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Lawns 4:05
5 Lawns 4:05.
송파, 이른바 ‘송리단길’에 위치한 카페로,
‘롼스'라고 읽는다.
처음 이 곳을 가보고 싶다고 생각하게 된 계기는 그곳을 연출하신 T-FP 대표님 인스타그램을 통해서였다.
‘입면을 통해 빛을 통제한다’
거추장스러운 어닝과 캐노피 없이.
대체 어떤 공간일까 궁금했고, 마침 근처에 미팅이 있어 잠깐 들릴 수 있게 되었다. 다녀온 때는 작년 늦가을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송리단길’이라는 거리 자체는 가로수길을 제외한 다른 ‘-리단길’들도 그렇듯, 자연스럽게 만들어졌다기보다는 사람들이 모이게끔 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형성된 느낌이 컸다. 유명한 소수의 가게들을 제외하고는 딱히 그 동네의 특색이라거나 그곳만의 차별성이 없고 어딜 가나 볼 수 있는 카페나 음식점들이 모여있다는 생각에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기본적으로 내가 매력을 느끼고 다시 찾게 되는 거리, 동네의 기준으로는 ‘주변 환경과의 관계’가 중요하다. 그곳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특색도 중요하지만,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거나, 동네와 이질적으로 느껴지지는 않는지를 보게 된다.
아무리 멋들어진다 한들 주변과 어울리지 않고 되려 무드를 헤친다면 과연 그게 그 동네를, 사람들을 위한 것일까라는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 물론 그 점을 이용해서 전체적으로 긍정적인 변화를 꾀할 수도 있겠지만 여태까지 내가 지켜본 바로는 그랬다 -
.
그래서 롼스는 과연 그 기준 -기존의 장소(동네)와 잘 어우러지는가- 에 부합하는지도 주의 깊게 보았던 것 같다. 밖에서 느껴지는 구조 자체는 위압감을 느끼게 할 만큼 파격적이지만 마감재의 색감과 느낌이 차분한 웜 그레이 톤이어서인지 기존 건물과 이질감이 들지 않았다. 단연 눈길을 끌 수밖에 없지만 거슬리지는 않는 것이다. 호기심을 불러일으킴은 분명하다. 동네 사람들은 “여긴 뭐하는 데래? 특이하네.”하며 기웃기웃했을 것이다.
이 구조를 사용함에 감탄했던 것은,
동네 카페에 과감하게 도전했다는 부분에서도 그렇지만 단순히 독특하게 만들어 눈길을 끌기 위함이 아니라 그 안에 의미가 있고, 공간 속에서 그 의미를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공간을 디자인할 때 전체 입면에 브리즈 솔레이유 구조를 활용했던 주목적은 빛을 차단하고자 함이었다. 왜 그들은 햇빛이 내부로 들어오는 것을 막고자 했을까.
[ *브리즈 솔레이유 개념은 건물 전면에 부착되어 실내 일조량을 조정하는 장치로, 르 코르뷔지에의 다양한 건축물에 적용되었다. 국내에서는 르 코르뷔지에의 아뜰리에에서 일했던 김중업 건축가가 설계한 서강대학교 본관에서 볼 수 있다. ]
내부로 들어오면 내가 어디에 어떻게 위치하느냐에 따라 보이는 바깥 모습이 달라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의자에 앉으면 확연해진다.
복작복작한 동네 안에서 통유리를 설치하게 되면 햇빛을 내부로 들여오기는 쉽지만 관리가 어려울뿐더러 안에서 창가를 바라보면 마주 보고 있는 상가들이 시야를 가리기 일쑤다.
