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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투이스트 해빗 Jun 03. 2020

3. 좋은 타투이스트란

타투이스트가 되는 방법 제1부 3.

3. 좋은 타투이스트란


 나는 누가 봐도 감탄을 할 정도의 대단한 타투를 지니고 싶었다. 그래서 아주 유명하고 작업 견적도 비싼 타투이스트를 찾아갔다. 그때는 국내에서는 생소했던 시간제 방식이었다. 높은 작업비가 부담은 됐지만 멋진 타투를 상상하며 기대에 차있었다.

 하지만 그 타투이스트는 매번 약속 시간을 어겼다. 심지어 내가 도착했을 때 일어나서 씻고 나오거나 작업 중간에 혼자 밥을 시켜 먹기도 했다. 자만심이 높은 것도 느껴졌고 나는 타투의 고통을 불쾌한 기분과 함께 참아내야 했다. 


 크기가 있는 타투라서 완성까지 시간이 꽤 걸렸다. 중간에 일본에 타투를 받으러 가게 되었는데 극명한 비교를 경험했다. 약속 시간뿐만 아니라 상담을 하는 자세나 태도, 위생적인 부분 등이 모두 완벽했다. 타투의 시작부터 끝까지 본인이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었고 손님으로서도 불편한 점이 없었다. 해외까지 타투를 받으러 나간다는 것은 여러모로 부담이 있었지만 여행과 함께 하는 타투는 아주 만족스러운 경험이었다.

 두 가지 타투 모두 디자인이나 기술적으로 훌륭한 타투였다. 하지만 타투를 받던 그때의 기억은 아주 정반대의 느낌으로 남아있다.


나고야의 타투샵. 이 분은 후에 나의 멘토가 되었다.


 어떤 타투이스트가 좋은 타투이스트일까. 타투의 가장 궁극적인 목표는 타투를 하는 자신과 타투를 받는 사람의 만족이다. 타투라는 것도 결국은 새겨주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이나 행복하기 위해서이니까. 손님을 만족시킬 수 있는 타투이스트, 타투이스트에게 인정받는 타투이스트. 직업적인 성취와 전문성을 가지기 위해 다방면으로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나의 경우 시작하는 마음가짐은 타인에게 내가 느꼈던 만족감을 주는 것이었다. 하지만 디자인이나 기술적으로 부족한 점을 끊임없이 채워나가야 했기에 초점은 타투이스트인 나 자신에 맞춰지게 되었다. 내가 잘할 수 있는 디자인을 만들고 최선을 다해서 스스로 만족하는 작업을 해야 받는 사람도 행복하다는 생각이었다.  

 실제로 처음부터 나의 그림체로만 작업을 이어왔기 때문에 손님들도 그걸 알고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내가 만족하면 손님도 만족한다는 명제가 성립했고, 내가 아쉬움을 느낄 때도 손님들은 대부분 새로운 타투에 만족했다. 그 만족감이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왜냐하면 나 자신도 작업 당시에는 최선을 다했지만 몇 년이 지나면 부족함이 보이는 경우가 많다. 아마 손님도 타투를 새길 당시에는 만족감이 컸지만 시간이 지나 아쉬움이 생기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타투이스트의 만족과 손님의 만족. 둘 다 모두 중요하다. 하지만 항상 일치하지는 않기에 참 어려운 문제이다.


 오랜 시간 내 고집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고, 상담에서 방향이 맞지 않으면 설득을 했다. 손님의 의견을 듣고 더 좋은 아이디어와 방향을 찾은 적도 많다. 그래도 언제나 내가 만든 큰 틀을 유지했고 상담과 작업을 리드했다. 손님보다는 타투이스트가 더 경험이 많기 때문에 대부분 가능한 일이었다. 손님이 당장 가진 생각보다 멀리 봤을 때 아쉬움이 남지 않을만한 타투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서이다.


 타투이스트로서의 고집과 태도를 유지하는 것은 중요하다. 손님이 불쾌하지 않는 선에서 말이다. 어느 정도 경험이 쌓이다 보니 지금은 다시 손님의 의견에 귀 기울이고 충분한 대화를 통해 함께 만들어나가는 방향을 더 추구한다. 내가 손님이었을 때의 기억을 떠올리면서 내가 좋았던 것은 유지하고 싫었던 점은 버리려고 노력했다. 나에게는 내 작업물의 중 하나이지만 손님에게는 그 타투와 기억이 전부일 수 있다. 그래서 작업 하나하나 최선과 집중을 다해야 한다.

 타투이스트로서 경력과 만족감이 채워지기 시작하니 이제는 내 작업으로 누군가가 행복해지는 게 더 중요해졌다. 다시 처음 시작하는 마음가짐으로 돌아가게 된 것이다.


독일 뮌헨 타투샵에서. 나에게는 단순히 디자인과 기술을 파는 게 아니라 함께 추억을 만드는 게 좋은 타투이다.


인간적으로 좋은 타투이스트가 되는 것도 중요하다. 

손님이 타투이스트에게 기대하는 것은 딱 한 가지다. 최상의 결과물을 만들어주는 것. 하지만 타투는 사람이 사람에게 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결국 사람이 좋은 타투이스트에게 끌리게 되어 있다. 


