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부 타투이스트가 되는 방법
1. 나는 왜 타투이스트가 되고 싶을까
타투를 받기로 결심한 건 군 전역 이후 2006년 초반의 겨울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흑인 음악을 즐겨 들었기 때문에 흑인 뮤지션들의 몸에 새겨진 타투도 멋있게 보였다. 피부 톤이 어두운 그들이기 때문에 타투는 대부분 블랙 앤 그레이(black & gray)나 트라이벌(tribal), 레터링이 많았다.
그래서 나도 그런 느낌의 타투를 원했다. 많은 곳을 찾아보고 상담해봤지만 그 당시 주문 제작(Custom Order) 디자인을 내 마음에 들게 해줄 곳이 많지 않았다. 작업실도 대부분 원룸이거나 주거 목적의 장소였다. 뭔가 신뢰가 가지 않았고, 포트폴리오가 눈에 띄는 작업자를 찾기 어려웠다. 하지만 남들과 같은 디자인을 타투로 하고 싶지 않아서 꽤 오랜 시간을 찾아다닌 기억이 난다.
안산에 작업실이 있는 타투이스트 분을 알게 되었고, 바로 예약을 한 뒤 먼 길을 찾아갔다. 홍대 출신이라고 소개가 되어있고, 작업물도 직접 디자인한 것이며, 일률적이지 않았다. 더 인상적이었던 것은 목소리가 아주 좋으셨고 신사적인 분이었다. 심지어는 배웅을 할 때 90도로 인사해 주시는 모습이 신선한 충격이었다. 타투이스트나 타투가 있는 분들을 많이 만나본 것은 아니었지만 매우 다른 느낌이었다. 평생 남을 흔적을 자신에게 받을 사람에 대한 존중 같은 것이 느껴졌다.
한 가지 더 고마웠던 게 있다. 나는 트라이벌 장르를 바탕으로 한 문양과 글씨를 새기고 싶었다. 하지만 그분은 명암이 있는 블랙 앤 그레이로 더 힘 있는 디자인을 만들어 줄 수 있다고 했다. 그 자신감에 매료되었고 설득되어 그렇게 나는 만족스러운 첫 타투를 받을 수 있었다. 내가 생각한 의미에 어울리는 디자인까지 더해졌기 때문이었다. 결과물과 더불어 신뢰할 수 있는 사람에게 작업을 받을 수 있었다는 게 특히 좋았다.
이후 두 번 정도 다른 타투를 추가로 받았고 가끔씩 생각나면 연락하고 찾아가게 되었다. 첫 타투의 경험을 인상 깊게 남겨준 그분에게 지금도 고마운 마음이 있다.
그때 당시에는 내가 타투이스트가 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다. 아니 안 했다. 타투이스트는 뭔가 선택받은 이들만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또 남의 몸에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긴다는 것이 상당히 부담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참 멋있어 보였다. 좋아하는 일을 자유롭게 하고 내가 만들어낸 것을 누군가 오래도록 지닌다는 것이 말이다.
좋은 타투이스트가 되고 싶다면 좋은 타투이스트를 먼저 만나봐야 하고 좋은 타투를 받아봐야 한다. 타투는 사람이 사람에게 하는 행위이기에 기술과 디자인만을 내세우는 것은 결국 공허하다. 많이 찾아보고 알아본 만큼 타투에 대한 첫인상을 좋게 남긴 것은 행운이었고, 그 이후로도 좋은 타투이스트들과 타투 애호가를 만나게 되는 시작점이 되었다.
연필이 짧아질 수록 경험은 늘어난다
타투를 받기 시작하면서 타투에 대한 관심이 더욱 강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주변에 타투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내가 느낀 것을 이야기해 주고 싶고, 무슨 의미가 있고 왜 했으며, 다음에는 어떤 타투를 하고 싶다는 등 소통과 공유에 대한 갈증이 생겼다. 친구나 지인들은 처음에는 신기한 듯 들어주었지만 결국 그들의 관심사는 아니었기에 대화가 오래 이어질 수 없었다.
어렸을 때부터 만화 그리기를 좋아했던 나는 그 이후로 조금씩 도안이랍시고 취미로 그리기 시작했다. 보여줄 사람이 없으니 피드백도 없었고, 내가 잘 그리는지 아닌지도 알 수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공통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을 모으고 행사를 주최해왔던 일들이 이런 갈증에서부터 비롯되었던 것 같다.
