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타투이스트 해빗 Jun 07. 2020

타투이스트가 되는 방법: 7. 멘토를 찾아라

타투이스트가 되는 방법 제1부 7.

7. 멘토를 찾아라


 멘토(mentor)가 있다는 것은 어떤 분야나 상당히 중요하다. 앞서 많은 경험을 한 사람의 노하우를 얻을 수 있고,  활동 방향에 참고가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새로운 일을 할 때 책을 읽거나 검색을 해보기도 하고 지인들의 조언을 참고하기도 한다. 내가 바라보고 따라갈 수 있는 멘토가 있다면 더 생생한 배움과 경험의 지표를 얻을 수 있다.

 독학으로 대부분의 경험을 채워야 했던 나는 20년 이상 경력의 훌륭한 멘토를 만나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느낄 수 있었다. 공식적인 스승과 제자의 관계는 아니었지만 때로는 손님으로, 때로는 동료나 후배로서 꾸준한 교류를 이어왔다.



사바도의 타투샵, 일본 나고야


 일본 나고야의 타투이스트 `사바도`는 오랜 경력을 가진 세계적인 아티스트이다. 1993년에 일본 최초의 로드 샵(road shop)을 오픈하였고, 세계 각국에서 많은 타투 활동을 하였다. 특유의 재치 넘치는 뉴스쿨(new school) 스타일의 타투이스트이다. 또한 타투 머신뿐 아니라 모든 타투 장비와 용품을 스스로 제작하여 사용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사바도는 이미 한국에서도 상당히 인지도가 있었다. 2010년 타투 행사에서 작업하는 모습에 처음 반했고, 2011년에 직접 타투를 받으러 나고야에 방문한 것이 첫 인연이었다.

 1인 타투샵으로 운영되고 있었는데 규모는 작지만 그의 손길 하나하나가 담긴 인테리어가 인상적이었다. 스튜디오는 전체적으로 붉은색과 흰색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직접 만들어 낸 가구와 페인팅, 역사가 묻어나는 소품들로 구성되어 그의 세계로 들어가는 듯한 느낌을 준다. 심지어 작업대와 베드도 직접 제작한 것이었고 모든 전기선들은 동선에 방해되지 않게 천장으로 향해 있었다.



 



 처음 상담을 받으면서 프리핸드(freehand) 타투를 알게 되었다. 사바도는 사전에 상담을 하지 않고, 당일 아이디어와 작업 부위를 듣고 곧바로 짧은 스케치를 한다. 그리고 피부 위에 펜으로 도안을 그려서 작업을 한다. 나로서는 매우 놀라운 작업 방식이었다. 아마 그동안 많은 그림을 그리고 작업을 해왔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작업 시작 전 용품을 세팅하는데 서두름이 없었고, 루틴대로 여유 있게 준비하는 모습이었다. 손이 가는 모든 용품에는 일회용 비닐이 씌워졌고 작업대에는 기포 하나 없이 깔끔해질 때까지 세팅을 반복했다. 신중하게 머신을 결합하는 모습에 장인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손님의 모든 소지품은 정해진 공간에 보관하게 되어있었다. 시계나 장신구, 휴대폰도 모두 꺼내 놓아야 했다.


 작업은 1세션(회)에 4시간 전후로 진행된다. 작업비는 고정되어 있기 때문에 한 번 안내하면 더 이상 돈 이야기를 할 필요가 없었다. 휴식 시간 없이 연속으로 빠른 작업을 하는 방식이었다. 대단한 집중력이었다. 머신은 굉음을 내었고 다른 타투보다 상당히 고통스러웠지만 그만큼 빠르고 정확했다. 만족스러운 결과물과 그의 경력에 비해 가성비가 넘쳤기 때문에 더욱 좋았다.





 우리는 보통 영어로 대화했기 때문에 서로 짧고 정확한 단어와 문장을 사용했다. 첫 만남에는 작업에 방해가 될까 많은 대화를 나누지 못했지만 이후 여러 번 나고야를 방문하면서 친숙해졌다. 나는 많은 질문을 했고 그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많은 이야기를 해주었다. 여러 해 동안 작업을 받았기 때문에 타투 시작부터 꽤 많은 경험담을 들을 수 있었다.

