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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이랑 Jun 18. 2022

너의 도둑질 그리고 거짓말

띠부띠부씰이 뭐길래

살면서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일들이 있다. 갑작스러운 사고로 소중한 사람을 잃고 감쪽같은 보이스피싱에 속아 자산의 일부를 잃고 잘 못 뱉어버린 말 때문에 친구를 잃는 일들이 나 자신에게 국한된 일이었다면 아이를 키우면서는 아이도 나도 상처받는 일이 덜하길 바랐다. 학교 폭력의 피해자나 가해자가 되지 않기를, 교실에서 천덕꾸러기 신세가 되지 않기를, 그저 평범한 너로 자라주기를.

그렇게 바랐는데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일이 일어나고 말았다. 네가 그런 행동을 했는지 중요하지 않았다. 결과가 말하고 있었다. 우리 집에 네 친구가 애타게 찾는 물건이 있다는 건 명백한 사실이었다.




집 앞에서 잘 놀고 각자의 집으로 들어갔다. 저녁을 먹고 정리하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린다. 아까 함께 있었던 엄마의 전화였고 자기 아들이 포켓몬 스티커를 찾고 있는데 첫째에게 혹시 스티커의 행방을 알고 있는지 물어봐 달라고 했다. 전화기를 든 채로 첫째에게 스티커에 대해 물었고 돌아온 답변은 '나도 못 봤어'였다. 끝내지 못한 정리를 마저 하고 있는데 전화벨이 다시 울린다. 이번에는 그 아들이 직접 전화를 걸었 나 보다는 첫째가 통화하는 게 낫겠다 싶어 첫째에게 휴대폰을 건넸다. 첫째는 "알았어. 나도 한 번 찾아보고 연락게."라고 했고 전화를 끊음과 동시에 엄마의 촉이 발동했다. 하던 일을 멈추고 첫째에게 가보니 첫째는 본인 방 책상 아래를 살펴보고 있었다.

"스티커 어디 있는지 알아? 왜 거기를 찾아보고 있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하고 거실로 나온 첫째가 하릴없이 두리번거리는 어색한 몸짓을 보는 순간 화가 치밀었다.

"솔직히 말해. 엄마 거짓말하는 거 제일 싫어하는 거 알지? 네가 가지고 왔어?"


이제야 잘못을 알아챈 것일까? 순간 겁을 잔뜩 먹은 표정의 첫째 스티커가 바지 주머니에 들어 있었고 집에 와서는 여기에 넣어 놨다며 주섬주섬 민트색 파우치에서 스티커 뭉텅이를 꺼낸다.

"일단 돌려주고 와. 미안하다고 사과하면서 갖다 주고 이따 엄마랑 다시 이야기해."

바로 나가면 되는데 머뭇머뭇 알코올 솜을 찾는다. 알코올 솜은 왜? 스티커 뭉텅이 맨 앞에 이렇게 쓰여 있다.

'띠부실 모음집'.

글자까지 써 놓은 꼴이라니. 창고에서 알코올 솜을 꺼내 화를 누르지 못한 채로 벅벅 글자를 지웠다.


너무너무 부끄고 당황스러웠다. 내 딸이 지금 도둑질을 한 거야? 도둑질도 모자라 거짓말까지 하고? 할 수만 있다면 이 현실에서 도피해 어딘가로 꽁꽁 숨어버리고 싶었지만 바로 그 엄마한테 전화를 걸었다. 미안하다고, 지금 찾았고 직접 돌려주러 간다고.


돌려주고 온 첫째와 방에 마주 앉았다.

친구가 널 약 올리고 화나게 한 것도 잘못이지만 네가 땅에 떨어진 포켓몬 스티커를 친구한테 돌려주지 않고 네 주머니에 넣은 건 도둑질이 엄마가 스티커 봤냐고 물었을 때 못 봤다고 거짓말한 것 역시 엄마를 속였기 때문에 큰 잘못이라고, 어른들의 경우에는 경찰에 신고하고 감옥에도 갈 수 있는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자신이 얼마나 큰 잘못을 했는지 놀랐을 첫째는 꺼이꺼이 울면서도 나의 말에 집중하고 있었고 설명을 마친 나는 끝까지 거짓으로 일관하지 않고 마지막에 솔직하게 말해줘서 고맙다며 첫째를 향해 두 팔을 벌렸다.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일이 일어나서 나 역시 놀랐고 첫째에 대한 실망감이 얹어져 눈 안 가득 눈물이 그렁거렸다. 두 팔 안에 첫째를 품고는 "엄마는 엄마 딸이 도둑이 되는  싫어."라는 진심을 전하며 눈물을 흘렸다.




포켓몬빵을 사기 위해 몇 시간씩 줄을 서서 기다린다는 이야기는 우리 집과는 상관이 없었다. 나의 아이들은 포켓몬스터를 시청한 적도 없고 둘 중 누구 하나 포켓몬빵을 사달라고 말한 적이 없었다. 첫째가 가끔 친구가 말해줬다며 동네 슈퍼에 아침 8시부터 줄 서면 포켓몬 빵을 살 수 있다고 말한 적은 있지만 적어도 나에겐 고작 그 빵, 그깟 스티커였다. 그렇게 여긴 이유는 나 역시 어릴 적 책상 서랍 속에 껌 종이와 의류 택(tag)을 모아본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걸 왜 안 버리고 쌓아두냐는 엄마의 잔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결혼 전까지 가지고 있다가 결국 '이걸 도대체 뭐 하려고 모은 거야'하는 뒤늦은 후회와 함께 쓰레기봉투에 와르르 쏟아 버린 기억이 있다. 첫째도 그랬다. 친구 집에 있던 장난감, EBS 광고에서 본 장난감을 사 달라고 조를 때가 있었다. 비슷한 장난감이 있으니 필요하지 않고 필요하지 않은 물건이니 사줄 수 없다고 말하면 세뱃돈으로 사겠다고, 내 돈이니까 내가 쓰고 싶은 데 쓰겠다며 항변하던 첫째다. 어떤 방법으로 손에 쥐었든 그 장난감에 대한 기대, 설렘, 흥분, 만족은 길어야 일주일이었다. 결국 서랍 구석에 자리하고 빛 한 번 보기 힘든 신세로 전락하는 장난감을 보며 첫째도 이렇게 말했었다.


"엄마, 가졌을 때만 좋고 금방 시시해지네."


평소 똑 부러지는 딸에게서 아이의 모습을 지워버린 걸까. 내색을 안 했기에 갖고 싶어 하는 첫째의 마음을 알아채지 못했다. 아이들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지만 이제 겨우 아홉 살인 첫째의 도둑질과 거짓말은 우리 모녀에게 적지 않은 충격이었다. 불편한 마음을 어쩌지 못하고 있는데 그 엄마에게서 문자가 왔다.


"언니, OO의 마음이 충분히 이해가 돼. OO 혼내지 말고 내 아들, 내 딸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니까 우리끼리는 미안해하지 말고 서로 다독이며 지내자."


이렇게 사르르 녹는 문자라니. 불편했던 마음이 조금은 해소되며 첫째의 마음을 적극적으로 알아볼 필요에 대한 책임감을 느꼈다. 적절한 훈육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번 일을 계기로 잘잘못을 가릴 수 있는 판단력이 성장했기를,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우리 모녀 사이가 더욱 단단해졌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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