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장극에서 나왔더니 거울이 있었다
그래서 내 시선은 자연스럽게 개개인의 사건에서 모임의 기류로 옮겨갔다. 그곳엔 한층 더 익숙한 막장극이 상영 대기 중이었다. 겉은 잔잔한 호수 같지만 속은 펄펄 끓는 온천수 같은, 한 회원을 둘러싼 암투였다.
익숙한 이야기다. 어디에나, 그냥 ‘누군가’가 있다. 특별할 것 없는 얼굴과 말투. 그러다 어느 날 그 누군가가 또 다른 누군가를 좋아하기 시작한다. 처음엔 조용하다. 눈길이 한 번 더 머물며 인사말이 조금 길어지고, 답장 속도가 미세하게 빨라지는 정도. 아직은 “설마”로 덮을 수 있는 단계다.
그런데 세상은 늘 그렇듯, 아무도 부탁하지 않았는데도 그 ‘설마’의 자리에 ‘추가 인원’을 친절하게 공급한다. 하나였던 자리에 둘, 셋, 넷. 사람 수가 늘면서 시선과 말이 얽히고, 공기는 슬쩍 끈적해진다.
순식간에 인구 밀도가 올라가고, 마음도 교통정체를 일으킨다. 감정들이 사거리 한복판으로 한꺼번에 끼어들고, 사람들은 저마다 신호를 깜빡인다. 처음엔 다들 “좋은 감정이에요” 같은 표정이지만, 어느새 여러 시선이 겹치며 호감의 결이 바뀐다. 그리고 질투가 조용히 들어앉는다.
질투는 늘 기회만 보다가 “아, 제 차례군요?” 하고 씩 웃으며 등장해 싸움의 뚜껑을 아주 시원하게 열어젖힌다. “왜 하필 저 사람이야?” “내가 먼저였는데?” 같은 고전적인 대사가 오가고, 소극은 금세 막장극으로 진화한다. 관객은 없다. 전원이 배우다. 그래서 더 난장판이다.
그 와중에 꼭 한 명은…이 난장판의 주인공이 된다. “아, 이 로맨스극의 주인공은 나군요. 네, 모두 제 팬이시고요.” 마음속에서 팝콘을 난사하며 스스로 주연배우가 된다. 시선은 한사람에게 기울고, 분위기는 그 기울기대로 굳어버린다. 그리고 거기에서 밀려난 사람들은 구석진 곳에서, 말없이 마음의 상처를 입는다.
서로에 대한 기대와 환멸이 오가며 작은 균열이 생기고, 그 틈은 신뢰라는 낡은 구조물을 삐걱거리게 한다. 그리고 결국 주저앉는다. 마치 오래된 의자를 몇 년 방치하다가, 누군가가 깃털 하나만 올렸는데도 ‘우두득’ 하며 부서지는 것처럼.
그리고 그 모든 장면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는 누군가가 있다. 한 손은 턱을 괴고, 다른 손엔 실망을 한 줌 쥔 사람. 그중에는 물론 나도 있었다. “아, 인간이란 정말...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구나.” 이런 깨달음을 얻게 되는, 소소한 비극의 관찰자.
아이러니하게도 분위기는 그 어느 때보다 뜨거워졌다. 1년 내내 크고 작은 갈등으로 냉랭하던 공기가 마지막 순간, 얼음 위에 불이 붙듯 갑자기 끓어올랐다. 끝이 어렴풋이 보이기 시작하자 다들 더 진심이 됐고, 더 솔직해졌다. 다만 그 솔직함이 화해로 가지 않고 결산으로 갔다. 미뤄둔 감정들이 마지막 장면에서 한꺼번에 미납 청구서처럼 날아온 것이다. 그렇게 1년짜리 사회실험장은 여러 개의 싸움을 남기고 막을 내렸다.
