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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얀 Jan 07. 2020

중국인이냐는 조롱에 대해 공감할 때

해외에서 모두들 한 번쯤은 들어봤을 거예요 칭챙총!

동티모르에는 중국인이 정말 많다(물론 요즘은 어디에나 많긴 하지만). 살만한 물건이 있는 가게들은 대부분 중국인이 운영하는 것이라, 어쩔 수 없이 중국인 가게를 자주 가게 된다.


동티모르의 중국마트


이런 상황이라 동티모르 현지인들은 중국인들이 자신들의 경제를 장악한다는 이유로 그들을 싫어한다. 초창기 현지어를 배울 때 학원 선생님이, 중국인들은 동티모르에서 모두 사업을 하며 배를 불리고, 한국과 일본은 국제협력기구(KOICA와 JICA) 아래 많은 지원을 하고 있으니 중국이 싫어지는 건 당연하지 않냐는 말을 했었다. 그래서 현지인들은 중국인을 보면 Xina Xina!(중국인), 칭챙총이라며 조롱을 던지기도 한다. 하지만 현지인들이 외모로 중국인과 한국인을 어찌 구분할 수 있으리. 우리 역시 비슷한 외모를 가진 덕에 오해를 사고 조롱을 들을 때가 있다.


처음에는 그런 조롱을 하루에도 몇 번씩 듣고 지칠 때 ‘중국인들 때문에 나까지 왜 조롱을 들어야 하나’ 이런 생각을 안 했던 건 아니다(물론 중국인들을 전적으로 탓하고 싶은 건 아니었는데, 길에서 끊임없는 조롱에 지쳐 잠시 나쁜 생각을 한 것이니, 중국인들이 이런 나를 조금 이해해주면 고마울 것 같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동티모르에 사는 중국인들의 이미지가 점차 나빠졌었다.


그러다가 내가 살던 같은 호스텔에 계신 중국인 아주머니를 만나게 됐다. 그 아주머니는 현지어도 잘 못하시고 영어도 한마디 할 줄 모르시는 분이셨고, 나 역시 중국어를 하지 못하니, 그나마 고등학교 1, 2학년 때 제2외국어로 배운 정말 정말 짤막한 중국어 몇 마디 던졌던 게 소통의 전부였다. 그 아주머니는 나에게 항상 한궈 라오쉬(한국어 선생님)라고 불러주셨고, 나 역시 라오쉬(선생님)이라고 불렀다. 그 아주머니는, 과일을 깎아 드시는 날엔 항상 나에게 한 접시 가져다주셨고, 가끔은 중국음식의 향이 강하게 나는 죽을 가져다주시기도 했고, 내가 밥을 먹고 있을 땐 더 먹으라며 당신의 음식을 덜어주시기도 했다. 나는 아주머니와 약 두 달간 같은 호스텔에 머물면서, 언어가 통하지 않아도 친구가 될 수 있고 좋아질 수 있다는 말을 처음으로 이해했다. 나는 그 뒤로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번역기를 이용해 중국어로 외워가곤 했는데 그녀는 그런 나를 정말 딸처럼 아껴주셨다. 아주머니가 너무 잘해주신 덕분인지, 나는 그 뒤로 중국인들을 조롱하는 것에 들으면 ‘난 한국인이니까 아니라고 하면 그만이지만, 저런 조롱을 듣는 진짜 중국인들은 기분이 어떨까? 저런 조롱을 안 하면 좋을 텐데’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예전에는 중국인 때문에 오해를 사는 나의 손해만 생각을 하고 그들을 비난했었는데, 이젠 아주머니를 생각하며 감정이입을 해 그들을 마냥 비난할 수만은 없게 된 거다.


오래전 읽었던 한 인문학 책에서, 사람들이 서로의 아픔과 고통, 기쁨에 잘 공감할 수만 있다면 이 세상의 많은 범죄들이 사라질 것이라고 했는데(그래서 우리는 인문학을 공부해야 한다고 했다), 문득 지금 이 상황도 조금 비슷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후 시간이 지나 나는 다른 곳으로 이사를 오게 됐다. 그리고 얼마 전 그 도시에 다시 갈 일이 있어 나는 일정이 끝난 오후쯤에 그녀가 일하던 중국 마트에 들렀다. 멀리서 야채를 정리하는 아주머니의 모습이 보였다. 시간이 많이 지난 것도 아닌데 정말 반가웠다. 그녀 역시 나를 굉장히 반겨주었고, 산전수전 다 겪은 듯 굳은살이 가득 벤 손으로 내 등을 마구 두드렸다. 우리는 서로 각자의 언어로 기쁨을 표시했고, 그 뒤로 서로 이해할 수 없는 말들이 오갔지만 그것이 매우 기뻐하는 말이라는 것만은 알았으리라.


새로 이사 온 지역에서도 중국인을 볼 때면 그녀가 떠오른다. 그리고 그녀가 초저녁 주방에서 썰어주었던 냄새 고약한 그 파파야를 떠올린다. 웃으며 건네준 파파야를 안 먹을 수가 없어 숨을 참으며 억지로 삼켰었는데. 그래도 컥컥거리는 날 보며 자신도 안다는 듯 웃었었는데.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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