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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얀 밤 Jun 26. 2016

잘 쓰여진 책, 사람.

관찰의 인문학을 읽고 소설로 쓰다. (2016/06/26)





결국 사람 각 개인이 하나의 책이라는 말이다. 

병적으로 타인의 내면과 심리를 수집하는 주인공, 하진.




1. 

하진은 많은 방을 가졌다. 겉으로 뻗어 나가는 대신 한 뼘 두 뼘 제 속을 넓혀 만든 공간이었다. 




2.

처음엔 한 평 두 평으로 시작하던게 어느 순간 저도 좇아가지 못할 속도로 불어났다.  하진에게 있어 '사람'이 할머니 할아버지 아줌마 아저씨 젊은 청년 아가씨 꼬마아이가 되고, '사물'이 오디오 티브이 자동차 핸드폰 컴퓨터 옷 책상 침대로, '감정'이 기쁘면서도 슬프다 무기력한 가운데에 화난다 묘하게 불쾌하다 등으로. 시간이 갈수록 구체화됐고, 섬세해졌으며, 복잡해졌다. 




3.

여러 명이 퍼질러져 누워도 남을만큼 크거나 발 끝으로 서도 모자라게 작은 방. 투명한 유리로 만들어져 언뜻 스치는 눈길에도 속이 다 들여다 보이는 방, 혹은 수십 개의 벽으로 겹겹이 둘러 쌓여 끝끝내 가장 속에 무엇이 있는지 모를 만큼 은밀한 방. 발 밑을 겨우 적실 정도로 얕은 방이거나, 혹은 그 아래를 내려보았다가 머리부터 고꾸라져 떨어질까봐 감히 깊이를 가늠해 볼 엄두도 못 낼 만치 깊은 방.




4. 

방 크기는 관심의 정도와 비례했다. 대상체가 어떤 크기를 하든 간에 딱 하진이 자신에게 관심가는 정도만큼만 차지할 수 있었다. 그래서 가로 세로가 한 뼘 정도 되는 턱없이 조그만 방에 비틀즈가 각자의 악기를 껴안고 볼을 맞댄채 붙어있거나, 장황하게 큰 방 한 가운데에 다 낡아빠진 헝겊 인형 하나만 오롯이 앉아있다거나 하는 별별 꼴은 놀랍지도 않은 다반사였다.




5. 

그리고 하진은 잘 쓰여진 책, 사람을 모았다. 




6.

하진은 제 관심을 끄는 대상 중에서도 유독 사람이 좋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사람에게서 파생되어 나오는 감정이 그를 가장 사로잡는 다채로움이었다. 하나의 일에도 모두 다른 생각을 하고, 다른 느낌을 받고, 다른 표현을 했다. 그는 갈증나는 제 욕구를 위해 하나하나 얇게 눌러 담아 한 장을 만들고, 그것들을 모아 엮어 한 권의 책을 만들고 싶었다. 




7.

그는 마음 속 가장 깊숙히 하나의 큰 방을 만들었다. 다채의 한 자락도 허투루 흩어 보내지 않고 끌어 모으기 위해서였다. 사방의 벽에 책장을 뒀다. 그건 마치 살아있기라도 한 듯 그의 마음먹기에 따라 무한정 늘어났다.




8.
웃는 낯으로 다가가 꿀처럼 달디단 말로써 사람을 잡그건 먼저 나서는 법 없이, 뒤로 한 발 물러나 관망하듯, 하지만 유독 한 인물을 향해서, 끈덕지고, 집요하게 이루어졌다. 그렇게 얻은 것들을 영화 향수에 나오는 그루누이처럼, 그는 모든 사람에게 라벨을 붙여 층층별로 차곡차곡 분류해 넣었다. 저만 풀 수 있는 끈으로 단단히 묶어놓고 시간이 날 때마다 깊게 마주하며 들여다보곤 했다. 




9.

그건 하진이 세상을 배우는 방법이었다. 




10.

책장을 치우던 어느 날, 아무 책이나 뽑아든 하진은 거기서 피어오르는 매캐한 곰팡이내에 문득 기분이 불쾌해졌다. 좀 더 살아있는 책을 만들 순 없을까? 나를 한 번 거쳐, 정제된 채 만들어지는 책 말고. 더 살아있는 책. 예를 들어, 그 사람으로부터 한 번에 깔끔하게 도려낸- 그런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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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코패스 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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