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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얀 Dec 27. 2019

1년째 하루도 빼놓지 않고 일기를 쓴 비법

해외봉사 중에도 예외는 없다. 일기 쓰는 시간이 제일 좋다.

아침 7시, 새벽에 바뀐 찬 공기가 햇빛을 만나 따뜻해지려는 시점에 눈을 뜬다. 알람이 없어도 일찍 눈을 뜬다. 방음이 하나도 되지 않는 집인 덕에 옆집 아기 울음소리가 아침을 깨워주기 때문이다. 아기가 울지 않으면 노랫소리가 들리기도 하고, 음식을 하는지 쇳덩이가 부딪히는 소리가 깨워주니 늦게 일어나 지각할 일 같은 건 걱정하지 않는다. 이불을 걷고 밤에 켜 두는 외부 등을 끄러 간다. 주방으로 가 뒷문을 열고 오늘은 얼마나 더울까 햇빛을 잠깐 쬐어본다. 그리고 식탁 위에 올려둔 바나나를 하나씩 까며 휴대폰의 메시지를 확인한다. 어차피 몇 개 안 와있어 오래 걸리지 않는 이 일을 끝내고 나면 블로그 앱을 연다. 그리고 일기를 쓴다.


아침먹으며 일기 쓰기

나는 블로그에 어제 찍어둔 사진들을 다 올리고 하나씩 설명해가는 방식으로 일기를 쓴다. 흡사 초등학교 때 썼던 그림일기와 비슷한 방식이다. 찍어둔 사진의 힘을 빌리지 않으면 어제 있던 모든 일을 기억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사진을 첨부하며 일기를 쓸 수 있는 블로그가 나에겐 적격이다. 처음엔 ‘일기는 역시 손으로 직접 써야지!’하며 자필로 써보았으나 타자기에 익숙해진 탓에 오랫동안 글씨를 쓰는 게 퍽 귀찮기도 했고, 무엇보다 사진 없이 글로만 쓸 수 있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렇게 일기를 한 20분 정도 쓰고, 올리기 전 꼭 비공개로 전환한다. 아무도 보지 않는 일기여야 진짜 솔직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처음에 블로그에 일기를 공개로 몇 개 써놓고 ‘뭐 내 일기만 쓰는 블로그에 누가 들어오겠어?’했다가 조회수가 찍혀있는 걸 보고 얼굴이 굉장히 화끈해진 적이 있어 비공개로 돌리는 걸 잊지 않는다.


일기 쓰는 일, 처음엔 물론 귀찮다. 나도 매일 일기 쓰기를 수도 없이 시도했었고, 작심삼일로 실패했었다. 그런데 지금 내가 1년 넘게 일기를 꾸준히 쓴 비법은, 아침 먹는 시간=일기 쓰는 시간으로 정한 것이다. 그 시간에 원래는 제대로 깨지 않은 잠과 싸우며 아무 생각 없이 밥을 먹었다. 그러다 차라리 이 시간에 일기를 써보자고 생각했고, 하루, 이틀, 일주일을 반복하면서 습관으로 고정시켰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 전에 일기를 쓰거나 쓰기로 마음을 먹는데, 나의 경우 자기 전에는 피곤하고 졸려서 자꾸 하루 이틀 건너뛰게 됐다. 일기는 써보고 싶지만 잘 안 되는 사람들은 시간을 딱 정해 보는 게 어떨까? 아침 화장실에서, 출근길 지하철에서, 회사 가기 전 한 잔 마시는 아메리카노를 주문하고 기다릴 때, 점심시간 이후에 오는 식곤증을 이기고 싶을 때, 집에 와 밥을 짓고 기다릴 때, 샤워 직후에, 빨래를 세탁기에 넣고 기다릴 때, 나처럼 자기 전에 너무 피곤하거나 졸리지 않다면 자기 전도 너무 좋은 때다. 딱 정한 그때는 무조건 일기를 쓴다고 다짐하고 일주일만 해보면 습관으로 이내 자리 잡을 것이다.


커피와 일기

일기는 똑같은 나의 하루를 다 다르게 만들어주는 장치다. 일상생활을 살다 보면 월요일이 화요일 같고, 오늘이 어제 같고, 평일은 평일이요, 주말은 주말은 주말이게 된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냥 평일엔 일하고 주말엔 쉰 거밖에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일기를 쓰고 하나하나씩 잘 보면 매일 다른 하루들이었다는 걸 알게 된다. 그래서 나의 경우 일기를 쓸 때 하루 있던 일만 나열하지 않고 내 생각들을 꼭 적는다. 내가 느끼는 감정과 생각들이 하루를 다르게 구성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끔 썼던 일기를 들춰 읽다 보면, 그 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보다 내가 어떻게 느꼈는지 그 감정이 더 재밌고, 배우는 게 많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초등학교 때부터 어른들이 말하는 일기 쓰기의 진 맛을 이제야 알았다니, 기록해두지 못한 지난날의 세월이 아깝다. 내 삶을 표현하고 순간순간들을 잡아둘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은 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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