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거지를 하던 나는 재빨리 물을 잠갔다. 그릇에 부딪혀 사방으로 튀어나가던 물소리가 멎자 방에 적막이 흘렀다. 잘못 들었나? 밖에서 옅게 찢어지는 듯한 금속 소리를 들은 것 같은데. 내 감각으로 파악이 어려울 땐 우리 집 고양이를 보면 된다. 내가 잘못 들은 건 아닌 듯했다. 아이는 동공이 땡그랗게 커져서낮은 포복으로 베란다를 응시하고 있었다.
고무장갑을 낀 채 베란다로 나가 주변을 살폈다. 밖은 별 다를 것 없는 어둠. 뭐였을까? 어딘가 꺼림칙한 기분을 지우려고 TV를 켜놓고 마저 설거지를 마쳤다.
다음 날 아침, 나는 출근 준비 중이었다. 늘 비슷한 시각, TV 속 같은 얼굴의 아나운서들, 매번 같은 자리에 앉아 머리를 매만지는 나. 평범하게 시작하는 아침이었으나 우리집 고양이의 울음소리만은 달랐다.
먀-옹, 먀-옹
아이는 바깥을 내다보면서, 마치 위험상황에 울리는 경보 사이렌처럼 높고 날카로운 소리로 반복적으로 울어댔다. 워낙 순둥한 편이라 이런 울음소리는 (물을 싫어하는) 아이가 1년에 한 번씩 목욕을 (당)할 때 밖에 내지 않는 것이었다. 나는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베란다로 향했다.
뭐야 이게.
실외기 옆, 바람에 흐부끼는 검은 물체. 비닐봉지였다. 어젯밤 어둠 속에 가려져 있던 검정 비닐봉지가 아침이 되자 적나라하게 그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내가 살고 있는 층은 지면과는 꽤 거리가 있는 아파트 중간층. 고로, 갑작스레 내 공간으로 내동댕이쳐진 이 검은 물체는 윗집 혹은 옆집에서 날아들었을 확률이 높다.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 알 턱이 없어 망설이다 곧 베란다 창을 열고 옷걸이로 비닐봉지를 건져냈다. 집게손으로 비닐 손잡이를 잡고 안을 들여다보니, 무게감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 맥주캔 하나가 전부였다. 감춰진 정체를 확인하자 내 머릿속에선 자연스럽게 몇 가지 상황이 그려졌다.
우선, 실수일 수 있다. 윗 혹은 옆집 이웃이 어젯밤 퇴근을 하고 고된 마음을 달래며 맥주를 한 캔 마시고는 잠시 열이 올라 손 끝에 비닐봉지를 달랑달랑 든 채 베란다에 나가 바람을 쐬다가 그만 실수로 떨어뜨렸을 수 있다. 3월이었지만 한파 못지않았으니 손이 제 멋대로 움직이지 않았을 수도 있을 것이다.
반대로 실수가 아닐 수도 있다. 바로 앞에 분리수거장이 있지만 귀찮아서, 혹은 정말 아무 생각 없이, 한 번 해보고 싶어서, 등등 갖가지 이유로 의도적으로 던져본 것일지도 모른다. 에이 설마. 엘리베이터 타고 열 걸음만 걸으면 분리수거 공간이 있는데 일부러 그러는 사람이 있다고? 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내가 확실히 답할 수 있다.
있다, 그런 사람들이.
세상이, 그 세상을 살아가는 인간들이, 퍽 아름답지만은 않다는 걸 매일 밤마다 증명하던 그런 사람들이 있었다. 그런 사람들 때문에 내겐, 창문을 열면 쓰레기밖에 보이지 않는 곳을 집이라 부르며 살아야 했던 시절이 있었다.
스물한 살, 나의 세 번째 월세방은 45만 원짜리 아주, 아주 협소한 오피스텔이었다. 밥을 먹으려면 이부자리를 치워야 하는 좁디좁은 공간이었지만 역과 3분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 남은 방이 없을 정도로 인기가 좋은 곳이라 했다. 직전 집에서 바 선생(바퀴벌레)과 대면해버린 나는 뜬 눈으로 밤을 꼬박 새웠고, 동이 트자마자 집을 보러 다니기 시작하여 그날 저녁 계약과 이사를 모두 마칠 수 있었다.
이사를 마친 다음 날 아침, 바깥 풍경을 보려 반쯤 드리워진 커튼을 열었고 나는 그대로 얼어붙고 말았다. 내 방 바로 앞, 구옥 빌라에서 나를 반긴 건 옥상을 가득 메운 쓰레기 더미와 지독하게 풍겨 드는 악취였다.
빌라는 사람의 흔적이 전혀 없는 폐가였다. 처음엔 집주인이 이사를 갈 때 쓰레기를 그곳에 모아 버리고 간 것일까 의심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내 추측이 틀렸단 걸 알았다. 같은 건물 위층에서 쿵-하고 떨어지는 쓰레기 소리에 놀라 잠이 깬 어느 새벽부터.
처음 묵직한 비닐 소리를 들었을 땐 어안이 벙벙했다. 엘리베이터가 있고 건물 1층에 쓰레기를 버리는 곳이 있는데 그게 귀찮아 쓰레기를 내던진다고? 도저히,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런 나를 비웃듯 동이 트기 직전까지도 쿵- 쿵- 쿵- 쓰레기는 떨어져 내렸다. 적어도 꼭 하루에 한 번씩, 많으면 세 번까지도.
