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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얀 밤 Jun 30. 2016

파편 03

정돈을 위한 덜어내기 


파편 03. 



그의 글을 읽을 때면 항상 노을빛이 떠오른다. 하늘 저 끝에서부터 여기까지, 짙게 번져드는 불꽃같은, 꼭 세상의 끝을 얘기하는 것 같은 하늘빛. 낯선 곳에서 서로에 대한 간절함을 떠올리고 맞잡은 손이 더욱 아쉽게 느껴지는 건, 그의 인물들이 다음으로 넘어가야만 하는 어떤 필연적인 끝자락에 다다라 있음을 나타냈다. 내가 무엇을 가늠하고 무엇을 추측할까. 그의 모든 아이들에 대해서는 특히 그 어떤 단어도 함부로 붙이지 못하겠다. 조금 더, 그려지는 아이들의 성장을 조용히 지켜보며 따라가는 수 밖에. 하나의 존재가 미성숙에서 성숙으로 가는 그 과정은 어떤 모양이든 간에 참으로 숙연하고 장엄한 시간이니까. 나 같은 미물은 장엄 앞에 들이댈 수 있는 단어가 부족하다. 



'이제 기억하는 거에 지쳤어. 꾸역꾸역 끄집어 내봤자, 다 엉망이고 흐릿해.'



고작 이틀 전인가, 나를 나름 크게 베고 지나갔던 좋지 못한 기억이 슬 떠오르는데, 드는 생각은 정말 '지쳤다'. 무의식으로 떠오르는 기억이 슬프다거나 어렵다거나 고통스럽다가 아니라, 이제 그만하고 싶었다. 끄집어 내봤자 시간이 더해진 기억은 이제 다 엉망이고 흐릿할 뿐이니까. 그래서 이렇다 하게 갈무리하지 못한 채 그냥 대충 여미고 쑤셔넣어 뒀는데, 저 문장을 보자마자 툭 터지는 거였다. 괜히 그가, 그의 목소리가 담긴 문장이, 그와 그의 인물이 녹아들어 형성된 저 문장 자체가 나를 다독여주고 공감받는 느낌이라서. 마음이 저렸다. 좋아서, 슬퍼서, 이해돼서. 


글에는 작가의 영혼 결이 담겨 있거나, 자신만의 상징성과 함의, 은유와 비유가 서려있어야하지만, 그건 읽는 사람과 소통할 수 있는 지점에서 이루어져야 좋은 글이라고 생각한다. 아무에게도 읽혀지지 않는 독특함은 결국 기이한 것일 뿐이니까. 그의 글은 내게 다가와 나름의 정의를 내리게 만든다. 그건 단어들은 잔뜩 주렁주렁 매달고 있는데, 이걸 어떻게 해야할지, 갑갑하고 무겁다. 그만 무겁고 싶어, 누군가 읽어줬으면 좋겠어, 덜어내도 좋다고 말해줬으면, 그렇게 한참 답을 찾으며 떠돌던 시간 사이에서 만난 하나의 구원이었다. 뭐랄까. 보통 어둠 속에서 빛을 만났다고 말하는데, 나는 사방에서 하염없이 내리쬐는 빛 속에서 찹찹하고 시원한 어둠 한 자락을 만난 느낌이었다. 그 속에 들어가 그제서야 한 시름 덜고 한숨 놓고 편하게 웅크릴 수 있는 느낌. 그의 글이 내게 그렇다. 정말로. 아름답게 형성된 그 세계 속에서 스스로 답을 찾고 있다. 




2016. 06.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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