 내가 처음 해외로 일하러 가기 전에도 많은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특히 공항 출입국 관리소에서 타투이스트임을 속이지 말고 당당하게 이야기하라는 말이 생각난다. 한국과 일본은 아직도 법제화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해외에 나갈 때 장비를 소지하는 것과 타투이스트의 신분 자체가 문제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었다. 공항이나 해외에서 거짓말은 신뢰도에 큰 영향을 끼친다.




 2016년부터는 사바도가 한국의 내 작업실에 게스트로 방문하게 되었다. 그는 보통 초청이나 사업적으로는 해외에 나가지 않고 친분이 있는 경우에만 게스트나 행사에 참여한다고 했다. 내가 처음 초대를 했을 때 한국은 가까운 거리라며 흔쾌히 수락을 했고,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내 공간에 나의 멘토가 방문하는 것은 보통 영광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며칠 전부터 잠을 못 이루었고 공항에 마중 나갈 때는 긴장감과 설렘에 심장이 계속 빠르게 뛰었다.




 게다가 캔버스에 페인팅한 배너를 선물 받았는데, 타투이스트가 된 이후에 그보다 행복한 순간은 없었던 것 같다. 아마 평생 나의 가보로 간직하게 될 것이다.

 타투이스트로서 이외에 페인터로서도 영향을 많이 받게 되었다. 그의 그림을 연구하고 선이나 채색을 수없이 관찰하며 공부했다. 그러면서도 맹목적으로 따라 하기보다는 나만의 표현 방식을 덧입히려는 노력도 함께 했다.


 사실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타투이스트로서 자격지심이나 열등감이 있었다. 전문적으로 배우지 못했고 늦게 시작한 만큼 스스로 부족함이 많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또 상어라는 단일 소재를 많이 그렸고 나의 손님들도 대부분 상어를 원했기 때문에 다양성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바도는 내 작업실의 그림들을 보면서 `l like your sharks.`라는 말을 해주었고 나만의 스타일을 유지하는 게 멋지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 누가 뭐라 해도 나에게 가장 크고 훌륭한 멘토의 한 마디는 큰 울림이 있었고 감동적이었다.


 여러 지인들의 도움으로 작업 일정과 여가 시간을 무사히 함께 보낼 수 있었다. 많은 배움과 더불어 진한 추억을 남긴 잊을 수 없는 시간들이었다. 이후에도 코로나19가 발생하기 전인 2019년까지 매년 나의 작업실에 방문해 주셨고, 끊임없이 좋은 모습을 본 받으려고 애써왔다.




언쉐이큰 스튜디오 홍대


 2018년 초에 사바도가 메인 아티스트로 참여하고 포스터 디자인을 맡은 치앙마이 타투 페스티벌에 참여하게 되었다. 나는 무조건 따라나섰고 태국 여행은 처음이었기 때문에 아주 즐겁게 여행했다. 또 운 좋게 타투 콘테스트에서 심사위원을 하는 경험도 할 수 있었다.

 2019년에는 사바도가 여권 문제로 참여하지 못했지만 나는 태국에서 처음 트로피를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그리고 2020년 초에는 주최 측의 배려로 그의 옆 부스에서 함께 일할 수 있는 기회도 받게 되었다.


 이제는 한국이나 해외의 많은 아티스트들이 사바도와 나의 관계를 알고 있다. 그는 아티스트로서 나의 정신적 지주이고 희미했던 앞길에 방향을 제시해 준 멘토이다. 제자가 스승을 따라가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다. 일적으로뿐만 아니라 인생에서 좋은 스승이 있다면 배움 이상의 좋은 경험을 누릴 수 있다. 내가 걷고 싶은 길을 앞서서 개척했던 나만의 좋은 멘토를 찾아보자.



치앙마이 타투 페스티벌 2020에서


작가의 이전글 타투이스트가 되는 방법: 6. 어디에서 어떻게 배울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