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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vefaith Oct 09. 2024

셀마 바리톤 색소폰 구입기(악기파손이 소비자 과실?)

* 공익 목적으로  다른 분들이 피해를 입지 않기를 바라며 작성되었습니다.


근래 들어 악기를 하는 동안 중 제일 신기하고 황당한 일이 생겼다. 몇 년 전 야마하 바리톤을 산 이후에 바리톤을 하고 싶어 하는 후배가 생겼다고 한다. 그 친구가 바로 쓸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바리톤을 할 누군가가 생긴다면 너무나 반가운 일 아닌가! 연주회를 할 때 튜바가 2명이 된 걸 보고 반가웠는데 어쩌면 바리톤도 두 명이 연주하게 된다면 얼마나 멋질까 3초간 상상도 해봤다.


야마하 바리톤을 곧 건네줄 생각을 하니 새로 악기를 구매하고 싶은 마음이  다시 돌아왔다. 몇 년 전에 처음부터 셀마 바리톤을 샀다면 하는 아쉬움이 늘 남아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코로나 이후 악기만 그런 것도 아니겠지만 가격이 오르기만 하고 내려가지는 않는 구조인 듯하다. 무슨 바람인지 늘 지나가기만 하던 판매글에 Q&A도 남겼다.


혹시 재고가 있는지 물어봤지만, 역시 재고는 없다고 한다. 그렇구나, 그래도 물어보고 나니까 후련하다. 그렇게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중 악기사에서 연락이 왔다. 전시상품의 셀마 바리톤 3가 있는데 의향이 있으면 와서 확인하러 오면 어떨지 제안주신 것이다. 평일에는 시간을 내기가 어려웠고 저 멀리 부산까지 내려가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주말에 시간을 내어 다녀왔다. 1년 정도 전시가 되어있었다고 하는데 확실히 가볍고, 소리도 편하게 잘 났다. 전시상태였던 것을 고려하고, 현금가 기준인 점을 고려하여 신품보다는 한결 낮은 가격으로 구매할 수 있었다. 1일 이체 한도액에 걸려서 나는 머쓱하게도 3일에 나눠서 금액을 내기로 했다. 마침 갑자기 비가 많이 내리는 날이었고, 테너 색소폰을 매고 오기도 해서 큰 바리톤 색소폰을 KTX에 타고 이동하기에는 무리라고 판단하여 배송으로 요청 두었다. 


돌아오는 발걸음엔 신이 나 있었다. 남해 색소폰 앙상블 대회도 있고, 곧 하반기에 오케스트라 연주회도 있는데 얼른 이걸로 합주를 하고 싶은 마음뿐이었으니까. 이체를 모두 하고 악기사에서는 별도로 연락은 없었는데 택배가 발송되었다는 연락이 왔다. 잘 오고 있나 보다! 한동안 바쁜 기간이라 특별하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이때도 나는 의심해 봤어야 한다. 예전에 바리톤을 샀을 때는 인천이라 그나마 가까워서였을 수도 있지만 직접 배송을 해서 주셨던 기억이 있었는데 말이다.


전 주 토요일에 상태를 보고 화요일에 도착한 악기. 일반 택배로 왔지만 상자는 우선 멀쩡해 보였다. 취급 주의, 고가 등 표시도 되어있었고, 서점에서 책을 사면 오는 것처럼 공기쿠션도 둘러져 있었다. 상자도 멀쩡해 보였고 케이스는 사무실이라 열어보진 못했다. 


당장 저녁 합주부터 써야겠다! 하고 이동해서 드디어 목에 걸어봤다. 넥 부근에 토요일에는 보지 못했던 뭔가 이상한 부분이 있었지만 설마 했는데 소리가 나질 않는다. 대회를 같이 준비하는 선생님께도 한번 봐달라고 하니 어딘지 모르지만 악기가 상한 것 같다고 한다. 합주 때는 그 악기를 쓰지 못했고, 이미 시간은 늦은 저녁이라 악기사의 영업시간도 아니니 내일 연락드려야겠다 싶었다. 우선 어디가 어떻게 된 건지 상태를 파악하려고 악기 점검을 수리점에 요청드렸다. 


