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병 근무 중 순직한 5명의 장병들, 명복을 빌며.
내가 사는 동티모르에는 약 20년 전 상록수 부대가 파병이 되었었는데, 안타깝게도 내가 사는 지역에서 2003년 3월, 5명이 강의 급류에 휩쓸려 순직하였다. 그들은 국경 소초의 발전기가 고장 났다는 보고에 예비 발전기를 가지고 강을 건너다 차가 멈추는 상황에 맞닥뜨렸고, 고장 난 차를 견인하던 사이 상류에서 갑자기 많은 물이 닥쳐와 고립되어 모두 희생당했다고 한다. 그때 이 오에쿠시 지역에 5명의 장병들을 기리는 추모비가 세워졌고, 나는 엊그제 그곳에 다녀왔다.
사실 추모비는 이 지역으로 이사오자마자 꼭 가보고 싶은 곳이었다. 하지만 구글맵에도 나오지 않고, 인터넷을 찾아봐도 정확한 위치가 나오지 않아 고민하다가, 주민들에게 알음알음 물어 찾아갔다. 인터넷에서 찾은 추모비의 사진을 보여주며 물었는데, 한 명도 빠지지 않고 추모비를 알고 있었다. 그들은 사진을 보며 서로 ‘Korea nian(한국 꺼네!)’라고 말하며 나에게 위치를 알려주었다. 그렇게 물어 물어 도착한 추모비는 멀리 있을 거라는 예상과는 다르게 마을 중심 쪽에 있었다.
추모비는 동네에서 가장 큰 나무 아래, 그리고 바다가 잘 보이는 양지 마른 곳에, 한국을 향한 동쪽으로 살짝 틀어 굳건히 서있었다. 텅 빈 공터처럼 보이는 땅 위에 홀로 서있는 듯,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듯 보였지만, 나가는 길에 이 곳을 청소하던 한 아저씨를 만날 수 있었다. 생각해보니 추모비가 세워진지 16년이 지났는데 이 정도라면 꽤 잘 관리가 되고 있는 것 같았다.
순직한 장병들의 얼굴을 본 딴 모습을 보니 16년이라는 세월이 무색하게, 너무 가까운 일처럼 느껴졌다. 그들은 여기서 무슨 생각을 하며 지냈을까, 어떤 삶을 살았을까, 지금보다도 훨씬 낙후되어있던 예전의 오에쿠시에서 그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급류에 휩쓸렸을 때 어떤 생각을 했을까... 대답 없을 질문들을 추모비를 보며 나 홀로 던져보았다. 그리곤 계실 적 잘 닦아놓으신 덕분에 지금 전 조금 편히 사는 것 같다고, 표현할 방법 없는 감사의 말을 전했다. 현재 나도 오에쿠시에서 근무하고 있는 만큼, 이 일이 더 가깝게 느껴져 마음이 아팠다.
추모를 할 때면 항상 죽음이 멀리 있지 않음을 깨닫는다. 그 죽음은 어디에나, 언제나 있음이 느껴진다. 그러니 나는 주어진 내 삶을 더 소중히 여겨야지, 한낱 미물에 불과한 것들에 너무 마음 쓰지 말아야지, 나 자신과 내 주위 사람들과 언제 끝날지 모르는 이 생을 더 행복하게만 살아야지, 다짐한다.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며 앉아 있다가, 걷다가를 반복하니 어느새 가로등에 불이 들어왔다. 이제 갈 시간이 된 듯해 자리에서 일어섰다.
처음 왔을 때 밝았던 하늘이 어느새 어두워지는 걸 보며 시간의 흐름을 느꼈다. 이런 시간의 흐름을 16년 동안 느꼈을 유가족들에게도 애도를 표하고 싶은 저녁이었다. 어두워지니 왜인지 한국 쪽 망망대해를 바라보는 추모비가 더 외롭게 보였다.
출구를 나오니 지나가던 현지인 네다섯 명이 멈추며 나를 바라보았다. 조용한 표정과 눈빛으로, 그 일을 본인들도 안다는 듯, 지금 그 길을 걸어 나오는 너의 기분이 뭔지 안다는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