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이주민, 숨 고르기 (7)

심심함 탈출기 : 독서모임 편

by 백운

침묵은 오래 못 갔다. 구멍은 늘 정면이 아니라 우회로로 나를 불러냈고, 그 우회로의 이름이 대개 ‘심심함’이었다. 역사는 반복된다더니, 내 일상은 심심함부터 먼저 되풀이됐다. 그리고 그 심심함은 꼭 새로운 충만함을 요구하며, 나를 다음 장으로 밀어 넣었다.


“야, 그 구멍 위에 올려둔 널빤지 말고, 이번엔 좀 그럴듯한 걸로 덮어보자.”


성당에서 맛본 낯선 평화가 서서히 옅어지자, 심심함이 거의 매니저처럼 굴기 시작한 것이다. 넘어졌으면? 그래, 그럼 일어날 구실이나 하나 만들자. 그렇게 고른 돌파구가 ‘독서모임’이었다. 근거는 이미 머릿속에 줄줄이 깔려 있었다. 독서는 왠지 ‘생각을 많이 하는 사람들’의 취미 같았고, 혼자 읽다 보니 남의 해석이 궁금해졌고, 무엇보다 삶에 ‘다음 페이지’ 같은 게 필요했다.


그래, 다음 편 제목은 이렇게. ‘심심함 탈출기 : 독서모임 편’ 돌이켜 보면, 그때 내 인간관계 지구력은 정말 놀라웠다. 누가 그랬던가. “사랑하라,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아니, 상처받아도 어차피 또 살아남을 것처럼.” 정확한 문장은 기억 안 나지만, 대충 이런 정신상태였다. 나는 상처받는 걸 두려워하기보다는, “상처야 뭐 결국 치유되겠지.” 이런 마음으로 사람들한테 나를 꽤 잘 던져 넣던 편이었다.


물론 아무 생각 없이 달려든 건 아니었다. 혼밥모임에서 학습을 한 번 하고 나서는 감정 위에 이성이라는 얇은 구명조끼 정도는 입고 다녔다.


“가보고는 싶은데, 너무 깊이 들어가면 빠진다.”

“그러니까, 살짝만. 허벅지까지만.”


이렇게 머릿속에서 온갖 시뮬레이션을 돌리면서도, 막상 독서모임에 들어가 보니까 너무 재미있는 거다. 아니, 세상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책을 읽고 있다는 사실부터가 일단 충격이었다.


“와 나만 혼자 책 읽는 캐릭터가 아니었네?”

“축하합니다. 드물긴 한데... 그래도 동종은 있었다.”

그리고 책을 읽고, 그걸 함께 이야기하는 일이 예상보다 훨씬 더 즐거웠다. 누군가는 내가 전혀 다르게 해석한 문장을 가져와 인생의 명장면처럼 풀어놓고, 누군가는 아예 건너뛴 구절을 보석처럼 꺼내 든다. 그걸 듣고 있자니, 혼자 읽어온 책들도 조금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심심함이 밀어 넣은 다음 장이, 또 다른 종류의 충만함으로 차오르는 순간이었다.


시작부터 마음에 들었다. 규칙도 기준도 없는 생활에서 슬쩍 빠져나와, 마치 초규칙의 톱니바퀴가 정교하게 맞물려 돌아가는 안정된 세계로 입장한 느낌이었다. 누가 언제 말을 시작하고 누구 차례에 어떤 질문이 건네지는지, 이 모임에는 나름의 문법과 순서가 있었다. 그 정도만으로도 마음이 한결 놓였다.


“안녕하세요, 모임에 처음 나온 B라고 합니다. 겉으론 성인인데, 속은 아직 미성숙합니다.”


원래는 이름만 말하고 끝내도 되는데, 입이 한 번 열린 김에 굳이 ‘내적 상태’까지 보고해 버렸다. 아마도 조급했던 것 같다. ‘아, 여기다.’ 싶은 확신이 들면 사람은 괜히 자기 캐릭터를 한 겹 더 칠하게 된다.

“반갑습니다, B님. 혹시 좋아하는 작가나 책이 있으세요?”

“아, 네. 저는 밀란 쿤데라, 히라노 게이치로, 이승우 작가를 특히 좋아합니다.”

“조합이... 이유를 여쭤봐도 될까요, 아니면 ‘그냥요’라고 하셔도 됩니다.”

“‘그냥요’로 넘기기엔, 제가 좀 찜찜할 것 같아서요.”


사실 “그냥요”라고 말하고 빠져나올 수도 있었다. 그런데 오래 책을 붙들고 살아온 사람에게는, 이런 질문이 일종의 버튼이다. 그동안의 시시콜콜한 대화들, 날씨, 직장 스트레스, 카톡 답장 속도, 이런 것들에서 잠시 벗어나, 내가 오래 붙들고 있던 독서 경험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마음껏 덧칠해도 되는 자리라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쿤데라는 사랑과 정치, 개인과 역사를 저울질하는 방식이 굉장히 계산적이죠. 가볍게 농담을 던지는 것 같다가도, 끝에는 뒤통수에 묵직한 돌 하나를 남겨요. ‘사랑이라는 사적인 감정을 시대의 무게 위에 올려놓고도 버틸 수 있냐’고 시험하는 느낌이랄까요. 반면 이승우는 포근한 담요 같아요. 새로 산 구스 담요 말고, 세탁을 여러 번 해서 조금 누렇게 바랬는데, 그래서 더 안심이 되는 리넨 담요. ‘우리 다 미숙하니까, 너도 괜찮아’라고 조용히 말해주는 사람 같아요. 읽다 보면, 내가 아직 덜 된 인간이라는 사실이 이상하게 괜찮아지는 기분이 들어요.”


