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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이랑 May 28. 2022

거부 당한 남편

산비둘기 두 마리가 움직인다. 앞에서 도망가는 듯한 모습의 암컷과 암컷 꽁무니를 쫓아다니며 고개를 위아래로 흔들면서 구애의 소리를 내는 듯한 수컷.

산비둘기 두 마리의 모습이 흥미로워 가던 길을 멈추고 지켜보고 있었다. 같은 행동을 몇 번 반하더니 수컷은 더 이상 암컷의 꽁무니를 뒤따르지 않았고 구애의 소리도 들리지 않았.

수컷은...... 삐친 걸까?


남편 생각이 났다.

지난 어린이날 연휴 2박 3일 여행을 다녀왔다. 여행 전 날, 나는 아이들 옷가지에 먹거리를 챙기고 빠진 건 없는지 확인하느라 지쳐 있었고 (그래, 항상 이런 일은 내 몫이지.) 남편은 퇴근 후 축구하러 가는 날이었다. 새벽 1시가 다 되어서야 집에 돌아온 남편이 잠자리를 요구한다. (아니, 축구하고 왔잖아. 그냥 좀 자면 안 돼?) 진짜 피곤한 건 나였기에 오은 아니야, 싫다고 답했는데 이내 분위기가 냉랭해지고 말았다. , 이런 분위기 정말 싫지만 모르는 척 잠을 청했다. 차 막히는 도로에서 시간을 보내고 싶지 않아 아침 일찍 부지런을 떨어 여행길에 올랐다. 방문한 관광지에서는 어린이날 행사가 진행되고 있었고 세 번째 방문임에도 기대 이상으로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남편은 첫째를 나는 둘째를 챙기느라 집에서 데려온 냉랭한 분위기는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숙소에 돌아와서 계곡에서 놀던 아이들은 평소와 비슷한 시간에 잠이 들었고 남편이 또 들이댄다. (헉, 우리가 묵는 곳은 원룸인데 여기서 하자고?) 굳이 불안함 속에서 하고 싶지 않은 나와 스릴을 느끼며 하고 싶다던 남편. 이번에도 나의 고집이 고개를 들었지만 (당연히 내가 이기는 게임이어야 하는 거 아니야?) 원룸의 공기는 또 냉랭해지고 말았다.


이런 일이 처음이 아니었기에 화가 났다. 예전에도 분명히 이야기하지 않았냐, 당신만 좋자고 하는 거 나는 싫다, 하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는 아내와 하고 싶냐 따져 물었다. 남편은 아내에게 이틀 연속 거부당했다는 상심이 컸는지 어쨌는지 다음 날 아침 아이들에게 대하는 태도마저 얼음장처럼 차가워져 있었다. 엄마, 아빠의 분위기를 아는지 모르는지 아침을 다 먹은 아이들이 밖에서 놀겠다며 자리를 피해 주었다. (네가 삐친 건 알겠는데 우리 문제로 아이들에게까지 피해를 주는 건 가만둘 수 없어!) 이 냉랭하고 불편한 분위기를 다시 데워야 할 필요가 있어 눈길이 휴대폰에만 향하고 있는 남편에게 제발 그러지 좀 말라며 다가갔다.(아니 도대체 왜 삐치는 건데?) 남편은 본인도 그러고 싶지 않는데 남자들은 다 그렇다며 나로서는 도통 이해할 수 없는 말들을 해댔다. 나한테 기분 나쁜 게 있어도 아이들 앞에서는 아닌 척 연기라도 해달라고, 나는 여기서 말고 집에 돌아가서 마음 편히 하고 싶다며 살살 달랬다.


답답해서 묻습니다. 정말 남자들은 다 그런가요? 아내한테 거부당하면 어떤 기분인가요? 이렇게 삐치는 거 이해해줘야 하는 건가요? 속 시원히 답변해 주실 분 찾습니다.

그나저나 그 산비둘기 두 마리는 어떻게 됐을까?


덧) 며칠 전 생각나는 대로 적어 놓은 글을 남편이 먼저 보게 되었습니다. 이런 글을 써도 괜찮냐고, 브런치 하다가 자기 흉을 볼 수도 있는데 괜찮냐고 물었더니 괜찮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글도 괜찮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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