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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얀 Dec 25. 2019

집중폭우와 함께 하는 크리스마스

날이 이렇게 더운데 벌써 연말

요즘 동티모르는 우기를 지나고 있다. 처음에 내가 여기 왔을 땐 쨍쨍한 건기였는데 어느새 우기가 왔다. 여기 온 지 다섯 달이 되어가는 시점이다. 저번 글에서, 동티모르에 있으니 계절의 변화를 느낄 수 없어 시간이 가는 게 안 느껴진다고 한 적이 있는데, 우기가 오고 나니 이제야 조금 시간이 지난 게 느껴진다. 지난 4개월 동안 매일 쨍쨍 덥기만 했어서 도무지 세상이 변하는 것 같지가 않았다.

나는 똑같이 반팔에 냉장고 바지를 입고 다니는데 한국 사진을 보면 사람들은 카디건을 꺼내 입고, 지금은 롱 패딩을 입고 다니니 뭔가 이상했다. 사실 그보다 이상함을 느낀 건 수능 소식을 접했을 때였다. 인터넷 서핑을 하다가 다음 주가 수능이라는 기사를 접했는데 순간 머릿속에 ‘올해 수능은 한파가 없나 보네? 날이 이렇게 따뜻한데 수능이란 말이야?’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한국은 추운 겨울이라는 걸 깨닫기까지 오래 걸리지는 않았지만, 이 뿐만이 아니다. 내가 다니던 대학교에 총학생회 선거운동 이야기를 친구에게 들었을 때도 ‘올해는 날씨가 따뜻해서 선거운동하는 학우들이 좀 덜 힘들겠네’라고 말했다.


또한 내 생일은 12월 8일로 첫눈이 오곤 하는 날쯤인 추운 겨울이다. 그렇기에 초등학교 때부터 내 단골 생일선물은 벙어리장갑, 목도리, 털모자, 핫팩 뭉치, 히트텍과 같은 것들이었는데, 올해는 망고, 햇빛을 가릴 수 있는 전통 천, 야자수 모양을 한 장식품과 같은 것들을 받았다. 생일날에 땀을 흘리며 밥을 먹고 있으니 뭔가 대단히 잘못된 듯한 느낌이 들었었다. 게다가 글을 쓰고 있는 이 시점에서, 내일은 크리스마스다. 화이트 크리스마스가 아닌 비가 잔뜩 내리는 폭우 크리스마스는 또 처음이다. 왠지 내가 자연을 거스르고 있는 듯한 느낌마저 든다. 전구에 뒤덮여 있는 트리를 볼 때마다 왠지 모르게 더 더워지는 것 같다.


그래도 동티모르에 있다 보니 이렇게 한여름의 크리스마스도 보고, 비와 크리스마스도 보내본다. 크리스마스는 눈 내리는 어두운 밤, 화려한 조명들이 있어야 정석이라고 생각했지만, 언제 또 내가 반팔을 입고 크리스마스를 지내겠냐며 아침에 일어나 에어컨과 함께 캐럴을 틀어본다. 모두 메리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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