 똑같이 뛰어난 타투 실력을 가지고 있다고 가정해보자. 한 명은 불친절하고 무뚝뚝하다. 작업 중간에 전화를 받거나 내 타투에 집중하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다른 한 명은 내가 불편하지 않도록 배려해 주고 나를 존중해 주는 것이 느껴진다. 전자가 실력이 더 뛰어나더라도 손님은 불쾌할 수 있다. 타투는 눈에 보이는 흔적만 남는 게 아니라 그날의 기억까지 함께 남는다. 타투를 보면 타투를 받던 당시의 기억이 떠오르는 경우가 많다.  타투이스트 자체도 인간적이고 매력적이라면 그 타투는 좋은 추억으로 더 오래 남을 수 있다. 

 줄을 서서 먹을 정도로 맛있는 식당이라도 주인이 불친절하고 가게 위생이 엉망이라면 또 가고 싶을까? 음식이 맛도 좋은데 기분 좋은 한 끼 식사와 추억까지 남는다면 그 손님은 분명 단골이 될 것이다. 좋은 결과물의 타투를 위한 노력은 기본이고 외부적인 요소까지 신경을 쓰는 것이 좋은 타투이스트이다. 


 타투를 받으러 오는 사람은 타투를 받기 전 긴장감만으로 스트레스를 받는다. 특히 타투 경험이 없는 경우에는 더 하다. 타투는 기본적으로 고통을 수반하기 때문에 참아내야 하는 스트레스가 존재한다. 이 기본적인 스트레스 외에는 절대 다른 스트레스를 주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 필요하다. 결과물에 대한 기대감과 불안, 타투로 인한 고통을 매너 있는 행동과 대화로 풀어줄 수 있어야 한다. '많이 아프시죠? 거의 끝났어요.', '아프기 때문에 완성하면 더 기억에 남고 가치가 있을 거예요.` 말 한마디가 손님의 기억에 남게 된다. 

 반대로 타투이스트가 손님에게 원하는 것도 별다르지 않다. 작업에 최선을 다하고 집중할 수 있도록 손님 다운 손님이 되는 것. 시간 약속을 지키고 나의 몸에 타투를 새기는 타투이스트를 존중할 수 있어야 한다.



독일 프랑크푸르트 타투 컨벤션에서. 2013년부터 매년 나에게 타투를 받은 친구



 2013년부터 독일로 타투를 하러 다녔다. 1년에 한 번씩 가다 보니 매년 나를 기다리는 손님이 늘었고, 한 번 받았던 친구들이 계속 받으러 왔다. 작년에 한 타투의 발색을 보면 항상 아쉬웠다. 그만큼 내 안목이나 기술, 디자인이 발전된 부분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계속 리터치를 해주려고 했는데 그건 작업자로서의 욕심일 뿐이었다. 친구들은 타투를 받을 당시의 추억이 좋았고 그대로 만족하는데 나는 자꾸 바꾸려고 했던 것이다. 

 한 번은 내가 해외 타투 컨벤션을 나갈 준비를 하고 있을 때였다. 한 독일 친구가 SNS에 나에게 타투 받은 팔을 찍어 올렸다.

 "나에게 타투를 해 준 내 친구 해빗이 타투 컨벤션에 나간다!"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었다. 나는 초창기 작업에 대한 부족함과 부끄러움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친구는 나와 내가 새겨준 타투를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나의 작업을 스스로 창피해했던 것을 알면 얼마나 실망할까. 

 부족했던 작업은 내 포트폴리오에서 지울 순 있지만, 손님의 피부에서는 지워지지 않는다. 내가 잘난 타투이스트가 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나를 선택했던 손님의 마음을 항상 헤아려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던 순간이었다.


 사람은 누구나 시간이 지나면서 생각도 변한다. 당시는 좋았지만 시간이 지나니 예전 타투가 아쉽다. 아쉬움과 후회는 다른 감정이다.  아쉬움은 소재나 구도, 색감 등을 다르게 했으면 더 좋았을 텐데라는 마음이다. 후회는 타투를 한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아쉬움은 남았지만 타투이스트에 대한 신뢰가 있고 좋은 기억이 있다면 다시 찾아갈 수 있다. 타투이스트는 부족했던 작업에 대한 미련을 뒤로하고 계속 더 나은 작업으로 이어나가려는 의지가 중요하다. 그것이 나에게 타투를 받는 사람들에게 보답하는 길이다. 

 `이 타투이스트한테 오래전에 받은 타투인데, 지금은 더 잘하고 엄청 유명해.` 나에게 타투 해준 타투이스트에 대한 자부심이다. 처음부터 잘할 수는 없다. 매번 만족할 수도 없다. 하지만 작업 하나하나 손님 한 명 한 명이 쌓여져 타투이스트가 만들어진다. 항상 최선을 다하고 좋은 역사를 쌓아가자. 


  타투를 받던 날의 기억도 좋지 않고 결과물도 시간이 지나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그 타투이스트가 발전이 없거나 그만두었다면, 손님에게는 후회로 남을 수도 있다. 아쉬움은 남을 수 있지만 후회를 남기지 않는 타투이스트가 좋은 타투이스트이다.



열사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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