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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하양 Jun 17. 2021

미용실에서 머리를 하다 울어버렸다





나 요즘 편두통이 너무 심한데
우리 집에 그런 사람이 있던가?




언니가 가족 대화방에 메시지를 보냈다. 나는 즉각 답을 하다 말고 백스페이스 키를 연신 눌러댔다. 그리고 언니와의 개인 대화창을 열어 방금 전과 똑같은 문장을 써서 보냈다.




   -엄마가 그랬잖아.




고작 일곱 글자가, 아니 사실은 고작 두 글자가, 뭐 그리 아직까지도 불편함으로 가득 차있는지. 아, 그랬어? 언니는 기억하지 못하는 듯했다.




  -난 엄마 하면 떠오르는 것 중에 하나가 그건데. 편두통.





여자는 편두통이 아주 심했다.

나는 종종 그런 여자의 고통을 목격하곤 했다.








몇 살 때였을까. 하교를 하고 버스에서 내리는 그 풍경 속에 언니가 없는 걸 보아하니, 언니가 중학생이 되고 난 후, 그러니까 적어도 내가 열한 살가량 됐을 때인가 보다.


방과 후 활동을 마치면 오후 네시 반. 백 원짜리, 이백 원짜리 불량식품을 파는 장미 슈퍼 앞, 대나무로 엮은 낡은 평상에 앉아 하루 종일 주머니에서 짤랑대던 동전을 꺼낸다. 450원, 정 없이 딱 버스값뿐인 게 괜스레 서럽다. 슈퍼만 들여다보면 불쌍히 여길까 싶어 큰길 쪽으로 몸을 돌려 앉았다.







버스에서 내린다. 정류장에서 마을까지 이어진 긴 길을 걷는다. 양쪽으로 하얀빛, 분홍빛 연꽃이 빽빽하게 피어오른 걸 보니 한 여름이었나 보다. 골목에 들어간다. 또 들어간다. 그리고 또 들어간다. 삐걱이는 철문을 연다. 도대체 우리 집 대문은 초록색인 걸까 갈색인 걸까. 뭐가 되었건 창피한 건 매한가지였다. 입 밖으로는 꺼내지 못할 말이라 괜히 쾅-하고 문을 닫았다.






화분 밑에 감춰진 열쇠를 주워 문고리에 넣고 돌린다. 어라, 평소와 같은 묵직함이 없다. 다시 열쇠를 화분 밑에 숨겨놓고 집 안으로 들어선다. 문을 열자 빛이 잘 들어오지 않는 집에서 눅눅한 공기들이 터져 나왔다. 죽어있는 먼지 냄새가 코로 훅하고 밀려들어온다. 공기조차 달아나고 싶어 하는 곳에 살고 있구나. 또다시 현관문을 쾅 닫았다. 신발을 벗고 삐걱이는 마룻바닥을 밟고 안방으로 들어간다.








여자가 침대 위에 잠들어있었다.

애니메이션 속 공주님들처럼 평화롭게 잠든 모습은 아니었다. 미디어에서 그려내는 공주처럼 가녀린 몸매의 소유자도 아니었다. 그래서인지 그녀는 늘 자신의 체형에 불만족했고 살 빼는 데 도움이 되는 약(먹는 것이든, 바르는 것이든)을 사들이면서 그로부터 벗어나고 싶어 했다. 거울 속 자신에게 비친 모든 것으로부터 달아나고자 했다. 하지만 침대 위에 그녀가 그렇게 잠들어 있는 날이면, 내 눈에 그녀는 여타 공주님들처럼 참으로 연약해 보였다.







그녀가 누워있던 연베이지 침대 프레임과 찡그린 미간과 침대 옆 서랍 위에 올려둔 갈색 테두리 안경과 부스스한 곱슬머리 위로 드리워진 벽지의 무늬. 모순적이게도 이제는 그만 놓고 싶은 그 순간, 그 공간, 그 존재의 기억이 여전히 생생하다.







  [엄마! 오늘 왜 빨리 왔어?]





처음엔 기뻤다. 그녀의 퇴근 시간은 별달리 정해져 있는 게 아니었으니까. 특히 여름, 성수기가 되면 자정이 넘도록 야근을 하기도 했다. 부족한 생활비를 충당하기 위함이었을 테다. 그래서 잔업을 희망하는 사람이 있냐는 물음에 늘 손을 들었을지도 모른다. 자의인지 타의인지 생각할 틈도 없이 그저 희망한다-,고 답했을지도 모른다.

 





와락 이불속으로 파고들면 그녀는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조용히 좀 해, 머리 아파] 하며 등을 돌렸다. 그러면 바깥이 완전히 어두워질 때까지 거실 탁자 앞에 앉아 시간을 보냈다. 그녀의 편두통은 어디서부터 시작됐을까, 어쩌면, 어떤 순간에는 그녀에게 있어 내가 통증 그 자체이지 않았을까 고민하면서.






며칠 후면 26년 전 내가 태어난 날이 된다. 여자가 두 번째 아이를 실제로 마주한 . 그날의 그녀보다 세 살이나 많은 나는 그녀를 위해 소원을 빌기로 했다.



더 이상 그녀에게 통증이 찾아오는 일이 없기를. 자의건 타의건, 더는 희망하지 않는 것에 희망한다고 손 드는 일이 없기를.











오래된 기억을 끄집어내는 사이 가족 대화방은 한의원에 가서 체질검사라도 받아보자는 새어머니의 걱정 어린 문자들로 가득 차있었다.




핸드폰을 내려두고 미용실의 통유리창을 내려다본다. 하필 또 이럴 때, 젊은 엄마와 꼬맹이가 손을 잡고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다. 머리칼은 돌돌 말아놓고, 기계 아래서 옴짝달싹도 하지 못한 채로 재빨리 떨어지는 눈물을 닦았다. 별꼴이다,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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