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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이랑 Jun 12. 2022

눈썰미가 좋은 너

첫째는 눈썰미가 좋다. 동네 이모들의 헤어스타일이나 손톱 색이 바뀐 것을 누구보다 먼저 알아차리고 며칠 전 한 번 본 사람을 다른 날 다른 장소에서 알아보기도 한다. 눈썰미가 좋은 사람들은 관찰력이 좋다고 하던데 식당에 가면 유독 다른 테이블에 앉은 손님들을 빤히 다보며 관찰하는 첫째에게 그만 좀 쳐다보라고 저지시키는 일이 다반사다.


그날 40여분 차를 타고 놀이공원에 갔. 눈썰미 좋은 째는 스크를 쓰고 있었음에도 3년 전 같은 반이었던 유치원 친구를 먼저 알아봤고 아빠와 함께 롤러코스터를 타러 갔다가 터키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었다고 했다. 터아저씨에게 아이스크림을 건네받은 첫째는 아빠에게 와서 이렇게 말했단다.


"저 아저씨 하나도 행복해 보이지 않."


작년에도 같은 놀이공원에 갔었는데 그때 터키 아저씨는 다른 꼬마 손님들보다 유독 어린 둘째에게 꽤 오랜 시간 약을 올리며 반달 모양의 눈으로 누구보다 즐겁게 아이스크림을 팔고 있었다. 지난 1년 사이, 첫째는 그 장면을 찍어 놓은 동영상을 몇 번이나 다시 보기도 했고 그 아저씨가 자기에게도 동생한테 했던 것처럼 똑같이 해주길 바랐을까? 첫째와 터키 아이스크림 아저씨에 대해 대화를 나눠보질 않아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남편에게 이 이야기를 전해 듣고는 첫째가 느꼈을 실망감 혹은 허무함에 내 가슴 한편이 저릿해 왔다.

작년과 올해의 터키 아저씨가 각각 다른 사람인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한 건 적어도 첫째의 눈에는 올해의 터키 아저씨는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터키 아이스크림 아저씨를 만난 곳

마스크를 쓰고 있어 는 사람도 긴가민가하다 지나쳐 버리기도 하는 엄마와 달리 마스크 위로 보이는 눈과 헤어스타일만으로도   누군지 잘 알아보고, (사실과 다를지언정) 그 사람의 기분마저 읽어 내려가는 에게 '그런 것까지 벌써 알 필요는 없는데......' 하는 마음이 드는 건 사실이다.



지난 금요일, 태권도 차량에서 우르르 내린 아파트 아이들이 어울려 놀고 있었다. 아이들이 노는 동안 기다리는 엄마의 시간은 생각보다 고되다. 앉을자리가 마땅하지 않을 땐 서 있을 수밖에 없고 아이들이 잘 놀고 있는지, 위험하진 않은지 신경을 곤두세우고 수시로 확인해야 하며 함께 기다리는 다른 엄마들과 장단 맞춰 대화를 이어가야 한다. 한 시간이 넘도록 놀고 집에 들어온 아이들은 (엄마가 보기에) 별 것도 아닌 일로 부딪히고 또 부딪힌다. 결국 참지 못하고 도대체 왜 그러냐며 다그치는 나에게 첫째가 말한다.


"엄마, 지금 7시니까 30분까지 방에 가서 쉬고 와. 엄마 힘든 거 같아서 내가 쉬는 시간 주는 거야."


안방 침대로 날 몰아넣은 첫째는 행여 동생이 쉬고 있는 엄마를 방해라고 할까 싶어 잠금장치까지 채우고는 안방 문을 닫는다.

침대 위에 대자로 누웠다가 잠깐 잠이 들었나? 이내 딸의 목소리가 들린다.

  

"엄마, 30분 다 됐어."


방문을 열고 나가보니 자기 몸은 물론 동생까지 싹 씻기고는 방에 앉아 선생님 놀이를 하고 있다. 둘이 앉아 노는 모습을 보니 흐뭇하고 하나부터 열까지 주도적으로 챙기는 첫째가 기특하고 나의 마음을 헤아려주는 첫째에게 고마운 마음이 든다. 이런 첫째를 보고 다른 엄마들은 나더러 부럽다고 말지만 첫째의 행동들이 '엄마의 피곤함'에 말미암아 나오는 것일 경우에는 아이 앞에서 기어이 마음을 들키고 만 자신이 부끄럽다.


거짓말하지 말고 솔직해야 한다고 가르치지만 육아의 영역에서,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에서 때로는 예외가 필요하겠구나 라는 생각이 드는 밤이다. 요즘 부쩍 짜증을 많이 내는 첫째. 사춘기가 빨리 오려는 것인지 첫째에게 조심스러워질 때가 있는데 기분이 태도가 되지 않도록(레몬심리 작가님 제목 참 기가 막힙니다.) 첫째 앞에서는 시기적절하게 일류 연기자의 가면을 쓰겠노라 다짐한다. 그 가면을 쓰는 순간만큼은 첫째의 눈썰미가 작동하지 않기를, 엄마를 위한다는 첫째의 희생이 배려로 포장되는 일이 더는 없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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