복학 후 대학교를 다닐 때에도 교내에 타투가 있는 학생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나를 신기해하거나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많았고, 심지어 무서워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스스로는 특별하다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일반 사람들 눈에는 내가 이상하게 보일 법도 했다. 심지어 옷도 그 당시에는 대중적이지 않던 힙합 스타일로 아주 크게 입고 다녔으니. 나는 영어학을 전공했는데 외국인 교수님 중에 타투가 있는 분이 있었다.
"난 여기 어깨에 스파이더맨 타투가 있고 스누피도 있어. 내가 좋아하는 캐릭터를 타투로 하나씩 받고 있지."
타투를 좋아하지만 한국의 교직에 있어서 숨기고 다닌다며 나를 아주 반가워했다.
전공 학점을 빠르게 이수한 후, 사회체육학과에서 생활레저 스포츠학을 복수 전공으로 시작했다. 체대 특성상 타투는 더 터부시 되었다. 수업도 열심히 듣고 성적도 괜찮은데 타투가 있으니 교수님들도 의아해했다. 운동을 전공한 것도 아니고 대학원에 갈 생각이 있는 것도 아닌데 공부는 열심히 하고. 그런데 보이는 곳에 타투가 있고 머리도 밀고 다녔다.
사실 영어학은 실용 영어와는 거리가 멀었고, 영어 공부만으로는 비전이 없다고 생각했다. 원체 물을 좋아하고 수영을 좋아해서 군대도 해군으로 다녀왔다.
방학 때 체험했던 스쿠버 다이빙이 매력적이었고 기왕 다니는 대학, 체육 관련 학위가 있으면 좋겠다 싶어서 전공한 것이었다.
나에게 대학교는 한국에서 의무 교육의 연장선에 있었을 뿐 큰 의미는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체육 전공과 스쿠버 다이버로서의 활동은 타투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전환점이 되었다.
오키나와 수중에서 스쿠버 다이버들
오키나와에 다이빙 투어를 갔을 때였다. 보트에서 쉬고 있을 때 일본인 코스 디렉터(course director)의 몸에 돌고래 타투가 새겨져 있는 것을 보았다. 타투가 있는 다이버는 우리 밖에 없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타투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각 지방마다 사람들이 신성시 여기거나 좋아하는 수중 생물이 있어요. 다이버 중에는 그런 동물들을 새기는 사람이 종종 있습니다."
바다에서 생활하는 다이버의 몸에 새겨진 수중 생물 타투. 아주 매력적인 소재였다. 그전에는 추상적인 의미를 몸에 새겼다면, 좋아하는 동물을 타투로 간직하고 싶어졌다. 좋아하는 동물은 많았지만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만타(manta ray)`라는 가오리였다. 몸길이가 사람보다 길고 수중에서 보면 마치 우주 비행선 같은 멋진 모습을 하고 있다. 한국에 돌아온 나는 아주 들뜬 마음으로 자료를 찾고 타투를 예약했다.
스쿠버 다이빙 특성상 피부가 노출이 되는 경우가 많다. 만타는 다이버들 사이에서는 인기가 많은 종이었고 공감대가 있는 소재여서 사람들이 이상하게 바라보지 않았다. 오히려 자유롭게 좋아하는 것을 몸에 지닐 수 있는 나를 부러워했다. 그 경험으로 내가 좋아하고 내가 속한 곳에서 공감할 수 있는 소재가 좋다고 느끼게 되었다. 마치 무언가를 수집하는 취미처럼 그렇게 좋아하는 수중 생물들을 하나씩 몸에 새기기 시작했다. 고래상어, 라이언 피시, 만다린 피시 등등 나는 걸어 다니는 수족관이 되어 가고 있었다.
만다린 피시 타투
스쿠버 다이빙을 병행하면서 쇼핑몰을 운영하기도 해보고, 회사에도 취업했다. 정장에 가려진 나의 타투는 슈퍼맨의 S 로고 같은 것이었다. 비슷한 모습으로 똑같이 일하지만 난 특별함을 숨기고 있었다. 그때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타투로 소통할 수 있는 창구가 있었기 때문에 굳이 일반 사람들에게 나의 타투를 이야기할 필요가 없었다.
