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다, 외롭다, 고달프다... 그렇지만 또다시 도전한다
KOICA 해외봉사단으로 동티모르에 온 지 어언 몇 달이 지났다. 해외봉사를 오면 혼자 집을 얻어 살게 되는데, 모두가 알다시피 자취는 세계 어느 곳에서 나 쉽지 않은 일이다. 더군다나 배달의 민족과 요기요 어플이 통하지 않고, 몇 발자국만 걸어 손을 뻗으면 닿는 편의점이 있는 것도 아니며, 마트에 가면 즉석식품들이 즐비해 전자레인지에게 넣어주면 자동으로 그럴싸한 요리를 만들어주는 요술들이 없으니 일단 배를 채우는 것부터가 일이 되는 이 곳에서의 자취는 더 어려울 수밖에 없다.
자취가 어려운 건, 그래, 살다 보면 요령이 생기기도 하고, 자취만의 장점들이 또 있고, 나름 혼자 살면서 해 먹는 게 뿌듯하기도 하고, 어차피 클수록 내가 배워야 하는 것들이니 어찌어찌 점차 적응을 해가는데, 한국이 그리울 때가 찾아오는 건 무뎌지지가 않는다. 생각해보면 작년에 교환학생을 지낼 때도 한국이 그리웠던 적이 몇 번 있었다. 그때도 겪었고, 지금도 겪는 감정인데 도무지 이 감정은 어떻게 다뤄야 잠깐 스치는 나뭇잎처럼 오는지도 모르게 날아가버리는지 알 수가 없다.
한국이 그리울 때 나의 경우, 그동안 아무렇지 않게 먹어왔던 한국음식들과 아무렇지 않게 지나쳤던 한국의 모든 모습들이 주마등처럼 머릿속에 지나가고, 한국에 대한 기억들이 미화되기 시작한다. TV나 SNS를 통해 유명해지면 우르르 사람들이 몰려 꽉꽉 차 둘러보기도 어려운 관광지, 늦게까지 일하거나 공부하는 사람들이 많아 발달된 24시 편의점, 다들 살기가 참 바쁘다는 걸 보여주는 컵라면과 삼각김밥, SNS에 감성 샷을 올리기 위해 사진을 요리조리 찍어대는 모습, 슬퍼서 마셨는지 사회생활 때문에 마셨는지 고주망태가 되어버린 먹자골목 속 사람들의 모습까지...
물론 여기에 사는 모든 시간 동안 한국이 그리운 것도 아니며 한국에 대한 모습이 모두 미화되는 것은 아니다. 분명 여기에서의 삶도 행복할 때가 많고, 타지에 와 배우는 것과 느끼는 것도 많은 건 사실이다. 하지만 가끔, 가끔은 왜 옛 어른들이 그렇게 고향, 고향을 입에 달고 사셨는지 마음속에 깊은 깨달음을 얻을 때가 찾아오는 것도 사실이다.
한국의 것들도 그립지만 그 보다 친구들이나 부모님이 그리울 때가 있다. 넓은 인간관계를 가지고 있진 못해서, 작게 둘러앉아 소주 한 잔을 부딪힐 수 있고, 때로는 의미 없는 연애상담을 들어주고, 이상한 선배의 욕을 같이 해주고, 눈이 오면 눈이 온다고, 비가 오면 비가 온다고 같은 것을 보며 공유했던 작은 몇 명이 그립다.
엊그제 중학교 동창에게 연락이 왔다. “혼자 외국 사는 거 힘들지 않아? 거기가 또 그렇게 좋은 나라도 아니고...”
나는 힘든 점도 많긴 한데, 여기 나름대로 또 즐거운 게 있고 살만한 게 있다고 대답했다. 친구는 내년에 워홀을 가려고 하는데 혼자 외국에서 어떻게 살 수 있을지가 가장 걱정이라는 고민을 털어놓았다. 자신이 너무 우물 안 개구리 같이 느껴진다는 말을 덧붙이면서, 넌 거기 간 거 후회 안 하냐고 물었다. 나도 나 스스로에게 가끔 던졌던 질문이다. 다시 해외봉사단을 지원할 때로 돌아간다면, 나는 어떤 선택을 할까.
이런 생각을 할 때마다 항상 답은 ‘한다’였다. 힘든 만큼 얻는 게 있다는 식상한 말이 있다. 완벽한 등가 비교는 어렵겠지만 나의 경우 해외봉사를 와서 힘든 것보다 얻는 게 더 많은 것 같다. 오락거리가 없어 똑같이 흘러가는 일상이 지루하게 느껴지고, 단 하루도 덥지 않은 날이 없고, 주말에 놀러 갈 곳도 없고, 현지인들의 조롱을 들어야 할 때도 있고, 당연히 한국보다 위험한 이 곳이지만, 새로운 사회를 보며 생각의 폭이 넓어지고, 나와는 다르게 살아왔고 살아갈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느끼는 점이 많고, 앞으로 내 인생에 있어 다시는 살아보지 않을 것 같은 나라에서 살고 있다는 건 정말 색다르고 의미 있으며, 무엇보다 혼자 이런 곳에서도 잘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고 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