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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얀 May 25. 2020

유럽은 어떻게 세계로 뻗어나갈 수 있었을까?

그들의 뒤에 있던 근대 과학. ⟪모든 이의 과학사 강의⟫

저는 서점에 자주 갑니다. 새로운 책은 뭐가 나왔을까, 또 어떤 흥미로운 주제가 있을까 하며 이리저리 둘러보는 그 순간을 좋아하거든요. 그런데 무의식적으로 오래 머무는 코너가 몇 군데 정해져 있습니다. 역사, 철학, 음악, 한국문학쯤인데, 그곳 가면 한 권 한 권씩 책등의 제목을 꼼꼼히 보게 돼요. 아예 가방을 내려놓고 하나씩 다 찾아봐요. 심지어 남들이 잘 찾지 않는 책들이 꽂혀있는 천장 부분까지 사다리 타고 올라가서 봅니다.


그런가 하면 유독 발걸음이 향하지 않는 곳도 있습니다. 바로 과학과 같은 이과 분야죠. 어쩐지 그곳에 가면 내 세상이 아니라는 느낌이 엄습합니다. 그 이유를 잘 찾아 올라가 보면, 제가 문과로 진학한 순간이 나옵니다. 고등학생의 저는 수학을 좋아하고 국어는 안 좋아했어요. 성적도 수학이 나았죠. 그런데도 과학이 싫어서 고민도 없이 문과에 진학할 정도로 과학을 어려워했어요.


문과 진학 이후 저는 "내 인생에 과학은 이제 안녕이다. 나는 과학에 대해 알지 않아도 된다. 그저 과학 기술을 누릴 테다!"라는 부끄러운 철벽 마인드를 장착했어요. 안 그래도 과학이 어려웠는데, 문과라는 좋은 핑계까지 생겼으니 아예 밀어내기 시작한 거예요. 그리고 그게 성인이 되어서도 쭉 이어진 거죠.




그러다가 어느 날 평소와 다를 것 없이 서점을 탐색하는데, 너무 맨날 똑같은 것만 보는 것 같은 거예요. 독서 스펙트럼을 더 넓히지 않아야겠냐는 어떤 내면의 목소리가 들린 거죠. 그리고 과감히 과학분야로 발걸음을 내디뎠습니다. 역시나 그곳은 제가 모르는 단어들의 천국이었어요. 나가고 싶은 충동에 잠시 휩싸였다가, 한 번 책을 천천히 보기라도 해보자고 마음을 고쳐먹었어요. 그리고 그게 새로운 포인트 되었죠.


바로 전문적인 양자역학, 우주, 화학물질 등에 관한 책으로 뛰어들기보다는 전반적인 과학이야기, 쉬운 것부터!라는 마음으로 하나씩 찾아봤어요. 그리고 "역사와 문화로 이해하는 과학 인문학"이라는 문구가 들어왔어요. 책 제목도 심지어 ⟪모든 이의 과학사 강의⟫네요. 이거다 싶었죠. 과학 인문학이라면 저 같은 사람도 도전해볼 만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책을 휘리릭 넘겨보는데

"인간은 왜 농부가 되었을까?"

"중국에서는 왜 과학혁명이 일어나지 않았나?"

"유럽이 중국에 진 빚은 무엇인가?"

"갈릴레오의 죄는 무엇인가?"

"유럽인들은 왜 과학이라는 지식을 생산했을까?"

"인간은 왜 존재하는가?"

이런 주제들이 목차를 꽉 채우고 있는 겁니다. 아, 무조건 읽어야겠다 싶었어요. 주제들이 너무 흥미롭잖아요!


그리고 이틀 만에 다 읽어버렸습니다. 정말 정말 재밌었어요. 과학이라는 게 인류에 어떤 영향을 미쳐왔는지, 그리고 그 원리들에 대해 어렵지 않은 정도까지만 서술되어 있거든요. 고대부터 현대까지 과학사를 전부 다루기 때문에 과학에 대한 헤엄을 시작하는 데 입문서로 아주 좋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게다가, 그동안 서양 중심, 서양 입장의 과학 서술만을 배웠던 우리에게 새로운 의문점을 제기하는 책입니다. 저자는 서문부터 책의 목적에 대해 명확히 설명합니다.


"서양의 근대 과학을 수입해서 배우고 있는 우리는 과학을 앎으로서 받아들인 경험을 갖지 못했다. 진지하게 과학과 우리의 삶을 연결해서 생각해본 적이 없다는 뜻이다."


"과학사에서 우리가 배우는 것은 서양 근대 과학의 빛나는 성취가 아니다. 인간이 과학과 기술을 발명해 성공적으로 지구를 지배하게 된 승리의 역사도 아니다. 우리는 과학사를 통해 인간 스스로 세계를 앎으로써 삶을 바꾸고 나아가 역사도 바꾸었다는 통찰을 얻고자 한다."


서문을 읽고 얼마 전 유튜브에서 본 동영상이 하나 떠올랐어요.

