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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일루아의 고양이 Mar 07. 2019

포근한 밥상의 비밀

소반 예찬


어느새 초봄.

날이 풀리고 다시금 비빔면을 찾는 계절이 돌아오면 소반을 꺼내 툇마루에 올려놓는다.


오이 쫑쫑 썬 후 물기 탈탈 턴 깻잎까지 찢어 올려 마지막으로 참기름 한 바퀴, 깨소금 한 꼬집.

비빔면이 절로 맛있어지는 마법의 순간.



이 궁극의 조합을 더욱 맛깔나게 해주는 것은 다름 아닌 소담스러운 나의 소반(小盤).


우리 집 소반은 박물관 유리 칸막이 저 너머로 바라만 보는 유물 같은 존재가 아니다. 매일의 밥상을 책임지는 친근한 반려 가구이자 생활 밀착형 가구랄까? 경칩도 지났으니 성큼 다가올 한여름 점심상으로도 톡톡히 제 노릇을 할 미쁜 존재. 더위로 온 몸이 쩔쩔 끓는 어느 날, 툇마루에 앉아 시원한 나뭇결에 허벅지를 식혀가며 후루룩 넘기는 물냉면 한 사발도 이 소반 위에서라면 한층 시원하게 느껴질 터. 영화 <리틀 포레스트>의 일상이 부럽지 않을 순간이다.



밥상을 물린 후 등장하는 다음 타자는 요즘 계절 찻상으로 애용하는 시계 소반이 되시겠다.


소반 위에 옛 벽시계를 붙여 만든 이 찻상은 독특한 안목과 후한 인심을 지닌 어느 고마운 분이 27년 전 나의 엄마께 선사한 선물이다. 버려지다시피 한 소품들로 근사하게 재탄생한 세상 하나뿐인 소반이라 몹시도 아끼는 존재. 이 시계 소반 위에 맑은 차 한 잔 따뜻이 우려내 올리면 이미 멈춘 시곗바늘처럼 시끌시끌한 세상사도 일순간 정지. 모두들 한 호흡 고르는 듯하다. 더불어 내 마음도 차분해진다.



소반은 예로부터 양반 평민 구분 없이 두루 사용하던 생활 가구로 상판 모양과, 다리 장식, 제작 지역 등에 따라 구분한다. 


상판 모양별로 밥상으로 흔히 쓰이는 둥근 원반, 사극에서 교자상으로 자주 보던 직사각형의 책상반, 다각반은 상판각 수에 따라 6각, 8각, 12각 소반 등으로 부른다. 소반 다리 발 부분을 어떤 동물의 형태를 본 땄는가에 따라 호랑이 같은 호족반, 말 모양의 마족반 그리고 귀에 익숙한 개다리소반 등으로 나눈다. 또한 다리수에 따라 외다리 소반이나 삼각반으로 부르기도 한다. 지역에 따라 소박하고 간결한 나주반, 화려한 장식의 해주반, 실용적이고 튼튼한 통영반과 투박한 멋의 강원반 등으로도 분류한다니 알면 알수록 심오한 소반의 세계. 스르르 빠져든다.



소반 애호가로서 어느 때보다도 다양한 재질과 형형색색의 현대식 소반이 선보이는 작금의 추세가 반갑다. 더불어 소반을 주제로 한 전시회나 강연도 심심찮게 열리고 있어 눈이 호강하고 마음이 덥혀짐을 느낀다.


혼밥일수록 나를 대접하는 기분으로 한층 정갈한 밥상을 차리는 것이 요즘 트렌드. 오늘 하루도 수고한 나 자신을 위해 나만의 따스한 3첩 반상 소반을 내오는 이들도 늘고 있다 한다. 소박한 찬이라도 소반이 지닌 본질적인 온기가 더해지면 밥에 물 말아 무말랭이만 얹어주셔도 어쩐지 맛있던 엄마 밥상 같은 기분이 들 듯하다.



둥글어도 각져도 나를 품어내듯 따스한 소반의 힘.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허겁지겁 허기진 위장에 부어버리는 연료가 아니라 바쁜 세상살이 한가운데 잠시 앉아 나 자신을 위무하는 한 끼. 금은색의 번쩍이는 커틀러리를 굳이 놓지 않아도 소박한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어쩐지 나를 아껴주는 마음이 느껴진다.



오늘은 따끈한 복숭아차 한 잔 내려 소반 위에서 은은히 퍼져나가는 달한 과일 향내를 느껴보고픈 하루.

봄이 오는 내음. 여름이 다가오는 푸릇함.


잠시, 숨 고르고 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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