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도 식성도 잠자리 패턴도 다른 우리 부부가 통하는 게하나 있는데 바로 떡볶이다. 아이들을 재워놓고 야식이 생각날 때, 남편이 회사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을 때, 유독 버거웠던 육아로 매콤한 게 머릿속을 떠나지 않을 때 우리는 두 말할 것도 없이떡볶이를 먹었다.곧 자러 갈 시간이어도 상관없었다. 떡볶이? 사둔 게 없는데? 재료 있어? 늦은 시간이어도 남편은 유튜브로 떡볶이 레시피를 훑고는 꽤나 정성을 다해 만들어 주곤 했다.
우리 동네 30년 이상된 분식집 떡볶이. 하, 침 고이네.
그랬던 남편이 떡볶이를 끊은 지3주가 다 되어간다. 떡볶이뿐 아니라 라면, 피자, 치킨, 빵, 과자, 아이스크림, 매일 하나씩 까먹던 야쿠르트까지 맛있다고 소문난 모든 것들을 끊었다. 남편은 본인의 건강을 위해 딱 세 달 동안은 앞에 언급한 음식을 먹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정말 2주가 넘도록 먹지 않는 남편을 보며 의지 한 번 대단하구나 칭찬해야 마땅하지만 나로서는 함께 먹는 재미를 잃고 나니 인생의 재미마저 잃어버린 심정이다.
올해 마흔이 된 남편은위, 대장 내시경, 복부 초음파 등그럴듯한 건강검진을 처음 경험했다. 어지간한 아픔으로는 병원에 가지 않는 남편이기에 남편이 병원을 찾을 때엔 병명에 늘 '급성'이라는 단어가 붙었다. 1년에 한두 번쯤 사람을 식겁하게 하고 내시경 좀 하라고 그렇게 말을 해도 안 듣던 남편인데 드디어 올해 나의 잔소리에 항복하고 제 발로 예약하고 건강검진을 받았다.현관을 들어서는 남편의 손에는 부피가 꽤 되어 보이는 비닐봉지가 들려있었고 그게 뭐냐는 나의 물음에 십이지장 궤양, 용종 2개 제거, 비만 등의 결과를 받았다고 말하는데 남편의 표정이 울상이다. 그런 표정이 된 원인의 8할은 LDL 콜레스테롤 수치였다. 늘 정상범위보다 높게 나오는 수치를 보며 유전이라 그런가 보다 하고 넘겼는데 작년보다 더 높아진 수치에 적잖이 충격을 받은 모양이다. 의사는 약을 권했지만 남편은 일단 체중감소, 식이조절을 해보기로 마음을 먹었고 LDL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출 수 있는 방법을 계속해서 찾아보았다. 이게 바로 나와 떡볶이를 먹지 못하게 된 전말이다.
밥 한 공기는 거뜬하던 사람이 다 먹지 않고 남긴다. 냉장고 안 식재료에는 별로 관심이 없던 사람이 양파와 팽이버섯을 찾는다. 우리 집은 어떤 기름을 쓰냐며 묻고는 올리브유를 쓰자고 한다. 출출할 때 간식 창고를 열어보던 사람이 감자나 고구마가 있냐고 묻는다. 얼마 전 오랜만에 찾은 식당에서 시래기 된장국이 나왔는데 "시래기에 식이섬유 많으니까 다 먹어" 하고 남편의 그릇을 봤는데 이미 건더기가 사라지고 없었다. 고기를 먹어도 오리고기를 먹으려고 하고 어느 날은 글쎄,
"소고기 3등급짜리 좀 사주면 안 돼?"
라고 말하는 것이다. 순간 말문이 막혔다. 뭐어?3등급?내가 투뿔은 못사도 1등급은 사 먹이고 있는데 소고기 3등급이라고?
"자기! 적당히 좀 하자. 정육점에 3등급 소고기를 팔긴 해?
이렇게 신경 써서 먹기 시작한 남편은 실내 바이크도 타고 밖에 나가 뛰기도 하더니 최근 2년간 늘었던 체중이 제자리를 찾았다. 무엇보다 남편의 혈색이 밝아진걸 보니 건강검진하길 참 잘했다 싶다. 다시 혈액검사를 하기까지 추석이라는 고비도 넘겨야 하고 말도 살찐다는 가을의 풍요로움도 견뎌야 하지만 남편은 충분히 잘 해낼 거라 의심치 않는다.
검색해보니 '저지방 소고기'라는 타이틀을 달고 3등급 소고기를 판매하는 곳이 많다. 이번 주말 여섯 끼 중 한 끼는 3등급 소고기 당첨이다! 지금 나의 머릿속엔 냉동실에 예쁘게 누워있는 2인분짜리 떡볶이 키트가 가득하지만 나와 아이들을 위해 건강해지려고 애쓰는 남편을 응원하며 남편이 없는 시간에 맛있다고 소문난 것들을 틈틈이 즐겨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