처음 합주하려고 할 때 발견했던 부분




택배를 받은 지 하루가 채 되지 않은 다음날 오후, 점검을 요청한 곳에서는 악기가 밸런스가 엉망이라며 어떻게 된 건지 물어봤다. 어제 택배로 받았고 저녁에 악기를 연주해 보려고 들었는데 그리되어 있었다고 말씀드렸다. 살 때부터 문제가 있었냐고 물어보셨는데 그렇지 않았다고 답했다. 적어도 내가 악기를 보았던 지난 토요일에는 괜찮은 상태였다. 


그 영롱하고 예쁜 악기가 다친 것도 속상하고, 대회 등 개인적으로 예상하던 일정에 사용할 수 없었던 것 등 복합적으로 속이 상하긴 했다. 점검한 곳에서는 많이 손상되어서 수리비만 200만 원 이상이 나올 수도 있다고 했는데,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차라리 교체하거나 원만하게 수리를 해서 써도 되는 부분이면 내가 쓰기도 전에 생긴 문제라도 큰 마음먹고 안고 갔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렇게 수리한다고 하더라도 납땜을 새로 다시 해야 할 정도라면, 원상복구는 할 수 없고, 돌이킬 수 없는 손상을 입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상태를 파악했으니 악기상에 연락을 드렸다. 사진도 보내드렸고, 수리비 견적만 200이라고 하는데 그렇다고 하더라도 악기가 정상적이진 않을 것 같다고도 말씀드렸다. 택배사 보험처리도 해달라고 말씀드렸다. 오자마자 악기가 이렇게 큼직큼직하게 손상되어 있으니, 바로 조치를 해주시리라 예상했다. 그러나 그것은 오산이었다. 그때부터 나는 여태까지의 악기 구매 중 한 번도 경험해 본 적 없는 일련의 반응을 보게 된다.


처음에는 회유를 하는 것처럼 보였다. 수리비 배상은 어렵다고 하더니, 보상판매를 제안하셨다. 이걸 쓰고 있다가 신품이 들어오면 조금 저렴하게 사면 어떻겠냐고. 하지만 이런 제안은 다 차치하고, 이렇게 악기가 파손되어 배송된 것에 대한 안타까움이나 죄송함에 대해서는 아무런 말도 없었다. 오히려 택배사는 이렇게 고가의 악기는 택배로 받지 않았을 것이며, 상자가 훼손되어 있지 않는 이상 보험사에게 입증하기는 어렵다는 말을 했다. 그래서? 나는 택배를 보낸 사람이 아니고, 택배를 받기로 한 사람이다. 그렇다는 이유로 판매자와 소비자인 내가 과실이 반반이라는 사유로 넘자 근 전개를 이해할 수 없었다. 지난 토요일에 악기 상태를 보고 구입하기로 했고, 배송은 의무가 아니라 '편의'를 봐준 것이니 반반의 책임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토요일에 악기 상태를 봤다고 하더라도 택배를 보내는 월요일의 상태까지는 내가 정상적이었는지 알 수가 없다. 택배파손이 아니라면 판매자가 애초에 하자가 있는 상품을 보냈을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또한 배송이 의무가 아니라 편의라면, 반드시 편의를 봐줄 필요도 없었다. 배송이 불가능하다고 답하거나, 정말로 편의를 제대로 봐줄 생각이었다면 취급주의가 붙은 일반 택배가 아니라 역에서 만나거나, 직접 배송을 해줬을 수도 있는 일이다.  소비자가 배송받았을 때 망가진 상품을 받았는데 이렇게 반응을 하는 경우는 처음이었다. 


이렇게까지 말할 수 있는 이유는 내가 직접 부산에 가서 악기상에 악기를 반품하고 왔기 때문이다. 그 악기가 더 이상 다치지 않도록 KTX 특실을 타고 조심히 다뤘고, 바퀴로 끌지도 않고 매고만 왔다. 대표님의 해외 일정과(이해한다), 담당자의 권한 상 확실한 답을 줄 수 없는 점(그것도 이해한다)도 이해하지만 전액 환불은 안 된다는 입장에서도 답답하기 그지없었다. 


