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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일루아의 고양이 Mar 29. 2019

땋은 머리가 어때서?

진정한 두발 자유화를 위하여


나이에 민감한 우리네 정서상 암묵적으로 연령 제한이 있는 헤어 스타일이 있다.

 

먼저 긴 생머리.

첫사랑의 아이콘이자 청순가련형의 상징이기에 풋풋한 20대를 대표하는 스타일.


귀 밑 5cm의 머리 길이 제한 속에 고등학교를 다녔던 나인지라 대학 입학 후 2년 간은 머리카락을 빨리 기르려 민간요법도 꽤나 동원했다. 보상심리로 시작했지만 알고 보면 긴 생머리처럼 관리하기 편한 스타일도 없다는 사실! 미용실도 1년에 한 번 갈까 말까? 한여름에도 돌돌 말아 올리면 끝. 단발처럼 거지존이 없으며 묶으면 목선도 시원하다. 심지어 쇼트커트보다 유지비도 적게 든다. 파마를 하거나 제품 쓸 일이 없으니 머릿결도 건강하게 유지되는 장점까지. 머리 감는 시간이 좀 오래 걸리긴 하지만 이 정도는 기꺼이 양보. 여러모로 남는 장사인 헤어 스타일이다.


30대에 들어서면 어쩐 일인지 하나 둘 동지들이 사라지기 시작한다. 타이머 스위치라도 누른 듯 일제히 단발로 변신. 과감한 자는 쇼트커트로. 단체로 실연을 당한 탓도 아니건만 모두의 갑작스러운 변신이 좀 당황스럽다. 커리어우먼으로서의 스타일 변신과 줄어드는 머리숱 등을 이유로 꼽는다. 하지만 왜 유독 우리 사회에서만 특정 연령대에 이르러 긴 생머리의 처자들이 사라지는 걸까? 결혼이나 출산처럼 공식적인 압박 항목은 아니지만 은근슬쩍 '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긴 생머리야?' 하는 주변의 힐난 섞인 눈초리에 심리적인 부담감을 느껴서는 아닐까?


사진: pintrest


긴 생머리보다도 연령 제한이 낮은 헤어 스타일이 있다면 바로 땋은 머리.


귀여운 꼬마 유치원생이나 까르르 발랄한 여고생의 전매특허. 버티고 버텨도 20대 중반이면 졸업해야 하는 헤어 스타일처럼 여겨진다. 특히 양갈래 땋은 머리라면 더더욱.


곱고 스타일리시한 할머니가 되는 것이 장래 희망 20대 초반이 전생같이 느껴지는 지금도 땋은 머리를 즐겨한다. 한쪽으로 길게 늘어뜨린 보헤미안식 땋은 머리는 일주일에 한두 번은 여전히 고수하는 스타일. 똥머리보다 시간도 적게 들고 머리 당김도 덜해 한 올 한 올 소중한 머리숱도 보호할 수 있다. 저 사진 속의 우아한 여인처럼 흰머리가 검은 머리를 뒤덮는 나이가 되더라도 포기하고 싶지 않은 헤어 스타일. 칠순의 나이에도 패들보드 위에서 천천히 노를 저으며 어깨에 드리운 석양볕의 온기를 느끼고 싶을 때 하고픈 머리이다.


사진: realsimple


집에서 반년 간 숙성한 어성초 스프레이를 뿌려도 스르르 사라지는 머리숱이 아쉬운 나이지만 나의 긴 머리 사랑은 여전하다. 다음 주엔 18개월 만에 큰 마음먹고 미용실 나들이. '남미 여자처럼 빠글빠글 정열적으로 말아주세요!'라고 주문할 이 스타일로 변신 예정. 아직은 하나 둘 늘어가는 흰머리를 속상한 마음으로 뽑으며 새치라 위안 삼고 있지만 언젠가는 이마저도 자연스레 받아들일 날이 오기를 바라본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며 처음 맛 본 두발 자유화를 이제는 나 스스로 선택해서 누리고 싶다. 사회적인 시선으로부터의 자유. 민폐가 아닌 이상 내 머리 정도는 내 마음 가는 데로 꾸밀 자유.


백발 커밍아웃으로 더욱 미친 카리스마를 포효하는 영원한 걸크러쉬 패티김처럼.


사진: 얼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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