널빤지 위의 평화
숨을 고르는 건 결국, 마음에 브레이크를 거는 일이었다. 예전의 나는 속도를 줄이는 걸 곧 포기처럼 받아들였는데, 막상 브레이크를 밟아 보니 그건 포기가 아니라 정돈에 가까웠다. 숨이 길어지면 생각이 한결 차분해지고, 그만큼 하루가 덜 흔들린다.
그다음부터는 큰 사건이랄 게 없었다. 사건이 없다는 사실이, 내게는 거의 사건이었다. 감정의 잔열이 천천히 식고, 호흡이 제 속도로 돌아오는 동안 나는 평범함을 연습하듯 하루를 반복했다.
반복은 어느새 풍경이 되었고, 풍경은 나를 슬쩍 밖으로 데려갔다. 평소처럼 책을 읽고, 카메라로 구시가지의 복잡다단한 길을 낱장처럼 주워 담으며 천천히 걷고 있었다. 관광지라는 이유 하나로 외국인, 내국인, 그리고 ‘여기 왜 왔더라?’ 싶은 표정의 여행자들까지 뒤섞여 있다. 소음이 소음을 낳고, 또 그 소음이 사람을 낳는, 사람이 겹겹이 쌓이는 혼잡함.
그 혼잡함을 통과할 때마다 나는 자꾸 호흡을 확인했다. ‘지금은 괜찮나.’ ‘또 빨리 감기 버튼을 누르고 있나.’ 같은 말을 속으로 중얼거리다 고개를 들었을 때, 제주 외곽의 오래된 성당이 눈에 들어왔다. 북적이는 사거리 한복판에서 유독 높게 솟은 건물 하나가, 이상하게도 나의 시선을 붙잡았다.
처음엔 동네 분위기에서 어긋나 보였는데, 조금 더 바라보니 동네의 결에 잘 스며들어 있었다. 새것처럼 드러내기보다, 오래 남아 있는 것들 특유의 과장 없는 표정으로 서 있었기 때문이다. 입구 옆에는 커다란 느티나무가 자리 잡고 있었고, 그 나무가 만들어낸 그늘이 마치 경계선처럼 보였다. 도시의 속도와 성당의 속도를 가르는, 부드럽지만 명료한 선.
그 선을 넘어 몇 걸음만 들어가자 공기의 결이 달라졌다. 같은 햇빛인데도 덜 날카롭고, 같은 바람인데도 덜 서두르는 느낌. 성당 외벽엔 오래된 페인트가 겹겹이 남아 있었는데, 그 층이 마치 “여긴 계속 누군가의 시간이 머물던 곳”이라고 대신 말해주는 듯했다. 한쪽에는 신호등을 닮은 색의 낡은 의자가 놓여 있었는데, 무심한 배치인데도 묘하게 다정했다. 그 아래 드리운 나무 그늘은 누군가에게 여름 한낮을 잠깐 맡겨둘 자리처럼, 포근하게 보였다.
나는 피난처를 찾는 사람처럼, 거의 홀린 듯 안으로 들어갔다. ‘들어가도 되나?’ 하는 조심스러운 마음은 한 박자 늦게 따라왔지만, 발은 이미 방향을 정해버린 뒤였다. 거부하려 할수록 더 또렷해지는 분위기가 있다. 설명할 수 없어서, 오히려 확실해지는 공기. 그날의 성당이 딱 그랬다.
나는 어느새 예배당 입구까지 와 있었고, 손이 먼저 문을 밀고 들어갔다. 문턱을 넘자, 세상에 방금 전까지 내가 발 딛고 있던 거리가 소란의 화산지대였다는 걸 새삼 떠올리게 하는, 그야말로 ‘적막의 바다’가 펼쳐졌다.
순간적으로 ‘아, 내가 그동안 저 소란에 녹아 있었던 거구나…’ 하고 뒤늦게 자각했다.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혼돈과 고요가 이렇게 급격하게 나뉠 수 있다니. 물리 법칙이 잠시 외출이라도 한 기분이었다. 어깨가 느슨해지고 턱은 풀렸고, 숨은 이상하게도 길어졌다. 그제야, 내가 숨을 얼마나 짧게 나눠 쓰며 살았는지 알았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그 고요의 충격은 내가 혼밥모임의 플러그를 뽑던 시기에 느꼈던 감정과 꽤 닮아 있었다. 소란스러운 장면들을 하나둘 걷어내고 나니, 마음이 슬그머니 고요 쪽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어? 이 낯선 평화로움은 뭐지? 혹시 사람들이 그렇게 찾아 헤매던 ‘내면의 평화’ 상태인가?”
이런 생각이 별 노력 없이 떠올랐다. 몸은 가만히 앉아 있는데, 기분은 긴장이 풀린 자리에 천천히 내려앉았다. 누가 나를 부르지도 않았고, 내가 누군가를 찾을 일도 없었다. 별일이 없으니 별말이 줄었고, 말이 줄자 내 안에서 자동으로 돌아가던 생각과 해석도 조금씩 멈췄다. 예전의 나라면 상상도 못 했을 일이다.
“내가 이런 고요를 좋다고 느끼는 인간이 될 줄이야...?”
이상하게도, 그걸 알아차리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더 안정됐다. 한 번에 달라지진 않았다. 하지만 하루가 끝날 때마다, “오늘은 고요했다” 같은 문장이 아주 소량으로 쌓였다. 큰 성취는 아니었지만, 그런 작지만 확실한 문장들이 오히려 믿을 만했다.
