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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둘아이아빠 Jan 09. 2021

인생 성장기

배려

  오늘도 나는 둘째아이를 재우고 아내는 첫째아이를 재웠다. 재우는 순간엔 1시간이 걸려 이야기며, 노래며, 책을 읽어줘야 하는 첫째아이가 어렵다. 하지만 재우고 나서는 둘째는 아직도 몇차례씩 깨면 달래서 다시 재워야 하기에 쉽지 않다.

  오늘은 금요일 저녁. 아내에게 인사를 하고 둘째아이가 자고 있는 방으로 넘어갔다. 아내를 위해 배려를 해줬다.


 내가 나보다는 아내를 생각하게 되고, 아내에 대해서, 상대방에 대해서 배려심이 넓어진 건 21살. 친구와의 배낭여행을 하고 나서다.



  친구와 나는 21살. 군대 가기전 마지막 추억을 위해 남해 배낭여행을 택했다. 정말 돈이라곤 몇푼 챙기지도 않고 무작정 고속버스터미널에서 가장 먼 곳으로 버스를 탔다.

 밖에서 숙식을 해결하기 위해 일인용탠트 1개와 휴대용 버너, 라면, 2주간 해먹을 짜장과 카레 그리고 쌀이 전부였다.

  첫째 날에 계획대로 눈에 보이는 자전거 샾에 들렸다. 가장 싼 중고자전거를 3만원씩 내고 구매했다. 큰 배낭을 매고 정처 없이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여행은 자유 그자체였다. 날씨도 봄과 여름의 사이였던지라 덥지도 춥지도 않았다. 바람은 서늘 했고, 목적지가 없었던 터라 몸은 더 가벼웠다.

  하지만 그 자유도 잠시.. 자전거를 탄지 몇 시간이 되지도 않아서 문제가 발생했다. 내 자전거가 부러진 것이다. 고장난게 아니라 페달과 자전거를 연결하는 대 자체가 부러진 것이다. 고칠수가 없었다. 그러자고 다시 자전거 샾에가서 따지기엔 너무 멀리 왔거니와 정확한 위치도 몰랐다.

  그렇게 성하지 않은 자전거를 끄는 나와 온전한 자전거지만 눈치를 봐야 하는 친구와의 진짜 여행이 하루만에 벌어졌다.

  그래도 삼사일, 일주일은 다닐만 했다. 자전거를 끄는 내가 힘들어 보이면 친구가 곧잘 자전거를 바꿔주었고, 걷는 것 자체가 여행이라 생각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매일 야산이나, 바닷가 근처에서 텐트를 치고 자는 통에 몸은 점점 지쳐갔다. 화장실에서 바가지로 몰래 샤워까지 했으니 정말 힘들었다.

  조금씩 같이 여행을 다니고 있는 친구가 얆미워졌다. 자전거 여행을 먼저 계획한 것도 친구였고, 친구의 자전거는 온전한데 내 가방을 들어주지 안고, 나에 대한 배려가 없다고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자전거도 많이 바꿔타기도 했는데도 내가 힘이 들수록 친구에 대한 감정이 나빠졌다.

  여행 10일째. 가슴 속에 품고 있던 불만의 싹이 드디어 터졌었다.

  " 야, 너 너무하다. 내 자전거 이렇게 고장난거 알면 바꿔들어주기도 해야지. 같이 여행다니는데 나만 고생하고 다니잖아. 휴대용 버너며, 침낭이며, 다 내 가방에 있는데 너무 하잖아. "

  친구는 머리를 긁적이더니 이내 말을 했다.

  " 미안해, 내가 생각이 짧았어. 너가 이렇게 까지 힘들어 할지 몰랐네. 그럼 이제부터라도 아예 자전거 바꿔서 타고 다니자. "

  친구는 선뜻 친구의 짐이 실려있는 자전거를 내주었다. 나는 그 자전거를 잠시 벽에 기대놓고 내 짐이 실려 있는 고장난 자전거를 양도했다.

  " 우와.. 자전거 진짜 무겁네. 고생했겠다. 내가 앞으로 짐 바꿔서 들게. 미안해. "

  " 아니야.. 내가 화낼일은 아니었는데 안좋게 얘기해서 미안해. "

  친구는 고장난 자전거를 끌고 먼저 앞으로 갔다. 서로의 불만이 풀렸다고 생각한 나는 몸이 한결 가벼워졌다. 친구를 쫒아 가려고 벽에 기대어 놓았던 친구의 자전거를 타려는 찰나, 너무 창피했었다.


  친구의 짐이 내 짐보다 훨씬 무거웠었다.


친구의 자전거는 망가지지도 않았는데도 짐이 무거운걸 느끼는걸 보면, 친구 짐이 많이 무거웠던거다. 너무 미안해졌다. 얼굴에 부끄러움이 올라왔다. 앞에 가던 친구를 불러 세웠다.

  " 진짜 몰랐어. 너 짐이 훨씬 무거웠네. 너무 내 생각만 한 것 같아. "

  나와 친구는 잠시 서서 서로의 얼굴을 보며 웃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친구는 자전거도 바꿔탈 이유가 없고 짐을 들어줄 필요도 없었다. 그 자체가 배려였는데, 너무 내가 힘들었고 친구가 힘들지 않아 보였다는 이유만으로 나만 생각해 상황을 판단했던 거다.

  다행히 그 날 이후로 항상 미안하고 고마워하면서 내 생에 가장 기억에 남는 여행이 되었다.

(바다 모퉁이에 텐트를 치자 동네아이들이 몰려와 도와 주었다. 텐트를 자갈 위에 치고 자서 허리가 많이 결렸었다.)



  그래서......

  나는 지금 둘째 아이와 같은 방에 있다. 오늘 하루종일 둘 아이와 뒹굴면서 얼마나 힘들었을까? 나 또한 직장에서 일하다 집에 왔고, 또 다른 업무를 했기에 피곤했지만, 그럴 때일수록 상대는, 아내는 더 힘들었을 수도 있기에 더 챙겨주고 싶다. 그 때 그 자전거를 교환했을 당시의 창피함을 더 이상 느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둘째야 그래도 너가 일어나지만 않으면. 아빠도 편히 잘 수 있단다. 도와주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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