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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이랑 Oct 05. 2021

누군가 OFF 하면 기다려 주세요

내가 그럴 수도 있으니까요

3년 전, 20년 지기와 방콕으로 여행을 떠난 적이 있다. 야경이 예쁠 무렵, 루프탑 바에 자리를 잡았고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그저 다른 나라의 비 내리는 야경을 친구와 공유하고 있다는 게 믿기지 않던 순간이었고 동시에 또 다른 친구가 떠올랐다. 갑자기 연락이 뚝 끊긴 지 몇 년이 지난 20년 지기 중 또 다른 친구. 그날도 기대 없이 카톡을 남겼고 역시나 답장은 없었는데 3일 후에 반전이 일어났다. 미안했다며 너희들만 괜찮다면 만나고 싶다는 답장에 울컥했던 날이었다.


갑자기 연락이 끊기는 친구. 내가 두 번이나 겪어봤으니 많은 사람들이 한 번쯤은 가지고 을 경험이지 않을까 싶다. 한 명은 위에서 말한 20년 지기, 또 다른 한 명은 대학 동기였다. 두 명 모두 아무런 예고도 없이 갑자기 연락이 끊겼다. 전화도 카톡도 잘 되던 친구들이 일명 '잠수를 탄 것'이다. 친구의 갑작스러운 연락두절은 나머지 친구들을 매우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전화를 걸고 카톡을 보내고 문자를 보내봤지만 묵묵부답이었다. 우리가 뭘 잘못했나? 기분 나쁜 일이 있었나? 다른 대학으로 편입하더니 마음이 변했나? 남편이랑 무슨 일 생긴 거 아니야? 혹시 우울증 왔나? 걱정으로 시작된 감정은 분노를 거쳐 다시 걱정에 이르기를 반복했다. 우리를 때가 안 묻었다고 판단한, 소위 때가 묻을 대로 묻었다던 선배들 중에는 "너희들한테 다 빼먹고 내뺀 거야"라고 말하는 이도 있었다. 학창 시절부터 알고 지낸 우리 사이에 뭘 빼먹고 말고 해? 걔는 그럴 애가 아니야. 사정이 있겠지. 그렇게 기다렸다. 그러다 대학 동기는 어떻게 사는지도 모른 채 잊혔고 20년 지기에게는 '씹'을 당할지언정 새해인사, 송년인사 등의 카톡을 보내곤 했다.


지금은 두 친구 모두와 연락이 닿고 있다. 도대체 왜 그랬는지 따져 묻고 싶었던 마음은 연락에 응답해 준 친구의 용기에 모두 묻히고 말았다. 자세한 내막을 알지는 못하지만 잠수를 선택했던 둘의 공통점은 '현재 내 모습을 에게 보이고 싶지 않아서'였다.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생각해 보니 나도 대학 동아리 후배들의 연락을 못 본 채 했던 시기가 있었다. 전공을 살려 4학년 2학기 때 방송국에 취업은 했지만 그만둔 이후가 문제였다. 후배들에게 멋진 선배로 남고 싶은 욕망이라도 있었던 것일까. 방송의 끈을 놓아버리고 방황하는 나의 모습을 후배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 그들의 연락을 모두 거부했던 시기가 있었다.

추석 연휴를 앞두고 20년 지기 네 명 중 세 명 루프탑 카페에 모여 앉았다. 잠수를 탔던 친구가 말했다. 그때 그냥 너희들한테 말할걸. 나 이런 상황이어서 힘들다고 말했으면 더 나았을 것 같아. 친구들마저 차단한 채 힘든 시간들을 이겨내고 다시 물 밖으로 나와준 친구가 그렇게 말해줘서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지금은 커다란 마음의 동요 없이 그때 그랬었어, 이런 일도 있었다?라고 말을 이어가는 친구에게 만약 힘든 시간이 또 찾아오더라도 우리 연락은 끊지 말자고 웃으며 말했다.


혹시 갑자기 연락이 안 되는 친구가 있다면 기다려 주세요. 어쩌다 한 번의 카톡이면 충분할 것 같아요. 반드시 돌아올 테니 긴 호흡으로 기다려 주시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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