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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둘아이아빠 Jan 09. 2021

인생 성장기

동등한 연애

  나는 자존감이 낮은 아이였다.


  다른 이들이 보는 바와는 달리 자존감이 낮은 아이였다. 내 자존감이 낮아 나에 대한 평가가 야박했고 그 야박함 덕분에 남들을 대할 땐 항상 내 스스로를 낮췄다. 예절이 있거나 겸손한 낮춤이 아니라 내 자신은 항상 상대방보다 부족한 사람으로 인지한 낮춤이었다.


  그래도 그 낮춤 덕분에 초등, 중등, 고등학교 2학기 땐 항상 반장 또는 부반장을 도맡아 했다. (1학기 반장과 부반장은 사실상 인기투표였다. 첫인상이 얼마나 좋은지, 얼마나 깔끔하게 옷을 입고 매너가 좋은지가 판단 대상이었다. 2학기 반장과 부반장은 일 시키기 편한 아이거나 반친구들과 두루두루 친한 또는 착한 이미지의 친구가 뽑히게 된다. 난 임원를 전부 2학기 때 했다. ) 

  사춘기가 지나면서 연애가 하고 싶었다. 반에서 공부도 잘하고 항상 깔끔하게 머리를 빗고 다니는 아이를 보통 좋아했다. 하지만 좋아한다고 고백하기는 커녕 매번 말도 못 붙이기 일 수 였다. 내 자존심에 더 상처를 받았던건 반에서 존재감이 없고, 말을 더듬거나, 잘 씻지도 않았던 친구가 나를 좋아했다.


  나에겐 나와는 반대인 친구가 있었다. 1학기 반장을 도맡아 했었고, 반 친구들이 모두 그를 존중하고 치켜세웠으며, 인기 많은 여자친구들에게 러브레터를 받는 친구였다. 운동도 잘했고 옷도 잘입었으며, 공부까지 잘했다. 특히 반에서 발표를 할 때면, 또박또박 자기의 의견을 한치의 망설임 없이 뱉는 모습이 멋있는 친구였다.


  하루는 하교를 하면서 집에 오는 길 이었다. 그 날따라 친구들이 청소당번이거나 방과후 축구시합으로 혼자 집에 가고 있었다. 하늘을 보고 파릇파릇한 나무를 보며 멍하니 걷고 있었는데, 우리 반 인기 1등 그녀가 망설이면서 누군가에 편지를 주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녀를 좋아한 건 아니었지만 나도 몰래 나무 뒤에 몸을 숨겨 지켜보았고, 긴 생머리에 단정한 교복을 입은 그녀는 몸을 베베꼬며 수줍어 했다. 그리고는 뒤돌아 저먼치 기다리고 있는 친구들에게 뛰어 갔다.

  내가 다 설렜다. 부럽기도 했고, 연애한번 못해보고 있는 내모습에 울컥 눈시울이 붉어졌다. '도대체 복 받은 남자놈은 누구지?' 면상이라도 봐야했다. 나무에서 나와 고개를 드는 순간,


  " 봤어? "

  " 어? "

  1학기 반장만 도 맡아한 내 친구였다. '와, 너일줄이야.. '

  " 거절했어. "

  " 왜? 쟤 인기 짱이야. 우리 반에서 일등. "

  " 공부해야 되잖아. 그런데 넌 왜 숨어서 보고 있었냐? "

  " 아니, 타이밍이 이상했어. 그나저나 부럽다. 나는 맨날 요모양 요꼴인데.. 역시 나는 안되나 보다. 나도 너처럼만 태어났었어도.. "


  아까 붉어졌던 눈시울이 조금 더 짖어졌다. 한숨이 나왔다. 내 인생과 다른 인생을 걷고 있다. 격차를 느꼈다. 항상 그 친구에게 좌절의 말을 자주해서 그런지 축 처진 내 모습에 위로를 이었다.


  " 야, 다 똑같아 똑같아. 너가 너무 자신감이 없어서 그래. 자신감을 가져. 뭐가 문제야? 너가 뭐가 모자라다고 매일 그렇게 축 쳐져 있냐. "

  " 아니, 부러워서 그러지.. 나는 거지같은 싱글 인생을 살고 있고, 너는 왕족같은 연애를 하면서도 거절하면서 살잖아. "

  " 흠... 알았다. 그럼 이렇게 생각해보자. "


  친구랑 터덜터덜 걸어가면서 이야기를 나누던 중 갑자기 친구가 멈춰서더니 내 어깨를 잡았다.


  " 너!! 반에서 가장 이쁘고 공부 잘하고 인기 많은 사람과 연애를 해보고 싶은거지? "

  " 응 맞아. "

  " 너는 어떤거 같은데? "

  " 응? 나? 뭐? "

  " 아니 너가 생각하는 너의 모습 말이야. 어떠냐구. "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분주히 집으로 오고 가고 있었고, 날씨는 봄이라 해가 따스히 비치고 있었다. 내 뒤에는 이차선  왕복차선엔 마을버스가 버스정류장을 향해 가고 있었다. 장소가 지금까지도 영상에 남듯 기억에 잘 남아 있는건 내 인생에서 꾀 중요한 전환점 될 말을 친구가 했기 때문이다.


  " 나? 나야 뭐. 자존감 없지, 운동도 걍그렇지, 공무도 걍 그렇지, 뭐하나 잘난거 없자나. 키는 큰가? 키도 작지. 말도 쑥쓰러워서 잘 못하는 쑥맥 그자체 아니겠어? 그나마 착한게 있겠네. "

  " 그래. 바로 그거야. 친구야. 있자나 잿투성이 신데렐라가 왕자를 만나 결혼하는 시나리오는 동화나 소설속에만 있어. 현실에선 왕자는 공주를 만나고, 귀족은 귀족을 알아보고, 거지는 친구가 거지들이지. 너가 너 자체를 귀하게 여기지 않고 거지라 생각하는데, 공주님이 거지를 찾아 오겠어?


음.. 귀한 상대방을 만나려면 너 자신이 먼저 그 위치가 되어야 한다는 거야. 너 자신을 귀하게 여기고 바로 세워야 한다고. 자신감을 갖어. 내가 보기엔 넌 충분히 멋있으니깐. "



  친구가 어깨를 부여잡고 툭툭치면서 한말은 내 인생에 귀감이 되었다.

 그 후로 내 인생이 화려하게 바뀌진 않았지만 내 모습에 자존감을 불어넣기 위해 노력을 했고 그 노력에 댓가는 충분히 보상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 왕자는 공주를 만나고, 공주는 왕자를 만난다. -

(지독히 당연한 말이지만 모르는 이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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