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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마음대로

[당신과 나에게, 씀]나는 뭐지, 저 사람 빛나는구나 하는 역할인가

by havefaith
마음대로.jpg

정신을 놓아보라고

긴장을 풀고

무대를 즐기라고

하더라


그게 얼마나 어려운지는 모두 알고 있어

웃기지 않아

막상 마음대로 그려봐 하면

막막하잖아

갑자기 흰 종이가 부담스러워지기도 해


말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행동하고 깨닫는건 내 몫이라

하더라


버티고 긴장하고 조마조마하며 살다보니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하는 것에 맞춰 살다보니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바들바들 떨고 있는 친구때문에 같이 눈물 흘리고

마음대로 무대를 펼친 친구에겐 같이 기뻐했어

잘됐다, 진짜 잘됐다. 무대에서 빛이 나는구나

나는 뭐지, 저 사람 빛나는구나 하는 방청객 역할인가


별 것도 아닌 날 별 것 아닌 일에

쉽게 눈물이 마음에 고이게 된 건 얼마 안 된 일이야

글은 담백하게 쓰자고 했는데

자꾸 개운해지려고 내 얘기를 많이 하지는 않았었어

가끔 심심할 때 노래를 부르곤 했지만

마음이 답답해져서 가벼워지려고

자주 부르게 된 것도 얼마 안 된 일이야

과하잖아, 감정이입이


그래, 이해가 안갔어

영화나 드라마에 그렇게 눈물흘리던 사람이 아니야

눈물이 나올까 말까 할 때 장면이 지나가버렸었어

오디션은 그냥 오디션일 뿐이었어

잘하면 보기 좋고 못하면 그냥 안되었구나 했지


나는 슬퍼서 우는 사람이 아니었어

내가 눈물을 흘릴 때는

뭔가 내 뜻대로 안될 때 화가 나서였어 억울해서

그런데 왜 지금은 그렇게 봇물 터지듯 툭툭

나라라도 잃은 것처럼 서럽게

마음이 콕콕 아프게 서럽게 엉엉 눈물을 흘리는지

눈물이 이렇게 가벼웠었나 쉬웠었나


변했다고 했어

여유있고 든든하고 당당해보인다고 했는데

아주 밝은 사람이라고 했는데

속으로는 무너져내리고 있었어

거짓이었을까 그 모든 건

속절없이 깊은 곳으로 아득하게 숨긴 거였을까


갑자기 깨달았어

나는 비겁하게 도망쳐서 그래

시도해보지도 않고 흉터도 없이

차라리 그게 나을 줄 알고 아무 것도 안해보고

잊어버려야지 하고 왔어


그게 마음에 안들어서

그게 싫어서

그게 화가 나서

그게 내 뜻이 아니었어서

그런거였다면 이해가 되지

바보같아 마음이 잔잔한 날이 없었어

이해가 안된 건 머리고

사실은 마음은 알고 있었겠지

마음이 아픈데 계속 토닥이면서 자면서 왔어


그래, 이제는 되었으니

마음대로 해보라는 신호인거야

그 전에 하지 못한 것을 더 이상 후회하지 않도록

마음껏 해보고 가벼워지란 얘기일거야

무거운 생각 어두운 마음을 털어버릴 수 있게

늦었다고 걱정하지 말고 못할까 걱정하지 말고

더 우울한 사람이 되는 걸 보고 싶지 않아

남들한텐 다 잘될거라면서 난 안될거라고 말하는

모순덩어리가 되기도 싫어

훨훨 놓아버리고 내 마음 가는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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