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걷다맞은편 산책로에서 뒤뚱거리는 소형견을 보았다. 고양이 밖에 모르는 문외한이나팔다리가 짧동하고 체구가 작은 것이 말티즈인가 싶다. 엉덩이 근육을 따라 하얗고 곱실거리는 털이 팔랑인다. 그 광경이 귀여워 한참 눈을 붙이고 있으니 아이의 걸음걸이가 조금 불편해 보인다.
시선을 올리면 조금 떨어진 곳에 아이와 닮은 머리색의 할아버지가 한 분 서계신다. 핸드폰을 꺼내들고 아이의 발자국마다 엄지 손가락을 분주히 움직인다. 그동안 아이는 한 곳에 시선을 고정한 채 종종걸음으로 열심히 거리를 좁힌다. 할아버지는 무릎을 굽힌 뒤 두 팔을 벌리고는 자신에게 도달한 그 작은 것을 들어 올린다.
-아이구, 우리 몽실이 예뻐요.
나긋한 목소리만큼이나 다정한 손길이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곧 아이는 빨간 천이 덮인 유모차에 옮겨진다. 이제 나와 테오는 맞은편 도보에서 둘의 위치를 따라잡았다. 그제야 아이의 얼굴이 보인다. 노견인 듯 눈물자국이 가득하지만 여전히 동그랗고 맑은 눈과 행복을 머금은 평온한 표정이 있다.
-가끔 사랑은 저렇게 눈에 보이지.
-응.
테오가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짓는다. 반려동물과 함께하면 사랑을 더욱 자주 목격하게 된다.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언어가 통하지 않는 이종 간 사랑표현은 결국행동이 8할, 혹은 그 이상일 테니까.
그러고보면 나도 매일 같이 하꼬로부터 사랑을 발견한다. 아침에 눈을 뜨면 가슴팍으로 내 코를 짓누르며 골골대고, 앞뒤 보지 않고 내 위로 자신의 몸을 고꾸라트린다거나, 소파에 앉으면 양반다리 틈을 비집고 잠을 청하는 순간에서 말이다.
어제도 그런 순간이 있었다. 1년에 한 번 있는 예방접종일. 진료 전 안정제를 투약했는데, 기존의 것과 다른 종류라 그런지 병원으로 향하는 길은 안정 상태라 보기 어려웠다. 불안함이 극에 달해 높은 울음이 계속 됐고, 케이지 안에서 자꾸만 몸을 뒤척거리는 게 내 어깨로 고스란히 전해졌다.
집에서 병원까지는 고작 1.4km의 애매한 거리라 택시가 잡히지 않았다. 30분에 한 대씩 오는 버스를 타면 집 앞에서 병원과 멀지 않은 정류장까지 이동할 수 있는데, 얼마 전 노선이 개편되며 그마저도 사라져 버렸다.
자차는 없고, 자전거를 이용하자니 가방에 비해 바스켓이 터무니없이 작았다. 결국 이번에도 쓸 수 있는 건 내 몸뚱이뿐이었다. 어차피 잘 됐다 싶었다. 오늘따라 날카롭게 울어대는 아이를 데리고 버스에 타도, 내릴 때까지 마음속으로 제발 울지 마라 초조하게 되뇔 판이었다.
되려 진료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자 약효가 도는 듯했다. 걸음은 느릿하고 움직임은 뭉근했다. 근육 사이사이로 스며드는 몽롱함 탓인지 하꼬는 거실 한가운데, 평소 즐겨 찾지 않는 매트 위에 한참을 앉아있었다.
동그랗고 생기 있게 채워졌던 눈은 가로로 길게 찢어져 순막이 미끄러지듯 나왔다 사라지길 반복했다. 순막은 고양이의 제3의 눈꺼풀이라 불리는 부위인데, 눈머리에 숨어있는 하얀 막을 말한다. 막 잠에서 깨거나 나른하게 졸린 고양이가 눈을 깜빡일 때 순막이 눈의 일부를 덮어낸다면, 안정의 증거라할 수 있다.
그 틈에 나는 서둘러 욕실로 향했다. 웃옷을 벗으니 양쪽 어깨에 벌겋고 긴 자국이 물들어 있었다.병원을 오가는 길 위에서 적당히 평평하고 깨끗한 구조물을 마주칠 때마다 가방을 내리고 쉬었는데도 멍이 선명했다. 승모근이 찌르르 울렸다. 역시 생명을 짊어지는 건 묵중한 일이로 구만. 더울 줄 알면서도 보온보다 보호를 위해 재킷을 걸친 나를 칭찬했다.
어깨의 피로감을 덜고자 다른 날보다 길게 샤워를 즐겼다. 샤워기를 내려놓고 커튼을 젖히자 하꼬가 앞에 앉아있었다. 평소와 다름없이, 양발을 가지런히 모으고 등을 보인 채였다. 커튼 밖으로 물방울이 튈 텐데 아랑곳 않고, 내가 밖으로 나와 몸을 닦고, 옷을 입고, 머리를 다 말릴 때까지 곁을 지킨다. 그 마음은 참 늠름한데, 조막만 한 머리와 푸짐한 엉덩이 실루엣이 꼭 땅콩 같아 웃음이 새어 나온다.
뚝뚝 떨어지는 물기를 닦아내며 하꼬의 이름을 부르자 나를 향해 느릿하게 고개를 돌린다. 올려다보는 눈이 감길락 말락 위태롭다. 약기운과 대항하면서 나를 기다리는 땅콩 병정을 보고 있자니, 막 행복해서 막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고생한 하꼬에게 담백한 닭고기 스프를 끓여 먹였다. 찹찹 한 그릇을 해치운 아이를 안고, 미리 전기장판으로 데워둔 침대로 향했다. 오늘은 일찍 잠을 청하는 게 좋을 것이었다.
약기운에 식곤증까지 밀려드는지, 하꼬는 내 어깨를 베고 금세 잠이 들었다. 조심스레 반대쪽 팔을 들어 무드등을 껐다. 정막과 정적 틈. 어깨의 통증보다 맞닿은 아이의 심장 박동이 더욱 선명한 밤이었다.
다른 어떤 날에 찍었던 총명한 눈의 하꼬, 내가 물귀신에게 잡혀갔을까봐 걱정이라도 하는 걸까? 뭐든 귀엽고 소중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