이쯤에서 관찰자 자아가 슬쩍 끼어든다. ‘진정해. 이제 그만.’ 그런데 이미 말은 시동이 걸렸고, 나는 브레이크가 어디 있는지 잠시 잊어버린 상태였다.


“와, 멘트 되게 준비해 오신 것 같아요.”

“네, 거의... 누르면 나오는 레퍼토리입니다.”

“진짜요?”

“그럼요.”


근처에서 작은 웃음이 퍼져 나간다. 그제야 속으로 중얼거린다. ‘봐라, 또 분위기 좋다고 느끼니까 말이 길어진다.‘


“그럼 히라노 게이치로는요?”

“히라노는 마음을 해부하긴 하는데, 수술용 칼 대신 연필을 쓰는 사람 같아요. 끝까지 논리로 밀어붙이다가도 마지막엔 꼭 마음이 남죠. 읽고 나면 ‘사람이 좀 한심해도… 그래도 살 만하다’는 쪽으로 기울어요. 저한텐 예약 없이 들를 수 있는 상담소 같은 존재랄까요.”


말을 마치고 나서야 관찰자 자아가 한숨을 쉰다. ‘너 왜 이렇게 신났냐.’ 힘 빠진 자아는 이미 반쯤 포기한 눈치다. 게다가 사람들의 눈빛이 너무 달콤하다. ‘더 말해 주세요.’라고 직접 말하진 않지만, 그 비슷한 의미가 눈가에, 웃음 끝에 살짝 걸려 있다. 이쯤 되면, 멈춘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미 나는, 그 시선들 사이에서 ‘조금 더 말하고 싶어지는 인간’ 쪽으로 기울어 있었다.


“혹시 세 작가, 공통점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음... 잠깐만요.”


나는 잠깐 숨을 골랐다. 말이 길어질수록, 대답은 오히려 단단해져야 하니까.


“세 작가가 결국 하는 말은 비슷한 것 같아요. 인간은 원래 좀 이상하지만, 그렇다고 사랑이나 신뢰를 포기하진 말자고요. 다만 방식이 달라요. 쿤데라는 냉소를 한 바퀴 돌고 애정을 다시 회수하고, 히라노는 끝까지 해부하다가도 ‘그래도 서로 필요하다’로 가고, 이승우는 아예 처음부터 ‘괜찮아’ 하고 옆자리를 내주죠.”

“이 정도면 B님이 다음 모임 발제, 거의 확정 아닌가요?”


그 말에 나는 웃었지만, 속으로는 어쩐지 따뜻했다. ‘아, 이 사람들은 정말로 궁금해하는구나.’ 호의가 예의범절이 아니라 관심의 얼굴로 다가오는 순간이 있다. 그날의 공기가 딱 그랬다.


문제는, 그럴 때마다 나는 성능 좋은 전기포트처럼 순식간에 끓는다는 것이다. 시작할 때는 늘 ‘적당히 말하고 멈추겠지’ 싶지만, 막상 말이 나오기 시작하면 이런 생각만 남는다. ‘이것도 포인트인데...’ ‘이 얘기도 연결되네...’ 입은 계속 새로운 문장을 만들고, 내 안의 편집자는 늘 한 박자 늦게 출근한다.


“오늘 또 내가 말을 좀 많이 했구나.”


후회는 대화가 끝나고 집에 가는 길에 도착한다. 늦은 편지처럼. 그렇다고 다음 모임에서 입을 닫느냐 하면… 또 꼭 그렇지도 않다. 인간은 효율이 떨어지는 학습 기계라, 같은 실수를 약간씩 다른 버전으로 반복하면서 아주 조금씩만 달라진다. 그날의 나는 딱 그 정도로, 조금씩만 달라지는 쪽에 서 있었다.


활기찬 모임이었다. 공기 자체에 카페인이 한 스푼 섞인 듯, 다들 살짝 각성한 상태. 모임장도 역할을 아주 잘했다. 어떤 모임이든 모임장에겐 공통적인 특징이 하나씩 있는 것 같다. 무한에 가까운 에너지, 그리고 잘 굴러가는 모임을 자기 존재와 동일시하기. “모임이 잘 굴러간다 = 내가 잘 살고 있다” 이 서사가 한 번 장착되면 동력은 거의 핵연료가 된다.


문제는 그 동력이 한 곳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 열을 먹고 사람들 사이에 작은 씨앗들이 자란다. 관심, 설렘, 애매한 호감, 질투. 이름이 무엇이든, 싹이 트고 무럭무럭 자라면서 열기는 더 뜨거워졌다.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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