참으로 아이러니했다. 그 빌라 옥상은 세상이 가장 바쁜 낮동안에 가장 조용한 곳이었다. 쓰레기를 투기하는 행위가 부끄러운 짓이란 걸 알고는 있던 건지, 혹여 남이 볼까 싶어 새벽이 오기만을 기다리는 이들 때문이었다. 어둠이 찾아들면 어김없이 양심을 내던지는 소리가 들렸고 나는 실소했다.
양심은 부끄러움을 아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것만도 아닌 듯했다. 부끄러움을 알지만 그 순간만 넘어가면 사라질 무감각한 부끄러움이라면 그건 양심이 아니다. 양심은 은근하게 계속 아파야 한다.
민원을 세 번가량 넣었다. 관리소에서도 이미 알고 있는 사안이었다. 그러니 그 집이 공실이었던게지. 처음엔 빌라 주인을 알 수가 없어 어찌할 수 없다는 답변뿐이었다. 국민신문고에도 민원을 넣었지만 답은 오지 않았다.
비가 오는 날이면 나는 한껏 예민해졌다. 다음날 쓰레기 사이에 퍼질 습기와 벌레와 배가될 악취 걱정 때문이었다. 사실, 쓸데없는 걱정이었을지도 모른다. 그 쓰레기는 이미 오래전부터 수없이 아침이슬과 비와 눈을 맞으며 누군가의 양심과 함께 속에서부터 천천히 썩어 들어갔을 테니까.
켜켜이 쌓인, 음식 소스가 덕지덕지 묻은 레토르트 포장지와 도시락 뚜껑 따위를 보며 나는 환멸감에 사로잡혀 커튼으로 눈을 가릴 수밖에 없었다.
도움을 받을 수 없다면 위약금을 토해내고라도 이사를 갈까 고민한 적도 있으나 그럼 여기는 어떻게 될까, 하는 생각이 늘 뒤따랐다.
화려한 도시, 멋들어진 고층 오피스텔에 사는 이들은 매일 밤이 되길 기다리고, 자신을 가려줄 어둠만 있다면 또 아무 죄책감 없이 오물 더미를 내다 버리겠지. 그리고 낮이 되면 회사에 출근해 '좋은 아침'이라며 상냥하게 인사를 건넬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쌓여가는 쓰레기 더미를 보고도 계산기를 두드리다 방법이 없다며 고개를 저을 것이고, 또 누군가는 영문도 모른 채 45만 원짜리 쓰레기 뷰 월세방에 짐을 들였다 며칠 만에 도로 짐을 싸게 될지도 모른다.
그렇게 여긴, 공공연한 사실이 그들만의 비밀로 이어지는, 매일 밤마다 버려지는 양심 소리로 그득하지만 누구도 시끄럽다 하지 않는, 비상식이 상식이 되어가는 그런 괴상한 곳이 될 것이다.
스물한 살의 나는 마냥 아름답지 못한 세상과 마주했고, 그래서, 동영상을 찍었다. 옥상을 채우다 못해 흘러넘치는, 매일 꾸준히 늘어가는 새것 같은 쓰레기들의 사진을 찍고, 다시 한번 국민신문고와 구청에 장문의 글을 남겼다. 나는 비싼 월세를 주고 쓰레기와 함께 살고 있으며 이곳은 매일 밤 무관심으로 더럽혀지고 있다고.
얼마 지나지 않아 구청 담당자가 나를 찾아왔다. 이른 아침, 그 빌라 앞에서 담당 공무원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또 얼마 후, 기자라는 사람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어떻게 내 번호를 알았는지 덜컥 겁이 났지만, 이제야 누구나 아는 사실이 되었다는 생각에 음성변조를 부탁하고 내가 보고 경험한 것을 말했다.
일주일 후 아침, 언제나처럼 같은 풍광을 상상하며 커튼을 열었을 때 나는 텅 빈 빌라 옥상과 마주했다. 처음 쓰레기산을 마주했을 때처럼, 어쩐지 믿기지 않아 한참을 창 앞에 서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엘리베이터에는 안내문이 붙었다. CCTV를 설치하였으니 쓰레기를 무단 투기할 시 마땅한 법적 책임을 묻겠다는 내용이었다. 뉴스에선 기자가 직접 쓰레기를 뒤지며 영수증을 찾는 장면이 흘러나왔다.
속에 응어리진 어떤 것이 일순 빨려 나간 것처럼 개운했지만 동시에씁쓸함이 몰려왔다. 안내문의 그 빨간 글씨에만 겁을 먹는 사람들이, 책임을 묻겠다 으름장을 놓아야만 비상식을 멈추는 이들이 이 건물에만해도 수두룩하다는 사실에 어쩐지 몸이 으슬으슬 떨렸다.
그래도, 그렇게라도 경고가 되었다면 잘된 일이라 생각하기로 했다.분명 앞으로 살아가다 아름답지 못한 세상을 다시 마주하게 될테고,그 때마다 미미할지라도,또 사진을 찍고 빨간 글씨의 안내문이 붙도록 경고를 보낼 것이다. 내가, 누군가가, 우리가,무감각한 부끄러움을 가지고 살지 않도록, 양심이 무뎌지지 않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