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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얀 Dec 25. 2019

남의 떡이 더 크다고 할 필요가 없다

산이 좋을까, 바다가 좋을까

동티모르의 수도 딜리는 해안가에 위치한 도시다. KOICA 해외봉사단원은 수도인 딜리에서 대략 두 달간 현지 적응교육을 받은 후에 임지로 파견이 되는데, 나의 임지는 동티모르 가운데에 위치한 문자 그대로의 산동네 ‘사메’였다. 동티모르의 바다를 좋아했던 나는 내륙지방으로 파견이 된 게 솔직히 조금 아쉬웠다. 여기서의 생활이 힘들 때면 바다 바로 앞 카페에 가서 시원한 커피 한 잔 들이켜곤 했는데, 그럴 때마다 ‘그래, 이곳도 괜찮지. 이런 바다도 볼 수 있고 맛있는 커피도 있으니까 말이야’했기 때문이다. 바다와 커피는 내게 작은 환기였다.


누구나, 무엇이나 장점은 있다고 했던가. 바다가 없는 내륙지방에, 산이 높아 노을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 사메는 동티모르의 다른 지역과 다르게 시원했다. 낮에는 조금 더웠지만, 해가 지고 나면 바람이 선선히 불었고 얇은 남방 정도 걸쳐야 감기 걸리지 않았다. 수도에 살 때는 너무 더워 에어컨이 없인 낮에 버틸 수가 없었는데, 그래도 사메에서는 버틸만했다. 저녁에 부는 선선한 바람도 좋았고, 창문을 열고 자면 아침에 날 깨우는 차가운 공기의 촉감도 좋았다.


게다가 내가 살던 곳은 현지인 소유의 주택이었는데, 수도인 딜리에서 살았다면 경험해보지 못했을 주거지였다. 왜냐면 이 주택에는 테라스가 정말 좋았다. (테라스라고 하기 민망할 정도로 작고 별거 없었지만) 그곳은 후에 나에게 바다와 커피가 되어주었고, 특히나 밤에는 보면서도 믿을 수 없는 수많은 별 아래 나를 있게 했었다.


가끔 밤에 정전이 되어 불이 다 꺼지면 더 많은 별들이 보였다. 살면서 보지 못한 별똥별도 볼 수 있었다. 어느 날은 밤 11시에 정전이 되어 밖을 나가니 이 세상에 별말 고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별 밖에 보이지 않았었다. 감동적이었다. 빛 하나 없는 곳에서 별을 보니 정전이 된 게 너무 재밌었다. 난생처음으로 정전이 고마운 순간이었다. 사실 동티모르는 정전이 자주 되는데, 수도인 딜리의 거주지(작은 빌라 같은 것들)는 대부분 발전기가 있어 바로 1분 내에 전기가 다시 들어온다. 근데 지방은 그렇지 않다. 덕분에(?) 20여 년간 살면서 본 별들보다 사메에 살면서 본 별이 더 많다.


하지만 정전은 그 이후 아침이나 한낮에 눈치 없이 찾아와 물을 끌어올리지 못하게 해 단수를 시켜버리기도, 밥을 짓지 못하게 하기도 했다. 더군다나 동티모르에선 가스가 비싸기 때문에, 지방의 경우 대부분 인덕션을 사용해서(물론 아궁이가 있는 가정집이 많다) 정전이 되면 라면도 끓여 먹을 수 없었다. 물론 대부분 2-4시간 이내로 전기가 다시 들어오긴 했는데, 그래도 그 순간에는 이 정전이 과연 언제 끝날까 마음 졸이게 된다. 그때마다 나는 전기를 하염없이 기다리며 속으로 마구 타일렀다. 앞으로 정전 좋다고 안 할 테니 제발 전기야 들어와 달라고, 굶느니 차라리 별을 안 보겠다고.


그렇게 친환경적 생활에 어찌어찌 적응을 해나가고 있었는데 사메에서 안 좋은 사건이 터져 지금은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오게 되었다. 지금 사는 지역은 딜리보다 더 바다가 예쁜 마을인데, 좋아하던 바다 앞에 살게 되긴 했지만, 날씨가 너무 더워 가끔은 사메의 아침에 코 끝으로 느껴지는 차가운 공기가 그립곤 한다. 역시, 어딜 가나 다 장단점이 있다. 남의 떡이 커 보이는 건 다 쓸데없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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