스마트폰이 나오기 시작하면서 꼭 컴퓨터 앞이 아니라도 소통이 수월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타투라는 공통 관심사를 가진 친구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술자리를 갖거나 함께 놀러 가기도 했다. 타투를 주제로 타투 있는 사람들끼리 어울리는 것이 무척이나 즐거웠다. 서로 이상하게 쳐다볼 필요도 없었고, 각자의 타투를 보이며 자신의 타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그 모임에는 타투이스트들도 있었고 그들의 작업실에 놀러 가는 것이 자연스러워졌다.
한편 아쉬웠던 것은 타투이스트들끼리 타투 머신이나 기술적인 부분들, 타투이스트만 알아들을 수 있는 이야기를 할 때는 답답했다. 좀 더 어울리고 싶고 타투의 전문적인 부분까지 알고 싶어졌다.
하지만 여전히 타투이스트를 감히 꿈꾸지는 못했다. 나는 미술을 전문적으로 배우지도 않았고, 타투 머신을 잡는다는 것은 아주 대단한 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마음속으로는 생각하고 상상했다. `어렸을 때부터 계속 그림을 그려왔다면` , `나에게 미술적 재능이 있었다면` , `타투 하고 싶은 마음이 좀 더 일찍 생겼었다면` 하고 말이다.
20대 후반쯤에 스마트폰으로 SNS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친구들과 놀러 갔다가 처음 앱을 깔게 되었다. 그리고 매일 그림을 그려서 업로드를 하기 시작했다. 만화는 종종 그려왔었는데, 타투 장르 중에는 올드스쿨 타투라는 것이 있었다. 이 스타일이 뭔가 간결하면서도 투박하고 만화적인 느낌에 가까워서 나도 그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때는 `좋아요`나 댓글 같은 것은 잘 몰랐고, SNS 친구들도 대부분 지인들이었다. 도안을 꾸준히 올리는데 생각보다 반응이 좋았다.
"나름 느낌 있다! 너만의 색깔이 있는 것 같아."
"웬만한 타투이스트보다 그림을 더 많이 그리는 것 같네?!"
"너 타투 좋아하잖아. 타투이스트를 해보는 건 어때?"
`내가 타투이스트가 된다고?`, `정말 그래도 되는 걸까?`, `나도 할 수 있는 일인 걸까?`, `그래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아.`, `나도 타투이스트가 되면 좋겠다고 많이 생각해왔는데.', '그래 한 번 해보자!' 나의 생각과 의식의 흐름은 이미 타투이스트가 되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그 이후로 주변에 이야기는 하지 않았지만 타투이스트가 새로운 목표가 되었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만나는 동료들이 하는 이야기들은 항상 똑같았다.
"거기는 연봉 얼마래?"
"아, 경력 쌓이면 이직해야지."
"빨리 돈 모아서 결혼해야지."
지겨웠다. 남들과 똑같은 목표를 가지고 똑같이 살고 싶지 않았다. 평범하게 살면서도 타투이스트들을 만나며 일탈과 해방감만 느끼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 나도 내가 꿈꿨던 삶을 스스로 만들기 위한 목표가 처음 생겼다. 나 스스로에게 확신이 들 때까지 그림부터 계속 그려보자.
그 후로 나는 점심시간에 샌드위치 등으로 간단하게 빨리 끼니를 때우고 그림을 그렸다. 퇴근하고 나서도 계속 그림을 그렸다. 일을 하면서도 머릿속에는 뭘 그릴까 하는 생각을 했고 집에 오면 종이에 옮겼다. 그리다 보니 새벽까지 시간이 넘어가는 경우가 생겼다. 잠은 부족했지만 일도 열심히 하면서 꾸준히 그렸다. 잘 그리는 것은 상관없었다. 내가 그리고 싶은 것은 생각보다 많았고, 매일 그림 그리는 것은 매우 재밌었다.
나는 스스로 내 취향을 잘 알고 있었고 그것을 표현해 줄 아티스트들을 찾았다. 공통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을 찾아 나섰고, 좋아하는 것을 꾸준히 그렸다. 자유롭고 멋진 삶을 꿈꿨다. 돈을 많이 벌고 유명해지는 것은 단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다. 늦었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지난 30년은 내 마음대로 살지 못했지만 남은 30년, 아니 그 이상을 내 멋대로 살 수만 있다면! 나의 모든 신경은 그림을 그리고 타투를 하며 사는 삶을 향해 있었다.
내가 느꼈던 감정들을 다른 사람에게 전해 줄 수 있는 그런 타투이스트가 되고 싶었다.
해적, 수채화, 해빗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