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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이랑 Mar 02. 2022

관심사가 같다는 것

말이 잘 통하는 사람.

소개팅이라는 명목 하에 남편과 처음 만난 날 식당-카페-영화관-카페 4차까지 갈 수 있었던 이유다. 남편과의 첫 만남은 그래서 인상적이었고 결혼까지 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였다. 그랬던 우리가 결혼해 살아보니 관심사나 취향, 사고방식은 달라도 참 많이 달랐다. 그렇게 다름에도 별 탈없이 올해 결혼 10주년을 바라볼 수 있는 건 다들 아는 것처럼 배려와 존중이다. 그런 굳이 배려와 존중을 하지 않아도 말이 잘 통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경험했고 그것이야말로 인생에 있어 큰 수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밤.




작사가 김이나라는 사람이 나에게 각인된 시점은 JTBC 프로그램 <슈가맨>이었다. 그리고 최근에는 같은 방송사 프로그램인 <싱어게인2>에 심사위원으로 나왔는데 남편과 함께 시청하며 그녀가 말을 할 때마다 우리는 '와 정말 말 잘한다', '어쩜 저렇게 말할 수 있지?' 하는 감탄사를 몇 번이고 내뱉었다. 7명의 심사위원은 모두 가수인데 1명의 작사가를 투입했다는 것, 누구도 부정할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머릿속엔 그녀가 있었는데 작년, SNS를 하다가 알게 된 남자 작사가의 온라인 클래스를 무언가에 홀린 듯 나의 고민도 없이 결제했다. '언제 들어볼 수 있나'하는 기다림 끝에 2월 어느 날 클래스가 오픈되었고 첫 강부터 '이거 뭐지?', '아, 돈 아운데'라는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온라인 클래스 플랫폼 측과 그 남자 작사가는 이 클래스를 위해 꽤나 공을 들였겠지만 수강생의 입장에서는 부정확한 발음, 산만한 자세, 자기 자랑처럼 들리는 강의가 고까웠다. 테이블 위에 놓여 있는 테이크아웃 종이컵에 술이 들어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의심마저 들게 했으니 클래스에 대한 기대가 무너져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때 떠오른 사람이 김이나 작사가였다. 온라인 클래스는 아직도 진행 중이지만 <김이나의 작사법>을 집 앞 도서관에서 빌려와 읽기 시작했다. 내가 결제한 강의의 10분의 1도 안 되는 가격의 이 책이, 심지어 나는 돈 하나 들이지 않고 빌려온 이 책이 나의 가려운 부분을 모두 긁어주었다. 다가 분명 잘난 그녀이지만 잘난 척하지 않아서 좋다는 생각을 SNS에 짤막하게 올렸는데 (친언니가 없는 나로서는)친언니인 것 마냥 친근하지만 나의 결혼식 이후 아직 한 번도 만나지 못한 언니가 댓글을 달았다.


"같은  봤고 성의 없는 내용에 웃음만 나와.(중략) 남의 돈 함부로 생각했어."

 

이럴 수가! 같은 클래스를 들었다고? 그 수많은 클래스 중에서 이걸? 작사의 'ㅈ'에 대한 대화조차 나눠본 적 없는 우 같은 클래스를 들었다는 사실에 놀 소리를 질렀고 클래스에 대한 후기가 일맥상통했다는 반가움에 또 한 번 소리를 질렀다.


"날마다 같은 생각으로 애들 빨리 씻기고 퇴근하는 냥반이랑 빠르게 바통 터치하고 팔짱 끼고 커피숍 가서 책 한 권씩 읽고 '잘 자'하고 헤어질 듯"


언니랑 이웃하며 살고 싶다는 나의 댓글에 언니가 달아준 댓글을 보며 상상만 해도 기분이 좋아졌다. 당장 만나고 싶은 마음이 불기둥처럼 솟아올랐지만 언니와 나 사이에 놓인 물리적 거리 다.


이 언니에 대해 잠시 언급하자면 호주 워킹홀리데이 시절 리조트에서 함께 일하던 친구의 친언니로 당시 한국이 추석일 때 동생에게 한국 음식을 해주고 싶어 어렵게 어렵게 휴가를 내 호주다. 트에서 장을 잔뜩 봐 와서는 (솔직히 어떤 메뉴였는지 정확 기억은 없지만 불고기, 잡채 등이었던 것 같다) 동생과 같이 일하던 한국 친구들을 불러 모았다. 는 그중 한 명이었고 언니를 도와 음식을 준비하고 언니의 호탕한 웃음소리와 넘치는 위트에 매료되 며칠 참 풍요롭게 보냈다. 그 후 (섬에 있던 리조트라서) 배를 타 가는 언니를 배웅하기 위해 다 같이 마리나(marina) 향하는 길, 나는 자기 폭풍 같은 눈물을 쏟아내며 오열하고 말았다. 언니가 사람을 쉽게 감동시키는 사람이어서 그랬는지, 남동생뿐인 내가 간접적으로나마 겪어본 언니의 존재에 대한 상실 때문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의 울음은 주위 사람들을 놀라게 할 만큼 쉬이 멈추지 않았다. 그 후 한국에 돌아와서는 언니랑 따로 강남에서 만나기도 했고 서로의 결혼식에 참석했는데 '우리 엄마가 아들이 없어 너를 우리 가족으로 만들 수 없는 게 아쉽다'내용의 언니를 편지를 축의금 봉투에서 발견하고는 한참을 웃었던 기억이 있다.

내가 오열했던 그 자리

 

몇 년간 만나지 못했고 잦은 연락도 주고받지 못하는 사이지만 내가 좋아하는 언니가 나와 같은 노래를 좋아하고 같은 온라인 클래스를 들었다. 누군가와 관심사와 취향이 같다는 게 이렇게 즐거운 일이었나? 생각할수록 배시시 웃음이 샌다. 정말 이웃에 살며 떡볶이 만들어 놓고 부르고 반찬 만들어서 갖다 주고 서로 읽은 책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오다 주웠어'하며 무심하게 커피 한잔을 건넬 수 있으면 좋겠다. 만나면 며칠 밤을 새도 모자랄 우리의 이야기가 있고 말이 잘 통하는 남편이 있고 친구의 언니지만 친언니 같은 언니도 있고 아직 읽지 못한 김이나 작사가의 또 다른 책이 있고 '글'에 대한 관심사로 대동 단결된 사람들이 모인 브런치가 있으니 더 바랄 게 없는 그런 밤,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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