- 통유리가 큰 이점이 되는 경우도 물론 많다. 예컨대 망원동 colour의 경우는 반지하 입구 전면을 통유리로 연출함으로써 햇빛은 들이면서도 올려다봐야만 상가들이 보이는 구조로, ‘빛 맛집’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통유리가 공간을 살린 케이스. -
그런데 이 곳은 내부에서 밖을 바라봤을 때, 바로 앞 상가건물은 적절히 가려지면서도 멀리 떨어진 동네 놀이터의 정겨운 풍경이 프레임 안에 담기듯 보인다. 어쩌면 우연이겠지만 이 부분이 특히 좋았다. 더불어 얇은 유리창 하나로 겨울바람이 막아질까에 대한 의문이 들었는데 입면 구조 덕에 웬만한 외풍은 차단될 듯했다.
차분한 명도의 가지런한 적벽돌 바닥 마감재와 무거운 무광 블랙으로 통일된 - 그 안에서도 나무, 대리석, 소품 등 다양한 디테일이 살아있는- 계산대는 차분하고 진중한 느낌을 준다. 그러나 밝은 웜 그레이 콘크리트 벽면과 손님들이 앉게 되는 벤치는 밝은 메이플우드로 연출함으로써 한결 편안한 느낌을 주는 섬세한 강약 조절과 대비가 존재한다.
테이블은 요즘 생겨나는 카페들이 그렇듯 낮고 작다. 솔직히 말하자면 전에는 그에 대해 불편함을 느꼈다. 물론 단가도 저렴해지고 회전율도 높아지니 카페 입장에서는 여러모로 좋은 변화겠지만, 노트나 노트북을 가지고 다니며 작업하는 일이 잦은 내게는 그리 달갑지 않았다. 때로는 간단한 작업이라도 할 수 있는 테이블과 콘센트가 있는지가 카페를 찾는 기준이 되기도 했다. 카페를 ‘도구’로써의 공간으로 보았던 것이다.
찬찬히 공간을 둘러보니 사람들은 음악과 커피, 그리고 나누는 이야기에 집중하며 공간의 무드 속에 어우러져 그 순간을 온전히 즐기고 있었다. 최소한의 조명, 차단된 빛과 풍경, 울려 퍼지는 음악, 짙은 커피 같은 것들이 그제야 눈에 들어왔다.
나는 가장 중요한 것, 공간이 담고 있는 ‘이야기’가 무엇인지를 잊고 있었다. 입면 구조에 대한 호기심에 치우쳐 정작 그 공간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에 대해서는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선호하는 커피와 음악 취향이 잘 맞았던 바리스타 두 분이 이 곳을 차렸다. 두 분 다 재즈를 즐겨 듣는데, 그중에서도 Carla Bley라는 뮤지션의 SETET 앨범에 수록된 다섯 번째 곡, ‘Lawns’를 공통적으로 좋아하기 때문에 카페 이름이 되었다고 한다.
그들이 사랑하는 음악, 4분 7초의 ‘Lawns’가 담긴 공간. 차분하면서도 아름다운, 음악가에 의해 세심하게 조율되었을 이 선율이 공간으로 표현된 것이었다.
이 글을 적으면서도 계속해서 반복해 들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음악이 마음에 와 닿으며 비로소 -그곳을 다녀온 지 몇 개월이 지난 지금에서야- 공간이 오롯이 느껴졌다. 그들의 가장 중요한 이야기를 이제야 비로소 알게 되었음에 부끄럽기도, 고맙기도 하다. 그를 계기로 내가 공간을 대하는 기준이 완전히 달라졌으니까.
공간의 분위기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오감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건축 구조물 자체부터 내부를 이루는 구조, 마감재, 가구와 소품, 그리고 그 공간을 구성하는 사람들과 음악, 음료, 그 모든 것들에서.
그러나 공간의 이야기를 알면 그 분위기가 훨씬 더 깊이 있게 와 닿게 된다.
이 곳을 방문할 예정이거나 호기심이 든다면 'Lawns'음악과 더불어 그들이 인스타그램을 통해 추천하는 음악들을 들어보기를 추천한다.
그 음악들이 취향에 맞다면 공간도 분명 마음에 들 것이다. 공간에 울려 퍼지는 재즈음악을 들으면서 커피와 그 순간을 온전히 즐기고, 동네와의 자연스러운 어우러짐도 느껴볼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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