몇 년 전만 해도 내 인생은 전부 목표라는 거대한 목차 아래로 정렬돼 있었다. 어디를 펼쳐도 ‘다음 목표’가 먼저 나오는 구조. 그런 공기에서 빠져나와 무수한 선택 끝에 제주에 닿았고, 그 뒤엔 혼밥모임이라는 소란을 한동안 ‘살아 있음’으로 착각하며 버텼다. 그런 격랑의 시간들을 통과한 뒤에서야 나는 겨우 이렇게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아, 이게… 평화구나.’
머리로 가 아니라 몸과 뼈의 감각으로. 요약하자면, 구시가지의 소란과 오래된 성당의 고요가 극명하게 대비되던 그 순간처럼, 나도 이제야 소란 바깥에서 고요를 보는 법을 배우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 이어지는 또 다른 챕터.
“어느 날 문득, 고요가 나한테 들이부어졌다.”
이렇게 시작하면 좀 있어 보이니까, 그대로 쓰기로 하자. 어쨌든 어느 순간, 나는 이상할 정도로 조용해진 세계 한가운데에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겉으로 보면 그냥 멀쩡히 앉아 있는 사람 하나일 뿐인데, 머릿속에서는 관찰자 자아가 슬슬 말을 걸어온다.
“응? 나 지금 왜 이렇게 조용하지?”
“이렇게 아무것도 안 해도 되는 거야?”
“몰라. 근데 일단 가만있어 봐. 이거 좋은 거일 수도 있어.”
우리가 뭔가에 완전히 몰두해 살아갈 때, 가끔 세상이 슬로 모션처럼 느려지는 순간이 있다. 사람들은 그걸 멋있게 “몰입”이라고 부르지만, 그때 체감으로는 인지 부조화에 가까운 상태였다. 갑자기 ‘지금 현재’만 비현실적으로 확대돼 눈앞에 들이밀어진다. 우주의 속도는 여전히 미친 듯이 가속 중인데, 나만 레일 밖으로 잠깐 튕겨져 나와 멈춰 선 느낌.
아이러니하게도, 그때 ‘실제 세상’은 오히려 더 느리게 흘러가는 것처럼 보였다. 어떤 의미에서는, 속도의 기준을 다시 맞추는 조정에 들어간 셈이었다. 문제는, 이 낯선 분위기를 받아들이기 힘들었고, 그런 상황에서 실제로 했던 일이라고는 끝도 없이 커져가는 심심함을 견디는 것뿐이었다는 점이다. 현자 자아가 중얼거리기 시작한다.
“야, 이렇게 존재론적인 순간에 네가 느낀 게 고작 심심함이야?”
“응. 근데 이게 생각보다... 감당하기 어렵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심심함’은 그냥 이름표였다. 사실은 커다란 ‘구멍’이었고, 그 안에서는 가끔 정체 모를 서늘한 바람이 불어왔다. 나는 그 위에 ‘심심함’이라는 얇디얇은 널빤지 하나를 대충 얹어 두고 살았다. 널빤지는 말 그대로 임시방편. 발끝으로 툭 건드리면 바로 덜컹거릴 것 같은, “일단 덮어두고 나중에 생각하자” 수준의 얇은 덮개였다. 그리고 어느 순간, 나는 그 허술한 장치의 정체를 알아차려 버렸다.
“잠깐만, 이거... 튼튼한 바닥 아니고 그냥 구멍 위에 널빤지 하나 얹어놓은 거잖아?”
“쉿. 괜히 들춰보지 말고 그냥 그렇게 살아.”
고개를 돌려 외면하고 싶은 그 구멍. 정면으로 바라볼 용기가 없었던 나는 또다시 익숙한 패턴으로 돌아갔다. 채우기 모드, 재가동.
이번에는 활자였다. 구멍 안을 들여다보지 않으려고, 보이는 글자는 죄다 닥치는 대로 읽어댔다. 거의 포식자처럼. 읽고 있으면 그동안은 괜찮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다만 그 ‘괜찮아짐’은 늘 그렇듯, 실제로 괜찮아졌다는 뜻과는 별개였지만.
그러다 어느 순간, 아주 단순한 사진들 위에 내 감정을 얇게 얹기 시작했다. 구멍을 메울 순 없으니, 그 위를 예쁜 포장지로 덮기로 한 셈이다. 10년 동안 찍어오던 사진의 결이 바뀌었다는 건, 내게 꽤 큰 변화였다. 예전 같으면 복잡한 감정일수록 정면으로 붙잡고, 어떻게든 프레임 안에 욱여넣으려 했을 텐데. 어느 순간부터는 이런 생각이 먼저 들었다.
“복잡한 감정? 지금은 좀 사양할게. 한 번 깊게 들어가면, 다시 올라오는 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니까.”
그래서 나는 방식을 바꿨다. 단순한 이미지 위에 감정을 살짝 얹는 쪽으로. 과하게 진지해지지 않을 만큼만, “딱 이 정도 느낌입니다” 하고 웃으며 넘길 수 있을 정도로. 그렇게 사진은 점점 단순해졌고, 그 위에 올라가는 감정은 오히려 더 솔직해졌다.
돌이켜 보면, 그 시절 나는 ‘심심함’이라는 공백을 메우기 위해 글자를 마구 씹어 삼키고, 이미지 위에 감정을 얇게 펼쳐놓는 그럴듯한 놀이를 꽤 성실하게 수행하고 있었다. 하지만 널빤지 밑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끝내 무시할 수 없었다.
“결국... 그 구멍이랑은, 도대체 언제 마주 볼 거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