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엔 추운날씨 속에 운동하는걸 매우 싫어했다. 부상의 위험도 높을 뿐더러 땀을 흘리고 나면 덜덜 떨면서 집에 가는 길에 감기 걸릴까 노심초사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뿐이랴 손시리지 발가락 시리지.. 날씨가 따듯해지기를 바라며 운동을 했었다.
지금? 너어무 좋다. 손가락 시리거나 발가락 시린 건 뒷전, 몰래 티나지 않게 운동하기에 너무나 좋은 날씨기 때문이다. 날씨덕에 땀에 흥건히 젖어 있지도 않고 금방 말라 티가 나지 않는다. 땀을 식히기 위해 자동차 에어컨을 틀고 앉아서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
그뿐이 아니다. 자율 출근 복장 규정도 너무 좋다. 면바지처럼 생겼지만 쫀쫀한 바지는 마치 운동복을 연상시킨다.
즉.. 땀에 조금 젖을 윗옷만 준비를 한다면 몰래 테니스를 치는 건 가능하다는 뜻.
오늘은 익산에 미팅이 있다. 좋은 기회다. 회사에는 익산이 하루 일정인걸 알기에 조기 퇴근이 가능하다. 집에도 익산에 다녀오려면 차가 막혀 늦게 들어 온다는 것으로 알기에 시간상 적절하다.
다만 미팅이 짧게 끝나야 하며 올라오는 길이 막히지 않는다면 2시간 몰래 테니스를 칠 수 있는 조건은 완성된다.
그렇게 익산에 가는 차에 올랐다. 3시간 가량 걸리는 거리. 10시 경에 출발했다. 1시에 밥먹고 미팅이면 된다. 기분 좋게 출발했다. 운전하는 시간이 지루할 법도 한데 즐겁다. 휘파람을 불며 내려갔다.
다행히 미팅도 짧게 끝났다. 3시. 올라가려면 6시 정도에 집에 다다르는데, 이게 제일 난감하다. 5시가 조금씩 너머 가면 서울로 들어가는 길은 막힌다. 차에 기름이 간당간당하지만 서울에 입성해서 주유를 해야 할 것 같다.
나비효과라고 들어보셨나, 나비가 팔랑이는 바람이 태풍이 되어 온다는 효과. 지금 주유시간을 조금 아껴 더 간다면 막히지 않게 서울에 입성 할 수 있다.
평택쯤 오자 차가 조금씩 막혔다. 시간은 4시 30분. 기름은 주유불이 벌써 떠 있다. 초조해 진다. 자동차 상식을 총 동원한다. 주유등이 들어와도 40km 는 간다고 했다. 서울까지 충분히 갈 수 있다. 차가 막혔다 뚤렸다 반복한다. 길이 뚫린 구간도 맘놓고 달릴수가 없다. 기름이 바닥이다. 여차저차 저속으로 최대한 브레이크를 아껴가면서 광명에 입성했다. 5시 40분. 안도의 한숨이 나오면서 주유할 곳을 찾는다.
주유를 하면서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 있잖아 익산에서 올라가고 있는데 차가 너무 막힌다. 2시간 정도 예상돼.. "
" 헐, 알았어. "
주유를 다 할 때쯤 장모님께 카톡이 와 있다.
' 걱정하지말고 조심해서 올라와. '
감사하기도 하지만 죄송스럽다.
6시 10분. 아파트 현관에서 멀리 주차를 했다. 혹시나 자동차가 아내에게 발견되면 안되기에... 운동하던 중에 전화오고 못받으면 티나니.. 전화 한통화를 더 걸어 놓는다.
" 올라가고 있으니깐.. 밥 먹고 기다려. "
" 알았어 조심해서 올라와. 오늘 진짜 힘들었어. "
" 고생했네.. 허? "
" 왜? "
차에서 테니스 가방을 챙겨 내리려는 찰나 아내가 아파트로 첫째와 들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진짜 위험했다. 걸릴 뻔했어..
" 아니야.. 얼른 갈게. "
영화에 나오는 스파이처럼 차량 운전석에서 고개를 숙인다. 죄지은 느낌이다. 아내가 들어갔다. 이제는 맘 편히 치고 옷이랑 땀만 잘 처리하고 들어가면 만사 오케이다.
한 번 운동하기 힘드네.. 에휴.. 그래도 기분 좋은 하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