사람들은 이상하게도 천국보다는 지옥에서 폭발적인 팀워크가 발휘된다. 기세는 거의 응급실 수준. 딱히 놀랄 일도 아니다. 우리는 대체로 분노를 적당히 저축해 두고 살고, 어느 순간엔 그 분노를 걸어둘 대상이 필요해진다. 아니면 어떤 감정이든 상관없이 몰입할 사람이나 상황이 필요한 걸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서로를 아주 얇게 착취하는 냄새가 배어 있다. 가까운 곳에서만 은은하게 풍기는, 미세하게 불쾌한 ‘잘못 말린 수건’ 같은 냄새. 다만 대부분은 코를 막고 살거나, 멀찌감치 떨어져 있을 뿐이다.
나는 코를 막는 대신 전원을 내렸다. 그리고 플러그까지 뽑았다. 모임을 정리한 건 그다음의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적어도 그건,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차단’이었다. 그 순간, 어디선가 늘 늦게 도착하는 현명한 자아가 등장했다.
“보셨습니까, 인간들이 인간을 대하는 방식을 아주 노골적으로 관찰하셨습니다. 이제... 제발 그렇게 행동하지는 말아 주십시오.”
처음엔 시원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차단하고 나서부터가 더 조용하지 않았다. 알림이 사라졌는데도 손은 자꾸 폰을 찾았고, 아무것도 뜨지 않는 화면이 오히려 소란스러웠다. 그 틈으로 섭섭함이 슬그머니, 비집고 올라왔다. 주머니 깊숙이 넣어둔 중요한 물건이 어느새 빠져나가 “어라, 이거 내 거였나?” 하고 뒤늦게 알아차리는, 그 황당한 감각처럼.
그 섭섭함을 조금만 더 따라가면 늘 그렇듯 결론은 나였다. 내가 관계라고 부르던 것의 일부는, 내 안의 빈 잔이 만든 서두름이었다. 그리고 그 감정의 얼굴은, 익숙한 공허함의 낯빛이었다. 오래된 그림자처럼 뒤따라오는 얼굴.
“설마... 내가 애착을 가지고 있었던 건가?”
섭섭했던 건 관계를 잃어서만은 아니었다. 그들과 연결되어 있을 때만 유지되던 내 생활의 리듬, 역할, ‘잘 지내고 있다’는 감각까지 같이 잃어버린 탓이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제주라는 고립된 섬에서 모임을 돌파구처럼 붙잡고 있었고, 여러 사람과 ‘잘’ 교류하고 있다는 소소한 오만까지 곁들여 살았다. 그러니 손을 놓는 순간 섭섭함이 올라오는 건, 사실 꽤 인간적인 감정이었다.
그리고 더 들여다보니, 내가 ‘정답’이라 우기며 붙잡아 온 건 사실 관계가 아니라 관계를 다루는 방식이었다. 모임만 잘 굴러가면 잘 살고 있다는 증거가 된다는 믿음, 그리고 무너지지만 않게 붙들면 된다는 셈법. 그 선택지는 결국 내면의 빈 공간을 비추는 거울일 뿐이었다. 그 안의 나는 기묘하게 배시시 웃고 있었다. 구겨지고 왜곡된 초상으로.
“저게... 나인가?”
그 질문이 한참을 남았다. 나는 모든 것을 멈췄다. 그리고 마음에게 조용히 말했다.
“자, 이제 관계는 잠깐 쉬자. 나부터 다시 찾자.”
거창한 결심이라기보단, 무너진 호흡을 다시 맞추려는 소박한 수습이었다. 과거의 실마리를 잡아 하나씩 풀고, 미뤄둔 일들을 다시 열어보기로 했다. 한때 애정으로 가득했던 활동들을 복기하듯 꺼내 들었다. 책을 읽고, 나에게 충만한 시간을 선물하던 사진 작업도 다시 시작했다. 무언가를 다시 쌓기 시작한 것이다. 아주 천천히, 마치 다시 숨을 고르듯 자연스럽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