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이랑 May 19. 2022

친구의 임신

친구가 임신을 했다.


아이라면 질색을 할 정도로 남편 하고만 살고 싶다던, 아이에게는 무관심한 줄로만 알았던 임신 소식을 듣자 놀람인지 반가움인지 모를 벅차오름이 느껴졌다. 호들갑인지 감격의 눈물인지 그 언저리 즈음의 반응으로 축하한다며 진심을 전하고는 다시 나로 돌아왔다.

"그런데 앞으로 정말 힘들 거야."


정말 그랬다.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해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이게 전부인 줄 알았던 시절이 있었다. 결혼 준비도 신혼여행도 신혼 생활도 임신과 출산도 시부모와의 관계도 뭐 하나 내 뜻대로 되는 것이 없는 게 결혼이었다. 왜 사람들은 좋은 것만 보여주고 좋은 것만 이야기해준 건지, 학교를 다니며 꼬박 12년을 공부하면서도 왜 결혼 생활에 관한 의무 교육은 없지 누군가를 붙잡고 하소연하고 싶었다. 내 뜻대로 되지 않던 그 여러 가지 중 가장 당황스러웠던 건 임신과 출산이었다. 임신이란 게 계획대로 되지 않았음은 물론이요, 임과 함께 시작된 입덧은 목 축이듯 마시는 물 마저 토하게 만들더니 결 회사에 병가를 내고 난생처음 입원이란 것을 경험하게 다. 나보다 먼저 임신과 출산을 겪은 친구에게 전화해 투정 부리듯 말했다. 임신이, 입덧이 이렇게 힘든 건지 왜 이야기해주지 않았냐고. 너는 이 힘든 시기를 도대체 어떻게 견뎌냈냐고. 체중이 줄어드는 지옥 같은 입덧을 끝내고 나니 배가 제법 불러 있었다. 아이가 잘 자라고 있다는 안도감도 분명 있었지만 어떤 자세를 취해도 불편해서 꿀잠이라고는 청할 수 없는 D라인에 대한 원망게 불어났다. 출산은 더 가관이었다. 아기는 출산 예정일을 한참 넘기고도 나올 생각이 없었고 유도분만을 시작하고 이틀째에, 이러다 죽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순간에 흡입기(머리가 걸려 나오지 못하고 있는 상황)를 써서 세상 밖으로 나왔다.


노산이기도 하고 유독 겁이 많은 친구는 생각해 볼 것도 없이 제왕절개로 출산할 거라고 하는데 현명한 선택이라 지지하고 있다.




혼자 가까운 산을 찾 날, 산 정상에 위치한 정자에 엄마뻘로 되어 보이는 세 명의 어르신이 앉아 수다의 장을 열고 있었다. 어버이날 잘 보냈냐를 시작으로 첫째네가 아이를 안 낳는지 모르겠다, 이제 며느리도 서른여덟이라 노산인데 막상 갖고 싶을 때 안 생기면 어쩌나, 젊은 사람들 동물은 정성스럽게 돌보면서 제 자식 돌보고 싶지는 않은가 보다 등 흔한 엄마들의 자식 걱정이 이어지고 있었다. 딸의 입장으로, 며느리의 입장으로 어르신들의 수다에 말을 보태고 싶었지만 조용히 일어났다. 아이를 갖고 안 갖고의 문제는 부부의 선택이다. 딩크족으로 살기로 했는지 간절하게 원하는 아기가 아직 찾아오지 않은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축복으로 여겨지는 임신이 '힘든 것'임은 자명하다. 선택과 집중이 반복되는 과정이고 미리 학습하고 대비했던 것들이 예상을 빗나간다. 기분은 이랬다 저랬다 제 멋대로 널을 뛰고 믿음직스러웠던 남편이 갑자기 꼴 뵈기 싫은 놈으로 탈바꿈되기도 한다.


그 후 친구와 통화를 했는데 평소 예민했던 내 친구가 맞나 싶을 정도로 대단히 차분한 어조와 태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오히려 친구의 안위를 걱정하고 친구 닮은 아이를 상상하며 들떠있는 나를 친구가 진정시켰다. 아이 없이 살 줄로만 알았던 친구의 임신 소식에 자꾸만 흥분하는 내 모습이 스스로도 생소하다. 이렇게 기쁠 일인가 싶지만 이런 기쁨은 감출 이유가 없지 않은가. 임신 기간, 친구가 힘들 때마다 남편 다음으로 나에게 기댈 수 있도록 자주 연락하고 들여다볼 생각이다.


친구야, 엄마의 세계로 들어온 걸 격하게 환영해!

작가의 이전글 '미안해'로는 모자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