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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둘아이아빠 Feb 11. 2021

둘아이아빠

누구한테 말하는거야?

  설 연휴 첫날에 장모님께서 운동하고 오라며 아침 일찍 아이를 봐주러 오신다 했다. 비록 코치와는 못치지만 오전 7시부터 8시 30분끼지 사람들과 치기로 약속 잡았다. 아내에게 말을 해야할 차례.

  " 혹시 내일 오전에 치러 가도 돼? "

  " 언제, 말하고 나갔다고.. "

  아직 부부싸움의 잔재가 남아있나 보다. 나는 까먹은지 오랜데... 

 허락이라고 생각하고 자기 전 운동복현관문 앞에 고스란히 놓았다. 물론 첫째아이가 잠들기 전까지 아내에게 자유 시간을 주고 내가 맡아 육아를 했다. 저녁 11시가 다 되서야 나도 기절하고 아이도 기절했다.


  눈을 떠보니 6시 40분. 테니스 장비를 챙겨 집을 나섰다. 집을 나오면서 6개월된 아이가 일어나는 듯한 울음소리가 들려 살짝 주춤했지만 첫째아이가 잘 자고 있어 걱정없이 집을 나섰다. 째 아이 한명이라면 쉬이 보겠지.


  오전 7시. 구들과 술 약속을 히면 매번 누군가가 늦는데, 테니스 약속은 다들 정각에 딱 맞혀 나와있다. 이게 테니스의 묘미다. 1시간 반 동안 열심히 쳤다. 역시나.. 1시간 30분은 너무 짧다.

  인사를 하고 테니스장을 나와 파리바게뜨에서 아침 빵과 모닝커피를 샀다. 장모님께서는 팥빵을 좋아하시고 아내는 피자빵이나 슈크림빵을 좋아 한다. 운동을 하고 들어가며 사는 빵은 잔소리의 쿠션 역할에 좋다.


  문을 열고 들어가 현관문에서 양말을 벗었다. 거실 식탁에서 양말을 벗을 때마다  경고를 주었기 때문에 특히나 오늘 같은 날은 룰에 잘 따라주어야 한다. 아내가 예민하기 때문이다.

   " 다녀왔습니다. "

  거실을 지나 바로 화장실로 직행한다. 최대한 모래를 떨어뜨리지 않고 가야 덜 혼난다. 옷과 수건은 어제 자기 전 화장실 앞에 가지런히 준비해 놓았다.


  " 둘째는 6시 50분에 첫째는 7시 반에 일어났네. 엄마는 8시 넘어서 왔더니 피곤하다. 피곤해. "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아내는 혼잣말을 마치 내가 들으라는 것처럼 말한다. 에이 설마.. 눈치 안주기로 엇그제 싸우고 합의를 봤는데 진짜 혼잣말이겠지..

  나도 이에 질세라 아내가 듣지 않게 큰목소리로 혼잣말을 한다.


  " 에고, 어제 저녁 내내 애 재우느라 책 읽느라고 눈이 다 빠지겄네. 11시쯤 잤지 아마? 피곤하다. 피곤해. "


  순간 섬찟. 설마 들었을까 싶어 아내를 봤는데 레이져 눈빛을 쏘고 있다. 싸움의 잔재가 길게도 남아있다.


  씻고 나와 장모님께 갔다. 오늘 너무 감사하다고 인사를 건네고 첫째를 인수인계 받았다.

  " 장모님, 빵 드세요. 좋아하시는 거 사왔어요. "

  " 고마워. 잘 먹을게. 그런데 아까 딸이 그러는데 사위가 물어보면 8시에 왔다고 하라더라. 7시 30분에 왔으니깐 너무 걱정하지 말고.. "

  다행히도 장모님 또한 남편을 쏘아보는 아내의 레이져를 몇번 경험해 보셨기에 최대한 운동이나 자유시간을 보장해 주시려고 한다. 이렇게 키워놓은 자기 탓이라며, 시간이 지나면 다 해결해 줄거라고 그 때까지만 도와주시겠다고 했다.

  " 사위, 시간이 다 해결해 줄거야. 그래도 초반보다 많이 좋아졌잖아. 보내주기도 하고... "

  '장모님.. 결혼 한지 7년이 지났고, 100이 변해야되는 수치라면 7년간 0.1 변했어요. 장모님.. 약 700년이 지나야 자유롭게 나갈 수 있을 것 같아요. '


  빵을 옹기종기 모여 먹었다. 설탕이 잔뜩 뭍힌 꽈배기를 첫째가 먹고, 아직 온기가 남아있는 팥빵은 장모님이 드셨다. 나는 둘째를 안았고 아내는 죠리퐁에 우유를 말고 있다.

  " 엄마, 아침에 빵이 먹기 싫은데, 왜 이렇게 많이 사왔대? "

  " 그걸 왜 나한테 말해. 너 남편한테 말해야지. "

  " 아니, 그냥 그렇다고.. "


  정말이지... 그놈의 죠리퐁...

  싸움의 뒷꼬리가 길고도 길고... 싸움 후가 더 무서운 두 아이의 엄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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