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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이랑 Feb 11. 2022

아이들이 보여준 배려

주말부터 몸이 안 좋았다. 목은 간질간질, 코는 꽉 막혀 입으로 숨을 쉬어야 하고 충혈된 눈에선 눈물이 자꾸만 새어 나오는, 영락없는 나의 감기 증상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안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어 선별진료소에 방문해 신속항원검사를 하고 오기도 했다. 은색 한 줄을 확인하고 나서야 마음을 놓을 수 있었고 종합감기약을 먹으며 금세 회복이 되나 싶었는데 다시 목이 간질거리면서 기침까지 동반한다. 애매한 식사 시간 때문에 배도 고팠고 약국에서 사 온 약을 먹기 위해 아이들에게 양해를 구한 뒤 먼저 이른 저녁을 먹었다. 요즘 툭하면 언성 높이며 싸우는 남매라 첫째는 자기 방에 둘째는 거실에서 놀고 있었는데 엄마랑 같이 놀고 싶다는 둘째에게 엄마 조금 힘든데 쉬어도 되냐고 물었다. 단박에 안된다고 대답하는 둘째를 외면할 수 없어 함께 블록놀이를 하고 있는데 방에 있던 첫째가 나온다. 함께 블록을 하고 싶다는 첫째에게 둘째가 누나랑은 안 한다며 벽을 치더니 한편에서 누나가 쌓고 있는 블록이 멋져 보였나 보다. 둘째가 누나랑 같이 하고 싶다고 먼저 손을 내밀었고 나는 이때다 싶었다.


"그럼 엄마 조금만 쉬고 와도 돼?"

첫째가 "엄마 방에 가서 쉬고 와. 들어가, 들어가."라고 답하자 뒤이어 둘째가 들어가라는 손짓과 함께 "셔셔(쉬어쉬어)"라고 말해 준다. 방으로 들어가며 저녁은 언제 먹겠냐고 물었다. 평소 6시면 저녁을 먹는 우리 집인데 6시 반에 먹겠단다. 그럼 6시 반에 나오겠다 말하고 안방으로 들어가며 "문 조금만 닫아도 돼?" 하고 물었다.

"엄마 꽉 닫아."


침대에 앉아 비스듬히 기댄 채 휴대폰을 보고 있었는데 잠깐 잠이 들었나 보다. 눈을 떠보니 아이들과 약속한 시간이 다 되어 있었고 첫째가 나를 살피러 들어오더니 7시까지 고 말하고는 쌩하고 방을 빠져나간다. 배가 고프진 않을까 염려되어 물으니 지금은 괜찮단다. 약발이 제대로 들었는지 나는 그 사이 또 잠이 들었고 아이들의 시끌벅적한 소리에 깨어보니 첫째가 둘째를 데리고 목을 끝낸 뒤였다.

평소에도 기분이 좋을 때면 동생 목욕을 도맡아 하는 첫째라 익숙한 모습임에도 오늘따라 감동이 배가 되었다. 예쁘고 기특한 모습에 양쪽에 아이들을 와락 끌어안고 뽀뽀를 퍼붓고 싶었지만 감기 전염 방지를 위해 쓰고 있는 마스크 때문에 그럴 수가 없었다. 첫째가 둘째한테 또 자기 옷을 입혀놨다. 둘째의 발목에서 한참 주름져있는 내복 바지와 누나 내복을 입고 좋다고 까부는 둘째를 보니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온라인으로 주문하고 배송받은 양념 소불고기를 아이들이 좋아하는 팽이버섯과 함께 볶고 있는데 "엄마 이제 괜찮아?"라고 물어봐주는 첫째에게 고마웠다. 반찬가게에서 사 온 청국장에 두부를 가득 넣어 다시 끓이고 우리 집 상시 반찬인 묵은지 지짐을 냉장고에서 꺼냈다. 불고기 안 먹고 싶다더니 밥 한 그릇 뚝딱하는 아이들에게 고마웠다. 아빠가 퇴근할 때까지 기다리면 안 되냐고 하는 아이들을 달래 침대 1층에 누웠다. 바다거북과 상어책을 읽어주니 어느새 잠든 둘째에게 고마웠다. 동생이 잠든 걸 보고는 알아서 잘 준비를 끝내고 침대 2층으로 올라가 눕는 첫째에게 고마웠다. 

약국에서 사 온 약이 잘 든 건지 아이들의 배려 덕인지 몇 시간 사이 목 상태가 한결 나아졌다. 완전히 회복되면 마스크를 벗고 아까 못해준 뽀 세례를 아이들에게 실컷 해줘야겠다.

고마워, 내 새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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