보상판매를 제시했을 때도 악기상에서는 전혀 손해는 보지 않으려고만 했다. 현재 지급한 금액을 악기상에서 모두 갖고 있고, 언제 들어올지도 모르는 새 악기가 들어오면 그때 악기를 새로 받는 것이다. 그래서 무엇을 믿고 그렇게 기다릴 수 있냐고 하니 영수증을 써줄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그렇다면 나야말로 영수증을 써주면 되지 않냐고 했다. 구매의사가 있다고 하고 아주 최소한의 계약금을 걸고 나머지 금액을 모두 돌려받는 것이 낫지 않겠나?


처음에는 악기를 반품하고 환불해 주면, 새 악기가 들어왔을 때 여기서 꼭 사야겠다는 마음이 있었다. 전시품이 있는 걸 감사히 알려주신 점을 감사하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어지는 대응을 보면서 점점 신뢰가 걷잡을 수 없이 상실되기 시작했다. 


KTX 특실에 탑승한 바리톤 친구

지난 토요일 악기를 부산에 가서 고이 반납드리고 왔을 때의 일이었다. 대표님이 '자체 검증'을 해서 이렇게 손상이 갈 수 있는지 확인해 보고 월요일까지 연락을 주겠다고 한다. 그래서 물었다. 그 '자체 검증'이란 게 어떤 거길래 택배사가 했는지 소비자가 했는지 알 수 있습니까? 그건 대표님만 안다고 한다. 그렇구나. 판매자는 대상에도 없고 택배회사와 소비자의 과실 여부를 검증하는 '자체 검증'이라. 흥미롭기 짝이 없다. 얼마나 공신력이 있는 검증일지.


'자체검증'의 결과

약속했던 월요일에도 아무 말 없더니 어제 장문의 문자로 연락이 왔다. 요약하자면 택배 사고라고 볼 수 없고 소비자의 과실이라고 생각된다. 택배 상자나 케이스는 멀쩡하고, 케이스도 안에 나름 튼튼한 구조물이 있는데 악기가 저렇게 손상되었기 때문에 소비자의 과실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소비자인 내가 택배를 수령한 후 다음날 오후에 연락한 시점도 의심스럽다고 한다. 택배는 실제 배송시간은 저녁 전이었을 뿐, 송장 내역에만 2시로 되어있다. 문자를 보고 나니 있던 정도 다 떨어졌다.


색소폰이 금관악기처럼 튼튼해 보인다고 하더라도, 케이스가 아무리 튼튼해 보인다고 하더라도 악기는 손상될 수 있다. 케이스가 모든 충격을 막아줄 수 있게 생기지도 못했고, 처음에 악기상에서도 케이스 안에서도 악기가 흔들렸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을 하더니 자체 검증에서는 그럴 수 없다고 자체적으로 판단을 한 모양이다. 영업시간이 끝나서 다음날 연락드린 건데 핸드폰으로 연락했으면 됐을 거라나.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악기상의 사무실 번호밖에 알지 못했다. 게다가 내가 악기를 받은 것은 전날 저녁, 상태를 확인하고 연락한 것은 다음날 오후 일찍이었다. 하루가 지나지 않은 상황에서 연락이 늦었다고 시점을 의심할 수 있는 것인가? 나는 그들이 만들어낸 프레임에 '진상 소비자'가 되어버렸나 보다.  3일이, 7일이, 15일이, 30일이 지난 것도 아닌데 단 하루 만에 연락했다고 소비자가 그 사이에 악기를 파손했을 거라고 의심하는 걸 보니 아, 이렇게 누명을 씌울 수도 있구나 싶었다. 내가 떨어뜨려서  악기가 상했다면, 당연히 내 비용으로 고쳐서 썼을 것이다.  나를 이렇게 자의적으로 판단했다는 것은 불쾌한 일이었다.


