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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둘아이아빠 Jan 12. 2021

둘아이아빠

아빠는 가끔 외롭다

  긴 운전을 해야 했다. 원체 먼 거리에서 미팅이 있었는데, 눈까지 한없이 와서 예상했던 운전에 두배를 했다.


 운전을 하고 있었는데 아내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 이번주 주말에 처가에 가서 눈썰매 타려는데 괜찮아? "

  " 토요일에 아이스하키 있는데.. "

  " 빠져도 되잖아. 쏠매 다녀올게. "

  " 그럼 시간대 평일로 바꿔놔. 안빠지게. "

  " 왜 화를 내? "

  " 화 안냈어. 그냥 기운빠져서.. 내가 시키는 건 항상 뒷전으로 미뤄도 되잖아. 너무 쉽게 생각하는거 같아서.. "

  " 그럼 안가면 되잖아. "

  " 아니야. 시간 내가 전화해서 미뤄볼게. "

  " 알았어. 짜증내지마. "


  아이스링크에 양해를 구하고 시간을 바꿨다. 아내에게 전화했다.

  " 바꿨어. 수요일 2시래. 괜찮아? "

  " 나 그때, 아이랑.. 어디 가는데.. "

  " 아, 그럼 직접 전화해서 바꿔. "

  " 알았어. 지금 바쁘니까 끊어. "

  속상 했다. 속상하다고 생각하다보니 윗집에서 하수관 파열로 한 벽면이 곰팡이가 슨 모습이 기억났다. 아파트 관리사무소에 전화를 걸었다.


  " 저기 진짜 죄송한데요. 4개월전부터 전화를 드렸고, 저희 집 방문해서 사진을 찍어간 것만 6번입니다. 일이 바빠서 까먹고 띄엄띄엄 전화하니깐.. 대처를 안해주시는 것 같아서요. "


  옷방에 곰팡이가 여름 말부터 피어서 컴플레인을 걸어놨었고 집에 방문한 사람만 6명이다. 다 처리해준다고 해놓곤 매번 까먹는지 또 전화를 하게 만들었다.


  " 윗집도 피해를 보셨다고 하면서 매일 찾아간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수리 다 받고 벽지를 해주셨다고 하는데, 저희는 말씀대로 기다렸더니 4개월이 지났네요 심하지 않으세요? "

  " 죄송합니다. 제가 담당 중에 제일 높은 사람인데, 제가 책임지고 처리하겠습니다. 지금 방문해도 될까요? "


  아내에게 얼른 전화를 돌렸다. 아내가 전화를 받았다.


  " 왜? 나 바쁜데, 꼭 통화 해야돼? "


  순간 화가 치밀었다.


  " 아, 진짜 화딱지 난다. 집에 곰팡이 생겨서 처리하는거 나만 해야돼? 나만 이집에 사니? 아이들 세탁이나 설겆이할 때 아무렇게나 막 닦는다면서, 곰팡이 숨으로 들어가는건 신경 안써? 급한 일이고, 아저씨 곰팡이 보러 오신대. 어딘지 설명은 해줘. "


  아내가 아이랑 있는 모양이다. 전화기 건너편에서 입을 꾹 다문채 아이 때문에 참는 아내의 모습이 그려진다.


  " 알았어. "


  뚝.. 전화를 끊었다.

  눈발은 거세지고 있다. 1차선 버스 전용차선에선 엠뷸란스와 레카차가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집에 일찍 들어가긴 글렀다. 창문 밖에 하늘을 쳐다 본다. 눈발이 거세 뿌옇다. 티슈 휴지를 꺼내 앞 유리와 옆 유리를 닦아 냈다. 가슴이 공허했다.


  내가 챙길 사람은 많고, 내가 챙겨야 하는 건 많은데, 정작 나를 챙겨주는 사람은 없었다. 눈발은 휘날리고 가슴은 먹먹했다.


  " 지금 복귀하고 있는데, 눈 때문에 차가 많이 막힙니다. 제 시간에 못 들어 갈 것 같아요. "


 회사에 전화를 걸었다. 나도 모르게 전화기에 허리를 굽신 거리며 양해를 구한다. 집에 혼자서 둘을 보고 있을 아내가 걱정되어, 장모님께 전화를 걸었지만, 부재중이다. 아파트 관리 사무소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 마른걸 보니, 예전에 그랬던 것 같습니다. 번호를 담당자에게 전달해 드릴테니, 도배 받으세요. 어찌되었던 조치가 늦은 점 죄송합니다. "


 '그래도 하나는 해결했구나.' 아까 괜히 화낸거 같아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너무 피곤해. 한시간 후에 통화하자. '

  어제 둘째 아이가 잠을 몇차례 깼다. 덕분에 아내가 잠을 못자 피곤했다. 체력이 아내보다 조금 괜찮다는 이유로 요 근래 새볔 육아를 하고, 아내가 미안해 할까봐 피곤한 티도 못냈었는데..


  차가 눈길에 조금 밀렸다. 위험할 뻔했다. 서행하는데도 브레이크를 자주 잡다보니 밀렸다. 옆 차가 창문을 열고 삿대질을 하면서 욕을 쏟아낸다. 받아줄 기운조차 없어서 앞만 보고 운전 한다. 사고나서 내가 아프면 누가 우리 아기들 돌보려나 싶어 정신 똑바로 차린다.


  오늘도 둘째가 잠을 설칠거란 생각에 걱정이 앞선다. 앞이빨은 도대체 언제 나는지 원. 원더위크, 원더위크 하는데 그건 언제 끝나는지.. 잘 시간도 되지 않았는데 벌써 피곤하다. 잠이 모자란지 옆통수를 자꾸 뎅뎅 무언가가 때린다. 빨리가서 쉬고 싶다.


  예상했던 바 보다 집에 일찍 왔다. 차에 내려 집으로 올라가는 길에 아이들이 눈을 굴려 눈 사람을 만들고 있었다.  둘 육아에 시달려 나갔을리 없으니, 첫째아이를 데리고 나와야 겠다는 의무감이 생긴다.

  '아, 예전에 우리 아빤 정말 대단하셨겠구나.. 아빠도 많이 외로웠고 힘들었겠다. '

 

  집에 현관문을 열자 '아빠' 하며 아이는 뛰어나오고 아내는 아직 다 안풀렸는지, 둘째 아이를 안고 아무말도 없이 오가고 있었다.


  오늘은 무척이나 아버지가 생각 나는 하루다.

  " 아들아 ! 밥 먹고 나가자! 아빠랑 눈 사람 만들어야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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