 추억이 담긴 <Autumn leaves>를 청해 듣다가, 나이트호크가 그의 긴 이야기를 듣고 프란체스카의 이름으로 곡을 만들게 했으니까. 로버트가 프란체스카에게 이루어지지 않았더라도 그런 꿈이 있었던 건 기쁜 일이라고 말했듯이, 나이트호크도 말해주고 싶었을 것이다. 이루어지지 않았더라도 그런 사랑이 있었던 게 얼마나 기쁜 일인지 잊지 말라고. 



"저녁 시간, 감사했습니다. 저녁 식사도, 산책도요. 모두 다 멋있었어요. 당신은 좋은 사람입니다, 프란체스카. 브랜디를 찬장 앞쪽에 보관해 두세요. 조만간 쓸 일이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p,100


"어머니가 마실 만한 것을 좀 남겨 뒀을까? 대답은 하느님이나 아시겠지. 아까 물었던 것에 대한 대답인데,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지 나는 모르겠어."
그는 찬장을 뒤져서 거의 빈 브랜디 병을 찾아냈다.
"두 잔은 되겠어, 캐롤린. 한 잔 할래?"
"그래."
마이클은 찬장에 딱 두 개 있는 브랜디 잔을 꺼내 포마이카 식탁 위에 놓았다. 그는 프란체스카의 마지막 브랜디 병을 비웠고, 그 사이 캐롤린은 말없이 노트를 읽기 시작했다.
p.222-223


예술가는 자신이 남들과는 다르다는 인식이 곧 정체성이 된다. 그게 자연스럽고 자랑스럽지만 그만큼 외롭고 고통스럽다. 누군가 자신을 진정으로 알아봐 주기를 바라지만 그런 응답을 받는 건 기적 같은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로버트와 프란체스카의 마지막 행보까지는 이해할 수 없었다. 아이들이 결혼해서 가족을 만들고 남편인 리처드가 세상을 떠나고 나서 프란체스카가 한번 로버트를 찾으려고 하다가 중도에 포기했다. 매해 생일에 그와의 추억을 꺼내보는 의식을 하고 그때 쓰던 식탁도, 핑크색 원피스도 고이 간직하면서 말이다.  로버트도 알고 스스로도 아는 그 열정과 낭만, 꿈을 그녀는 일상에서 펼치지 않다가 한 권의 책으로 남겼을 뿐이다. 로버트 역시 일부러 연락하지 않고 바쁘게만 지내고서 유품만 남겼다는 것도 그렇다. 나이트호크에게 수도꼭지처럼 할 말을 매디슨 카운티에 가서 하지 않고 말이다. 


이제 더 이상 그와 그녀 사이를 가로막는 이가 없음에도 과거의 추억만을 곱씹고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을 놓치는 것은 과거에 대한 아련함일까, 현재에 대한 두려움의 산물일까. 그들에게는 팽팽한 끌림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서로에게 가지고 있는 마음에 비해 그 끌림이 느슨해졌다는 게 안타까웠다. 이것이 그녀의 열정이고, 그의 화살 같고 표범 같은 강인함인가. 매디슨 다리에 재가 되어 함께 하는 것만이 최선이란 게.  


정말로 보고 싶었던 건 로버트와 프란체스카가 다시 한번 밥 한 끼를 먹고 찬장 앞 쪽에 보관해 두었던 딱 두 잔 남은 브랜디를 나눠먹는 모습이었다. 프란체스카가 세상을 떠난 후 이 거대한 사연을 알게 된 그녀의 아이들이 마시는 대신. 그리고 그가 마음에 들었던 밥 딜런의  'Girl from the North Country'나 둘이 처음 함께 춤을 출 때 들었던 'Autmn Leaves'을 듣는 것이다. 내셔널 지오그래픽의 어떤 작가보다도 유명하다는 로버트 킨케이드와 매디슨 카운티의 프란체스카 존슨은 어쩌면 <비포 선셋>의 제시와 셀린이 될 수도 있었다. 

If you're traveling in the north country fair
Where the winds hit heavy on the borderline
Remember me to one who lives there
For she once was a true love of mine
for me that her hair's hangin' down
It curls and falls all down her breast
See for me that her hair's hangin' down
That's the way I remember her best
If you go when the snowflakes fall
When the rivers freeze and summer ends
Please see for me if she's wearing a coat, so warm
To keep her from the howling winds
If you're travelin' in the north country fair
Where the winds hit heavy on the borderline
Please say hello to the one who lives there
For she once was a true love of mine
If you're travelin' in the north country fair
Where the winds hit heavy on the borderline
Remember me to the one who lives there
For she once was a true love of mine
A true love of mine (a true love of mine)
A true love of mine (a true love of mine)
A true love of mine (a true love of mine)
She once was a true love of mine

Girl From the North Country  - Bob Dylan


* 이 리뷰는 아트인사이트와 함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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