케이스 없이 악기를 바로 떨어뜨렸을 때 충격이 제일 크겠지만, 악기가 허브와 터미널을 지나면서 어떻게 취급되었을지는 알 수 없다. 취급 주의 물품이어도 무게도 무겁고 큰 부피이기 때문에 던져졌을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 케이스에 넣었던 바리톤을 택시 기사님이 들어주시려다가 땅에 떨어뜨렸을 때만 해도 악기가 일부분 틀어져서 수리를 했었는데, 나야말로 악기상에서 바리톤 색소폰을 많이 수리해 본 적 없는 건 아닌지 반문했다. 목소리도 듣고 싶지 않아 졌다.


흥미로운 부분은 '자체 검증'이다. 본인들도 악기를 다루는 사람들이고 비싼 악기임을 알고 있는데 그렇게 세게 던질 수나 있었을까? 악기를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이라면, 그렇게 던질 수는 없었을 것이다. 택배 사고를 실험한다고 한들 부산에서 서울까지 오가는 과정에서 악기를 다루지 않는 사람들처럼 던졌을지 아닌지도 모르는 일이다. 어떤 환경에서 어떻게 실험을 했다는 것인지, 애초에 답을 정해놓고 소비자 과실로 하려는 건 아닌지, 택배 사고는 검증이 어렵다는 이유로 배제하려고 하는 건 아닌지 의문이라는 점도 말씀드렸다. 택배 보험은 들었는지, 택배 발송에 들어간 정보와 소비자의 과실이라고 확정 내어버리는 '자체 검증'에 대한 자료 일체도 요청해 두었다. 


그런 문자를 보내놓고 악기사는 판매자와 소비자가 협의를 할 수 있게 해 보자며 나에게 제안을 하라고 한다. 내가 제안할 수 있는 부분이 있던가? 보낸 문자는 저혈압 치료제가 따로 없을 것이다. 파손된 악기를 소비자의 책임으로 돌리는 악기상을 어떻게 믿을 수 있을까. 처음에는 비 오는 날 매고 가지 않은 나를 자책했다. 원만하게 합의가 되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다르다. 이전까지 악기를 구입할 때 나는 운이 좋았던 것이다. 이제는 이 악기상과 엮이게 된 것만이 싫을 뿐이다. 자책할 필요도 없다. 어차피 떼인 돈이라고 생각하고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해서 이 상황에 대응할 예정이다. 그들의 자체 검증 결과 상 택배 사고가 아니라면, 물건을 받자마자 악기가 파손된 나는 판매자가 애초에 하자가 있는 악기를 보냈다는 의심을 할 수밖에 없다. 만약 그들이 그랬다면 사기일 것이다.  무조건 소비자의 과실로 몰아가는 과정을 보니 합리적으로 의심해 볼 만하다.


그들을 미워하지는 않는다. 사람으로서 그들은 알지 못하며, 그들의 말과 행동만 봤을 뿐이니까. 손해를 입고 싶지 않은 마음이 투철하고, 필요하다면 남에게 그것을 전가할 수도 있는 역량이 뛰어나다고 생각할 뿐이다. 모든 거래를 이렇게 했다면 안타까운 일이고, 나와의 거래만 이렇게 했다면 왜인지는 묻고 싶다.  


덕분에 여러 가지 할 수 있는 절차를 확인할 수 있었고 단계별로 진행해 볼 예정이다. 어쩌면 소송까지 가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괜찮다. 나는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다. 그래서 얼마의 시간이 걸리든 그건 중요하지 않다. 설사 내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더라도 상관없다. 악기상과 엮인 것은 안타까우나 이 또한 교훈이 될 것이다. 악기상은 평생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응원하는 고객이 ㄷ되었을지 모르는 나를 잃은 걸 전혀 아쉬워하지 않겠으나, 나에게는 평생의 교훈으로 남을 것이다. 악기를 판매한다고 해서, 악기를 사랑하지는 않을 수도 있다는 걸, 그리고 소비자에게 이렇게 믿음은커녕 고통만 전가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아마 셀마 바리톤을 볼 때마다 혹은 부산을 떠올릴 때마다 이 악기상이 떠오를 것이다. 그런 곳이 있었지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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