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얀 밤 May 31. 2016

촘스키의 1984 , 2016

촘스키, 누가 무엇으로 세상을 지배하는가 (150531)  


<촘스키의 1984, 2016>

 -촘스키, 누가 무엇으로 세상을 지배하는가,







01 

 "...민주주의 국가에서 대중의 역할은 '참여자'가 아니라, '눈앞에 벌어지는 일에나 관심을 갖는 구경꾼'의 역할이어야 했습니다."  

노엄 촘스키는 인터뷰 내내 특권층이 기득권을 견고하게 다져가는 방식, 지식인을 통한 여론 조작, 거대 기업과 국가 간의 긴밀한 관계에 대해 이야기 한다. 상호 이해 관계에 놓인 국가와 기업은 공공연히 정경유착이라는 사적 커뮤니케이션을 유지하며, 서로 기꺼이 도구와 배후자가 되기를 자처한다. 더불어 특권층은 정보와 지식을 독점해 기득권을 견고히 하고,  다수의 대중을 방관자이자 구경꾼으로 만들어 의도적으로 그 독점에서 제외시킨다. 또한 대중은 스스로 국가를 위한 그저 하나의 수단적 도구로 활용되는 상황을 암묵적으로 용인하고 묵인한다. 그는 이와 같은 상황 내에서 얽힌 힘과 권력의 상호 관계 내에서 지식인의 역할, 대중으로서 지녀야 할 태도를 짚으며, 궁극적으로는 '깨어 있는 대중'을 요구한다. 




02

 '과거를 지배하는 자는 미래를 지배한다, 현재를 지배하는 자는 과거를 지배한다.' 

 조지 오웰의 1984에서는 거대한 전체주의 체계를 위해 위와 같은 당 슬로건 하, 모든 정보가 현재 시점에 맞추어 조작되고 재생산된다. 개개인은 특정 권력 체제를 위해 개편된 현재를 수호할 무조건적인 의무를 갖는다. 따라서 그들은 마이크로폰과 텔레스크린를 통한 주도면밀한 감시에 의해 관리된다. 한 치의 자유도 허락하지 않으며, 물리적인 상황은 물론이고 관념적인 정신까지 지배한다. 


많은 시간이 흐른 현재 2016년, 과연 우리는 1984년에서 벗어 났을까? 단 몇 국가를 제외하고서 전 세계의 국가 대다수는 민주주의를 각국 정치 체제로 두고 있다. 하지만 사회구조와 계급 구조는 변했지만 특정 집단의 이해관계, 지배 관계, 사회계층 구조, 의사결정 단계 등은 여전히 존재한다. 구조는 바뀌었으나 사회에 관한 근원적 개념은 그대로인 것이다. 지배 계급의 대중 우매화 정책 또한 진행 중이다. 예전엔 불투명한 감시 하에 은밀하게 이루어졌다면 이제는 아예 감시의 존재를 부정하고 결백함을 주장하며 스스로 투명성을 자처한다. 하지만 그래서 오히려 자본주의 체제 하 자유로서 상징되는 인터넷과 텔레비전을 통해 더욱 정교하고 뿌리깊은 방식으로 대중의 속에 침투하고 있다. 그들은 이를 통해 특정 집단을 위해 기능하는 국가의 시스템에 동의하고 철저한 묵인으로 용인하게끔 만들 뿐만 아니라 테러, 전쟁에 대한 공포심 조장으로부터 국민이 스스로 무력한 존재로 인식하게 만든다. 또한 경제 기업이라는 새로운 축의 등장으로 인해 '인위적 욕구', '표피적인 소비'에 몰두하는 맹목적 소비자로 전락하기도 한다. 




03

그렇다면 대중은 이런 상황 하에서 그저 방관자이자 구경꾼으로만 그 명맥을 유지할 수 밖에 없는가? 

1984 속 윈스턴은 쓴다. 그는 당국의 감시를 피해 노트와 종이를 이용해 자신의 희미해진 기억을 쓰기 시작한다. 이 기억이 실제로 일어났던 건지 자신의 꿈에서 이루어졌던 건지 그 경계조차 불분명하지만 쓰는 행위를 멈추지 않는다. 그저 당국이 배급해 준 옷을 입고 음식을 먹고 분배해 준 일만 하던, 고요 속 하나의 침묵일 뿐이던 그가 무언가를 쓰기 시작함에 따라 그는 거대한 고요 속에 좀먹힌 자신의 자아, 자유를 향한 갈망의 불씨를 지핀다. 이는 촘스키가 말한 '깨어 있는 대중'과 맥락을 이어 간다.


"대중의 각성과 경계 이외에 현 사회의 미래를 보장해 주는 것은 없습니다. (중략) 무엇보다 국민이 깨어나야 합니다. 여론의 압력이 더해질 때는 어떤 일이라도 가능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개인이 행동할 때는 그 순간 일어난 특별한 사건일 뿐이지만 그게 다수에게서 행해지고 꾸준하고 지속적으로 이어진다면 일종의 문화이자 당연한 생활 습관으로 정착된다. 그는 조직화의 필요성을 얘기한다. 거대 체제는 일시적인 의견은 묵살할 수 있겠지만 조직적이며 지속적인 여론은 쉽사리 묵인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들이 '유기적 존재가 개인에 앞선 특권을 갖는다'는 주장 앞에서, 대중 또한 스스로 유기적 존재가 되어 국가-기업과 동등한 위치에서 당연한 권리를 주장해야만 한다고 외친다. 그래야만 그들이 지은 틀을 깨고 나올 수 있으며 애초에 그러한 테두리를 짓는 것조차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04

이 책을 읽어내려가는 내내 조지 오웰 1984가 떠올랐다. 지배 구조, 거대 담론, 그 사이의 미약하지만 행동하는 개인 등. 두 책을 접목시켜서 한 편의 글로 엮어내고자 노력했는데 역시 아직 배경 지식과 스스로의 의견 정리 등이 너무나 부족하다는 걸 느꼈다. 막판에는 최근 사회적으로 중요한 맥락을 차지하는 페미니즘과도 연관시켜 볼 수 도 있겠다 싶었다. 침묵을 종용하는 사회 내에서 끊임없이 예민하게 느끼고, 말하고, 불편해하고, 변화를 요구하는 거니까. 







다음 번 책을 읽고 나서는 더 나은 글을 쓸 수 있길. 











작가의 이전글 파편 0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