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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얀 Dec 30. 2019

생전 처음 보는 언어를 두 달안에 배워야 한다고요?

언어를 배우는 효과적인 방법

KOICA 해외봉사단은 해외로 파견이 된 뒤에 두 달간의 현지 적응교육을 받는다. 이름은 현지 적응교육이지만 사실 ‘현지어 집중 공략 기간’이 더 맞지 않을까 싶다(기수마다, 나라마다 상황은 약간씩 다르겠지만). 나의 경우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점심시간 1시간 반~2시간을 제외하고 토요일까지 학원에서 수업을 들었다. 한국에 주 5일제가 도입된 이후, 그러니까 내가 초등학교 4학년 때쯤부터는 토요일에 학교를 가본 적이 없는데, 토요일까지 9시에 수업을 들어야 한다니. 이게 뭐란 말인가. 심지어 나에게 시간표를 짤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진 대학생 때부턴, 금요일 공강을 무조건 만들어내기 위해 요리조리 머리를 굴리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던 전적이 있는 나에게(물론 침대 위에 누워 놀기 위함은 아니었다!), 토요일 수업이 도전장을 내민 것이다. 주 5일 제라는 정책 하에 나라에서 초등학교 시절부터 지켜준 나의 워라밸 울타리를 넘지 말라고, 그 도전장 안 받겠다고 소리치고 싶었으나, 이 곳은 주 5일제가 통하지 않는 동티모르였다. 그래, 로마에선 로마의 법을 따라야지. 어쩌겠나. 이왕 이렇게 된 거 주 6일 수업 들으면 얼마나 잘하게 되는지 두고 보자고 나도 도전장을 내밀었다.


한 반에 5명의 봉사단원이 모였다. 동티모르로 파견되기 전, 국내 교육원에서 10시간 남짓 배운 이력밖에 없는 우리였다. 이 현지 적응교육까지 모두 끝나게 되면 현지어를 제대로 배울 시간이 많이 없을 테니 지금 제대로 배워놓으라는 조언을 귀에 딱지가 나게 들었고, 그 덕인지 다들 초반엔 의지가 빛나 보였다. 어느 강좌나 마찬가지로 초반 수업은 어렵지도 않고 의지도 가득해서 공부가 잘된다. 나 역시 주 6일에 언제 그렇게 슬퍼했냐는 듯, 학원가는 시간이 즐거웠었다. 아는 단어와 문장이 늘어나 점점 말할 수 있는 게 많아지는 것도 좋았고, 선생님들과 소통이 되어가는 그 과정도 뿌듯했다. 무엇보다 동티모르의 현지어인 테툼어가 어렵지 않고 쉬워서, 딱히 부딪히는 난관이 없어서 그랬던 것도 같다.


하지만 뒤로 갈수록 배운 내용은 많아지는데, 그걸 모두 기억해야 하고, 새로 배우는 내용까지 모두 습득해야 하는 상황에,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테툼어 수업’만’ 듣다 보니 점점 지치는 사람들이 생겼다. 그렇다. 사실 내 얘기다(나뿐만은 아닐 거라고 확신한다). 그런데 그도 그럴 것이, 중고등학교 모두 한 시간씩 과목이 바뀌지 않나. 수업이 길다는 대학 교양수업도 최대가 3~4시간이다. 그런데 테툼어 한 과목만 7시간 수업을 들으니 힘들 수 있는 거 아닌가(누군가 그렇다고 한 명이라도 동의해줬으면 좋겠다). 그때마다, 언어는 교실 안에서만 배우는 것보다 지금 현지에 와있으니 밖으로 나가서 부딪히며 배우는 게 더 많지 않겠냐는 논리를 나 스스로에게만 펼치곤 했다. 그리고 가끔 그 논리가 나를 설득할 때면, 학원을 안 가고 맛있는 식당이나 카페에 가 여유롭게 점심시간을 즐긴 적도 있고, 시장에 가기도 했다. 수업이 끝난 6시는 너무 늦어 치안이 한국만큼 좋지 않은 동티모르에선 돌아다닐 수 없었기 때문에, 학원을 안 갔을 때는 최대한 많은 일을 하려고 엄청 돌아다녔다.


학원 안가고 놀러갔을 때

어쨌든, 놀기도 몇 번 놀았지만 결론적으로는 잘 끝냈다. 그 배경에는 현지 적응교육 두 달안에  테툼어를 제대로 배워내야 한다는 압박감도 없지 않아 있었고, 나랑 똑같은 시간과 똑같은 선생님 밑에서 공부했는데 실력은 월등히 뛰어난 동료를 보면서 부러워했던 것도 있었던 것 같다. 그럴 때마다 다시 자극을 받기도 하며 학원을 갔다. 정말 성실하게 모든 숙제를 해가고 100%의 출석률을 자랑하는 학생은 아니었지만, 두 달 뒤에 나는 기본적으로 삶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테툼어 실력을 얻었다.


나는 어릴 때부터 언어 배우는 것에 관심이 있어 초등학교 때부터 중국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영어 심지어 프로그래밍 언어(?)까지 여기저기 많이 기웃거렸었는데, 그런 나에게 언어를 효율적으로, 또한 제대로 배우는 방법은 항상 초미의 관심사였다. 동티모르에 봉사를 오게 되어 어쩌다 난생처음 마주한 테툼어를 두 달 동안 초압축해서 배우는 기회로 깨달은 것은, 아무리 몰랐던 언어라도 두 달 동안 현지에 살면서 하루 7시간씩 원어민과 공부를 하면 실력이 급등할 수 있다는 것과, 무조건 자신감 있게 내뱉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그렇게 열심히 배워서 실력을 높여놨어도 안 쓰고 공부를 게을리한다면 망각곡선에 의해 기하급수적으로 다 까먹는다는 것이다.


역시 게으르면 안 되는 건가. 다시 공부를 하러 가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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