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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나약한

[당신과 나에게, 씀]백치처럼 허공에 삽질만 하누나

by havefaith

무엇 하나 손에 쥔 것 없는 줄
알면서도 덧씌우고 채우다
숨을 잃는 순간에나 아득히 읊조리는
한 마디가 공기가 된 세상

얼어붙거나 펄펄 끓는 바깥세상을 겨우 피하면
나를 기다리는 방 하나
아무리 채우고 쌓아두어도
늘 돌아보면 제자리인 방

숨을 쉬어도 답답함에 가쁘게 쥐었다 펴는 가슴
물을 마셔도 목마름에 갈라지는 목소리
생기라곤 찾아볼 수 없는
이마저도 생명일까 삶일까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 했다고
성난 소리로 악에 받쳐 쏟아내도
매정하게 평온한 침묵만 돌아오는데

그러나 매일 아침
방문을 나서며 문고리를 잡는 손은 알고 있지
가득 채운 안과 밖은 부질없는 것이렸소
하나만 채우면 되는 것을
그대가 있으면 되는 것을
백치처럼 모르는 척 허공에 삽질만 하누나

텅빈 천장 꽂아놓은 삽에
곰보처럼 곳곳이 패여 있고
피곤한 두 눈을 깜빡이다
이미 넘치는 한 마디를 세상에 보탰네
차라리 몰랐으면 좋았을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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