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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이랑 Apr 26. 2022

'미안해'로는 모자라

아침부터 둘째를 잡았다.

늘 그렇듯 아이들 아침 식사를 차려주고 첫째 책가방엔 연보라색 물병을, 둘째 유치원 가방엔 식판과 검은색 물병, 그리고 수건이 담긴 지퍼백을 다. 안방에서 나갈 준비를 하고 있는데 둘째가 조용해 내다보니 유치원 가방 옆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수건이 눈에 들어다.

"지퍼백 어디 갔어? OO이가 친구 준다고 반지 넣어 지퍼백에 엄마가 수건 담아서 유치원 가방에 넣어놨어."

모른다고 답하는 둘째에게 거짓말하면 안 된다고 했지만 둘째는 여전히 아리송한 표정을 지은 채 자기가 아니라고 말다. 누나는 학교 갔고 엄마도 아닌데 그럼 그랬냐며, 가방 안에 넣어둔 지퍼백의 행방을 둘째에게 따지듯 물었다. 머뭇거리던 둘째는 쓰레기통에 버렸다고 했고 집 안 쓰레기통을 다 열어봐도 지퍼백은 보이지 않았다. 이제 나가야 하는데 장난인지 거짓말인지 알 수 없는 행동을 하고 있는 둘째에게 화가 났고 유치원 버스가 오기 전 친구들과 즐기는 10여분의 킥보드 타는 시간마저 모조리 빼앗아 버리고 말았다.

킥보드 러버, 둘째.


하교한 첫째가 책가방을 열며 지퍼백을 꺼낸다. 문제의 그 지퍼백!

"엄마, 이거 왜 내 가방에 넣었어?"

"아니, 그게 왜 거기 있어? 어떡해, 어떡해."


세상에, 이런 일이. 둘째 유치원 가방에 넣어야 할 지퍼백을 첫째 책가방에 넣어 놓고는 둘째 탓만 해 스스로가 부끄러워 미칠 지경이었다. 그깟 지퍼백이 뭐라고! 새 지퍼백 꺼내 다시 담아주면 끝났을 사소한 문제를 크게 만들어 버린 스스로에게 화가 나 미칠 지경이었다. 침을 엉망으로 만들어 놓은 엄마에게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원 버스에 올라탄 둘째는 손하트를 날려주고 간 터였다. 창문 너머 엄마를 바라보는 둘째의 속이 어땠을까. 시간을 돌릴 수만 있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아침으로 되돌려 놓고 싶을 만큼 둘째에게 미안해 미칠 지경이었다.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식탁 의자에 앉은 나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유치원에 전화해 오늘은 데리러 가겠다 말해놓고 피아노 학원에서 돌아온 첫째를 차에 태웠다.


신발로 갈아 신고 걸어 나오는 둘째를 잠시 멈춰 세운 뒤 내 다리 위에 앉히고는 엄마가 미안해, 엄마가 실수해놓고 내서 미안해, 왜 네가 하지도 않았는데 했다고 그랬, 엄마가 정말 미안해, 엄마 용서해줄 수 있어? 라며 끊임없이 사과를 했다. 옆에서 지켜보던 첫째가 미안하다는 말 좀 그만 하라며 타박했지만 미안하다는 말을 아무리 전해도 둘째에게 미안하고 부끄러운 감정 사그라지지 않았다. 

엄마를 용서한다고 한 둘째는 정말 나를 용서했을까? 분명히 상처받았을 텐데 없었던 것처럼 깨끗하게 아물었을까? 부족한 엄마일지언정 다시는 부끄러운 엄마는 되지 말자고 이 작은 아이를 통해 나는 또 배운다.

 

마침 아파트 장터가 열린 날이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떡꼬치와 갓 튀겨져 나온 뻥튀기를 사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식탁에서 떡꼬치를 먹는데 내 옆에 앉아 있는 둘째가 말한다.

"엄마, 다음에 또 그러면 나 데리러 와야 해."


아니, 이제 그런 일 없을 거야. 그래도 엄마가 화요일엔 종종 데리러 갈게. 그날은 네가 좋아하는 떡꼬치랑 뻥튀기 또 사 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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