출처: 타일러 유튜브 채널 https://www.youtube.com/watch?v=FlQYOZFnWRM

타일러님이 대학에서 국제관계학을 공부하다가, 한국어를 공부하고, 한국어로 된 정보를 알고 난 뒤 느낀 점이라고 합니다. 제가 그동안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인 많은 것들이 서양 중심의 학문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예를 들면 특히 미술이 그래요. 서양 작품과 해설은 책도 굉장히 많고 작가들도 유명한데, 왜 동양 작품에 대한 책들은 별로 없을까요? 미술이라고 하면 바로 서양의 작품들을 떠올리게 되잖아요. 정말 동양에 좋은 그림이 없어서일까요? 정말 동양에 뛰어난 화가들이 없어서일까요?


서문부터 머리가 갑자기 박하사탕을 빨아들인 기분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서양 중심의 과학사가 언제부터 시작된 것일까요? 저자는 근대의 시작을 알린 유럽의 화약 혁명 이후라고 이야기합니다.


"유럽의 화약 혁명은 중세를 마감하고 근대의 막을 올렸다. 군사적 경쟁은 유럽이 근대적 국가체제를 갖추는 데 크게 기여했다. 유럽은 군사적 우월성을 바탕으로 전 세계에 폭력을 수출하기 시작했다. '발견의 시대', '탐구의 시대'라는 이름으로 호전적 기질을 미화하며 세계 곳곳에 식민지를 건설하는 '제국주의 시대'를 열었다."


"18세기에 유럽인들은 세계에 대해 아는 것이 많아질수록 세계를 점점 더 많이 지배하게 되었다. 뉴턴 과학과 계몽사상은 유럽인들이 문명이라는 이름으로 식민지 정복을 정당화한 이데올로기의 핵심이 되었다. 백인들이 원주민들을 지배하며 내세운 '문명화의 사명'에서, 그 문명의 개념은 유럽이 역사적으로 발전했다고 착각하게 만든 과학과 기술에서 나왔다."


"사회적 다윈주의자들은 '생존경쟁'을 통해 우월한 개체만이 살아남는다는 '적자생존'의 논리를 끌어냈다. 더욱이 제국주의자와 인종주의자는 사회적 다윈주의를 아전인수 격으로 해석해 식민지인들과 비서양인들, 유대인들을 억압하는 데 이용했다. 열등한 민족이나 인종은 아메리카 인디언처럼 학살당해도 그것이 자연의 법칙인 것처럼 선전되었다."


그렇게 유럽이 세계에 근대 과학을 떨치고 힘을 얻기 시작했다는 것이 저자의 평입니다.


저자의 글을 읽고 저도 한 가지 돌이켜 본 일이 있습니다. 예전에 개발도상국에서 했던  8개월 간의 봉사활동인데요. 당시 저는 봉사활동을 지속하면서도, 선진국들이 이렇게나 많이 들어와서 문명을 가르치고, 일을 시키고, 새로운 것들을 배우라 하는 것이 정말 옳은 지에 대해서 의문이 많이 들었거든요. "선진화된 문명을 받아들여!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이야!" 하면서 그들의 삶에 침투하는 것이 말이에요.

정말 그들은 선진화된 문명이 들어와서 행복했을까요? 선진국들의 착각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우리의 발전된 문명이 그들보다 낫다는 착각, 우리의 힘으로 그들의 삶을 구출해야 한다는 착각.


그들도 산업화가 되어 잘 살게 되는 것이 정말 옳은 일인지, 여태까지 그들이 살아온 삶의 방식은 그럼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더 깊어졌습니다.



저자는 위와 같은 주장의 근거를 위해, 과거 동아시아에도 우수한 과학문명이 존재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중세시대로 거슬러 올라가죠.


중세 중국의 과학기술

12세기 중국의 <순우천문도>

책에 따르면, 실제 중세 시대 중국의 천문역법은 서양보다 훨씬 풍부한 관측 자료를 남겼다고 합니다. 또한 수학, 기상학, 지도 제작술, 연금술 등 독자적인 학문적 성취를 이루었고요. 종이, 나침반, 화약 이외에도 셀 수 없이 많은 발명품을 내놓았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중국의 과학기술은 유럽에서 인정받지 못했죠. 이를 본 조지프 니덤이라는 영국의 생화학자가, 전 생애를 바쳐 중국의 과학과 문명을 연구해 책으로 써냈다고 합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고 해요.


"실제로 우리 자신의 문명 못지않게 고상하고 영감을 불어넣는 비유럽 문명들의 역사와 가치들에 대해서 더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분명 바람직할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질문을 던졌다고 합니다.


“과학혁명이 왜 유럽에서만 일어났을까?, 왜 중국에서는 과학혁명이 일어나지 않았을까?" 그리고 이 주제는 수십 년 동안 과학사 학계에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고 하는데요.


마침내, "유럽에서 일어났던 일을 중국과 비교하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과학사학자들은 중국이 유럽과 같은 길을 걸어야 했다고 요구하는 것은 또 다른 얼굴의 유럽 중심주의라는 데 동의했다."라고 합니다.


