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아이아빠

아내가 서럽게 울던 날 2

by 둘아이아빠

아침 일찍 테니스 채를 들고 나왔다. 오늘 아내가 오전 9시까지만 들어오라고 부탁을 했다. 오늘만은 꼭 9시까지 들어오라고 연신 부탁을 했다.

오늘은 둘째 50일 촬영 날이다. 11시에 촬영을 예약했다. 노원까지 가야하는 대 장정.

나는 촬영하는 자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결혼 전에 비해 살찌고 나이 들어가는 내모습이 사진에 고스란히 담기는 것 같아서 싫었다. 그리고 아이들도 고생한다. 첫째아이 촬영 땐 1시간 내내 울다가 끝났고, 아이도 우리도 기진맥진해 집에와서 뻗었던 기억이 있다. 마지막으로 사진을 촬영해서 너무 터무늬 없는 값을 부르는게 싫다. 아이의 모습이 담겨있기 때문에 협상이 불가능한 거래를 해야된다.

아내가 그래도 촬영하자고 했다. 둘째도 첫째랑 똑같이 해주고 싶다고 했다. '엄마, 나는 왜 사진이 없어요? ' 라고 말하면 오빠는 해줄말이 있냐며 촬영을 예약했다. 가격 협상이 아내도 피곤했던지 가격 대비 괜찮은 장소를 찾았고 미리 결제도 모두 해놨다. 촬영 자체를 싫어하는 남편을 위해 오전 운동까지 허락해 주었다. 단?! 9시까지 들어오기.


마음이 다른 때와 달리 너무 가볍고 좋았다. 얼마 만에 허락받은 내 시간인지, 운동도 너무 재밌게 했다. 문제는 너무 재밌었다는 거다. 너무 재밌다 보니.. 글쎄.. 시간 가는줄도 모르고 쳤다. 테니스를 치다 물마시러 실내에 들어왔는데 시계를 보니 9시 30분. 큰일 났다는 생각에 핸드폰을 먼저 보았다.


부재중 11통.

폭발하고 있는 카톡.


내가 잘못했다. 나도 안다. 이미 엎질러진 물. 부랴부랴 뛰어 집에 도착했다. 이제 비밀번호만 열면 아내와 맞닿을 수 있는 상황. 비밀번호 누르기가 어찌나 무섭고 미안한지, 숨을 깊게 들이 마시고 문을 열고 들어갔다.


" 미안해.. 진짜 미안해.. "


집은 고요했다. 아이 둘 집이라고 하기에 집이 썰렁했다. 어?벌써 갔나?싶은데 그때 안방문이 열리고 아내가 나왔다.

눈이 뻘겋게 붓고 눈물을 거침없이 쏟고 있었다.


" 내가 오늘만은 늦지말라고 했자나. 그렇게 말했는데.. 어떻게 그럴수가 있어? 오빠 맘에는 가족은 안중에라도 있어? "


너무 미안했다. 차라리 화를 냈으면 덜 미안했을텐데, 오열을 하고 있는 아내 모습에 창피하고 불안했다. 나 또한 눈에 눈물이 글썽거렸다. 땀 범벅이 되어 땀을 뚝뚝 흘리면서 거실에 서 있는 나. 태어나서 처음 여자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 진짜 미안해.. 시간 못지켜서 마안해.. 얼른 씻고 올게 안늦게 도착할 수 있어. "

" 헤어랑 화장 예약도 다 해놨는데, 오늘 사람 많다고 늦게오면 못한다고 했단 말이야. "

" 진짜 미안해. 빨리 가자. "


운동복을 벗어 빨래통에 넣고 얼른 샤워를 했다. 땀이 식지 않아 샤워를 하고 나왔는데도 땀이 계속 흐른다. 식탁에는 아내가 골라놓은 와이셔츠와 바지가 있었다. 저걸 입는 순간 땀 범벅이 되리라. 얼른 반바지 반팔을 입고 나왔다. 아내는 방에서 울며 둘째를 보고 있었다. 나는 모든 소품과 첫째아이를 데리고 먼저 집을 나왔다.

카시트에 아이를 앉혀 놓고, 사진 찍기위해 준비해 놓은 풍선이며, 헤어띠며 망가지지 않게 차에 잘 실었다.


" 엄마 데리고 올게. 울지말고 있어. 알았지? "


비밀번호를 허겁지겁 누르고 집에 들어가서 둘째아이를 들었다. 내 몸은 이미 땀 범벅이었다.


" 가자. 가자. 내가 진짜 미안해. 그래도 사진은 찍어야지. "


조금은 안정이 된 아내가 주섬주섬 내 뒤를 쫒아 왔다. '어휴.. 다행이다. 이제 늦지만 말자. '


사실 늦을 수 밖에 없었다. 내가 일단 너무 늦게 집에 왔고 차에 타서 출발했을 땐 10시 반이 넘어가고 있었다. 아이가 타고 있어서 서두르지도 못했다. 운전하는 내내 아내 눈치를 보며 기도를 했다.

' 하나님이 진짜 계시다면, 차가 막히지 않게 도와주세요. '


11시 반. 사진관에 도착하기 전에 헤어샵에 도착했다. 오늘은 진짜 아무것도 안되는 날이구나. 헤어샵에서 약속 시간에 늦었다고 안받아주면, 정말 나는 죽겠구나 싶었다. 주차를 하고 아이 둘을 데리고 샵에 들어 가는데, 생각보다 아내가 침착했다. 더 무서웠다. 무얼까.. 이 긴장감은..


" 정시에 맞춰서 오셨네요. 머리부터 감으시죠. "

" 엥?"

" 오빠 운동끝내고 제때 온적이 없어서 오빠한테 말한 시간보가 아예 예약을 늦게 했었어. "


아내는 울다만 얼굴로 피식 웃음이 나온다. 와.. 진짜 다행이다 싶었다. 차타고 오는 내내 땀이 웃옷을 모두 적셨음에도 아이들 감기 걸릴까봐 에어콘도 못 틀었었다. 순간 몸이 하얘졌다. 식은땀이 주르륵 흐르는 느낌. 온몸에 긴장감이 다 풀려서 주저 앉고 싶었다.

그렇게 아내는 화장과 헤어를 짧게 마치고 나에게 말한 시간보다 더 늦게 예약한 사진관에도 정시에 도착했다.

사진을 찍기 싫어하는 나는 원래 였다면 툴툴대면서 억지로 사진을 찍었을 텐데, 오늘은 정말 적극적으로 찍었다. 기사가 요청하기도 전에 포즈를 취하느라, 오히려 오버 하시지 말라며 기사가 말렸다.


그렇게 사진을 찍고 집으로 가는 내내 너무 졸렸다. 긴장도 다 풀렸거니와 아내와 아이가 모두 차에 타자마자 기절해 있었다.

나한테 결혼오면 울지 않고 행복하게 해주겠다고 약속했었는데, 백미러를 통해 본 아내의 눈가에는 하도 울어서 부은 눈의 잔재가 보였다. 미안하고 안쓰러웠다.


그래도 졸린건 졸린거다. 잠깐 차를 대고 잠 좀 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