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이랑 Aug 28. 2022

아들 육아

어렵지만 잘 해보려고요

예상은 했다. 첫째가 딸인 나와 달리 내 주변 육아 동지들은 아들을 먼저 낳았 그들이 '힘들다'라는 말을 입에 달기 시작했던 시기가 아들이 5세부터였음을 알고 있었다. 분명히 알고 있었고 예상도 했지만 늘 그렇듯 육아의 세계는 예상을 빗나간다.

둘째인 아들의 행동에 결국 같이 소리 지르고 주체할 수 없이 화내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다음 날이면 같은 상황이 반복되고 아들이 나에게 던진 "가." 한 마디에 속상함은 감춘 채 기다렸다는 듯 분주하게 세수를 하고 외출복으로 갈아입는 나를 발견한다. '그런 눈으로 나를 쳐다보지 않았으면 좋겠어'라는 의미로 가라고 했던 둘째는 엄마 어디 가냐며 매리고 그 옆에서 첫째는 그렁그렁한 눈으로 눈치를 보고 있다. 멈춰야 했지만 멈추지 못했다. '엄마가 돌봐줄 필요가 없는 것 같으니까 아빠랑 살아!'라고 기어코 비수 같은 말들을 뱉어내고 마는 나를 발견하고는 아차 싶었다. 아차 싶었어도 들끓는 분노는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


나이스 타이밍. '화내야만 말 듣는 아이 말 잘 듣게 하는 방법'이라는 썸네일 이끌리듯 현직 초등학교 선생님의 유튜브를 보게 되었다. 내용인즉 아이의 행동이 나를 화나게 하는 게 아니라 아이의 행동이 나의 감정을 자극시키기 때문에 화가 나는 것이라고 했다. 나의 어떤 감정이 자극되어 화가 나는지 화가 나려는 그 짧은 시간에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생각해 보았다. 씻어야 할 타이밍에 씻지 않겠다고 버티는 아들. 지금 씻어야 개운해지면서 남은 시간이 무탈할 텐데. 그렇지 않으면 저녁 식사 준비하는 사이 소파에서 그대로 잠들어 버릴 게 뻔하고 9시에서 10시 즈음 일어날 것이 분명하다. 그럼 나는 저녁 식사를 다시 차려야 하고 아직 지도 못했으니 나의 꿀 같은 육퇴 시간은 한참 뒤에야 맛볼 수 있겠구나. 아, 나의 소중한 밤 시간을 온전히 보장받지 못한다는 불안 때문에 화가 구나.

식사 시간을 앞두고 과자를 먹겠다고 고집을 피우는 아들. 과자는 밥 먹고 난 뒤에 얼마든지 먹으라고 회유해 보지만 도통 통하지 않는다. 배가 고파야 그나마 밥을 좀 먹을 텐데 지금 과자를 먹으면 밥은 또 먹는 둥 마는 둥 할 것이고 다음 식사 시간까지 버티지 못하고 또 과자를 달라고 할 것이 분명하다. 안 그래도 평균에 훨씬 못 미치는 발육 때문에 인데 너 도대체 언제 클래? 발 삼시세끼 엄마가 주는 요만큼이라도 잘 먹어주면 안 되겠니? 아, 이렇게 먹다가는 아빠만큼 크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에 첫째와 달리 둘째라고 군것질의 맛을 너무 일찍 알게 한 건 아닌가 하는 죄책감 때문에 화가 났구나.


본인 뜻대로 되지 않으면 냅다 소리를 지르는 아들. 어? 요것 봐라? 엄마한테 이렇게 소리를 지른다고? 화난다고 이렇게 소리를 지르면 되겠어? 아, 내가 너무 버릇없게 키운 건 아닌가 하는 죄책감과 다른 데서도 이런 행동을 하면 어쩌지 하는 두려움 때문에 화가 났구나.




정말 밖에 나가는 시늉이라도 해야지 마음먹고 있는데 첫째가 내 앞으로 체온계를 들고 온다. 동생의 체온을 쟀다는데 숫자가 39.1이다. 병원에 안 간다고 울기 시작하는 아들에게 또 화를 내며 병원으로 향했다. 요즘 재감염이 있다고는 하지만 설마 걸리겠어?라는 안일한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결국 아들은 로나에 또 걸리고 말았다. 들끓었던 분노는 온몸으로 힘들다 표현하고 있는 아들을 바라보며 순식간에 사그라들었다.


자다 깨면 엄마부터 찾고 엄마가 제일 귀엽고 엄마가 제일 예쁘다고 해주는 아들아, 아무리 생각해도 여섯 살인 너와 전쟁 같은 날들을 치러내는 건 뭐가 잘못돼도 단단히 잘못되었다고 생각해. 지금 엄마 옆에 <아들의 뇌>라는 책이 있는데 엄마가 속도 내어 읽어 볼게. 내일부터는 좀 더 다정한 엄마를 기대해도 좋아!  

작가의 이전글 진짜와 가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