전 처음에 목차에서 "중국에서는 왜 과학혁명이 일어나지 않았나?"를 보고 답을 스스로 생각해보려고 노력을 했었어요. 그 질문이 이상하다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그 질문 자체가 또 다른 유럽 중심 사고라니,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했어요.(이런 느낌 너무 좋습니다.)


디폴트에서 벗어나 변형적인 새로운 생각을 외부 자극 없이, 스스로 갖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기에 이런 것을 친절히 가르쳐주는 책들을 좋아해요.


과거에는 옳았지만, 지금은 옳지 않은 일이 많은 것처럼 세상은 계속 변하잖아요. 그 변화의 중심에는 사고의 전환이 있다고 생각해요. 기존의 것들에 자꾸 의문을 던져보는 거죠. '이것이 정말 옳을까? 타당할까?' 이렇게요. 그런 노력들이 '왜 중국에서는 과학혁명이 일어나지 않았나?'만 탐색하던 과학사 학계에 변화를 주었을 겁니다. 유럽을 디폴트로 해 중국을 봤다는 걸 깨달은 거죠.


물론 변화가 세상을 언제나 옳은 방향으로 이끄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그게 옳은 지 그른 지를 알기 위해선, 그리고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선, 변화를 비판적 시각으로, 동시에는 내가 틀렸을 수 있다는 마음(나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으로 보는 게 중요할 것 같습니다.




조선의 과학기술


중국만 있지 않죠, 조선에도 뛰어난 과학 문화유산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바로 <천상열차분야지도>인데요. 중국의 <순우천문도>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석각 천문도라고 해요.

조선 태조시대에 만들어진 <천상열차분야 지도>

그 외에도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 세종시대 이천과 장영실이 참여한 <혼천의>, <앙부일구>, <일성정시의>, <소정시의>, <현주일구>, <행루>, <천평일구>, <정남일구>, <자격루> 등이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천문관측기구뿐만 아니라 농법서인 ⟪농사직설⟫, 약용식물을 설명한 ⟪향약 채 쥐 월령⟫, 의학 백과사전 ⟪의방유취⟫, 한글의 탄생이 담긴 ⟪훈민정음해례본⟫까지 등장했습니다.


그리고 저자는 독자에게 의문을 던집니다.  "세종시대 과학기술은 어떻게 이루어진 것인가? 무엇이 이 시기 과학기술을 발전시켰고 그 이후 쇠퇴의 길을 걷게 했는가?"


조선의 뛰어난 과학유산들이 많지만 사실 대부분 세종시대에 나온 것들이라는 것에 의문을 던진 것이죠. 우리는 왜 그 뒤로 더 나아간 과학기술이 나오지 않았을까요? 저자의 설명은 아래와 같습니다.


"찬란했던 과학기술은 세종이라는 구심점이 사라지자 빛을 잃어갔다. 궁정 과학의 성격을 지녔던 세종의 과학기술은 유교적 관료제의 테두리에 갇혀서 왕의 의지에 좌우될 수밖에 없었다. (중략) 이 같이 동아시아에서 왕이 주도했던 과학기술은 궁정 과학의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이 그저 유럽의 근대 과학의 위치를 부정하거나, 동양의 과학이 훨씬 뛰어났다고 얘기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아직까지 근대 과학이 위력을 떨치고 있는 21세기를 살고 있다. 4000년 과학기술 역사에서 불과 300~400년 전에 나타난 근대 과학이 세계사의 판도를 바꾼 것이다. 이것이 근대 유럽의 과학사를 공부하는 이유다. 어떻게 유럽에서 근대 과학이 출현했는지, 근대 과학의 개념과 성격은 무엇이며 어떻게 형성된 것인지, 과학혁명과 산업혁명으로 불리는 역사적 사건들이 유럽의 거침없는 성장의 발판이 되었는지를 배우려는 것이다."


저자는 "왜 유럽의 근대 과학이 21세기 중심이 되었는지"를 탐구할 뿐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과학유산들을 다시 재조명한 것이죠.




이 책은 고대 과학부터 현대 과학까지  넓게 다루고 있어요. 그리고 위에 살펴본 바와 같이 과학의 원리나 기술이라기보다는 역사 중심 서술입니다. 저는 사실 그래서 더 흥미롭게 읽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제 과학에 대한 호기심을 깨워주기에 충분한 책이었습니다.


이 책을 읽고 나니 그 과학이 어떤 원리로, 어떻게 발전 해나갔는지에 대해 더 이해하고 싶어 졌어요. 그 과학이 대체 무엇이길래 이렇게 세상에 큰 영향을 끼쳤을까 하고요. 선조들이 가지고 있던 과학에 대한 생각, 조선의 과학에 대해서도 더 깊게 알고 싶어 졌고요.


이렇게 과학사를 한 권으로 쭉 읽어보니 내 손 안에서 4000년의 과학 역사가 펼쳐진 기분입니다. 과학을 알아간 다는 것이 이런 기분이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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