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마음이 머문 곳들
지난날, 약 3시간가량의 북부 블루마운틴 트래킹의 여파가 컸던 나머지 느지막한 시간에 눈을 떴다.
나는 처음 방문하는 뉴타운으로 향하기 위해 간단히 숙소 앞 싱글오에서 그토록 먹어보고 싶었던 바나나브레드를 하나 take away 했고,
오랜만에 겪는 주말 인파를 뒤로하곤 급히 바나나브레드 box를 들고 근처 공원으로 향했다.
촉촉하고 바삭한 브레드를 녹은 버터에 찍어먹으며, 새삼 그 많은 인파의 이유를 깨달았고, 나는 우리 집 앞에 있다면 매일도 사 먹을 수 있다는 말을 되뇌며 순식간에 브레드를 먹어 치웠다.
그렇게 순식간에 먹어치운 브레드를 뒤로하고 뉴타운을 향해 나는 다시 걷기 시작했다.
그러다 들린 패디스 마켓에서 지난 호주 여행 때는 보지 못했던 귀여운 키티 인형들을 발견했다.
너무 귀여운 나머지 나는 조그만 키링 두 개를 손에 쥐었고, 홀린 듯 결제를 하며 소중히 가방에 키링 두 개를 주워 담았다. (한국에 돌아가서 나는 바로 그 키링을 내 차에 걸어두었다.)
귀여운 키링과 함께 이따금 기분이 좋아졌지만, 거리로 나와 다시금 느껴지는 시드니의 강한 여름, 그리고 좌외선에, 급히 나는 근처 맥도날드에 들어가 즐겨마시던 콜라 슬러쉬를 구매했다.
분명 미디엄 사이즈를 시켰지만, 라지 사이즈가 넘어 보이는 컵에 뚜껑 위로 넘치게 담겨진 슬러쉬를 들고, 나는 급히 뚜껑 입구를 열었다.
하지만 뚜껑을 엶과 동시에 그 많은 양의 슬러쉬는 터져버려 사방으로 흩어져버렸다.
당황한 기색을 감추고 직원에 슬러쉬를 보여주며 티슈를 달라고 요청했지만 직원은 그 슬러쉬를 가져가더니 위로 흘러나온 슬러쉬의 거의 반이 넘는 양을 훑어내곤 내 손에 컵을 다시 쥐어주었다.
황당한 표정으로 직원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지만, 그녀는 대답이 없었고 나는 새어 나오는 불쾌함을 감추며 티슈를 달라고 다시 한번 요청했다.
그제서야 그녀는 무표정한 눈빛으로 티슈를 내게 몇 장 쥐어주었다.
이따금 따가운 햇볕에 인상이 찌푸려졌던 게 단연 햇빛 때문만이 아님을 그제서야 조금은 눈치챘던 것 같다.
잠시동안 날카로워진 마음을 달래고자 나는 시드니 대학교에 가는 길, 근처 공원에 들러 마음의 양식을 또다시 펼쳐보았다.
내가 애정하는 윤여정 작가의 에세이.
그제부로 다 읽은 책을 뒤로하고, 나는 새로운 책을 꺼내 들었다.
분명 지난날 읽은 자국과 접힌 페이지가 있었지만, 새로운 기억으로 그 책을 다시 채우고자 책의 첫 장을 다시 펼쳤다.
언젠가 읽었던 내용을 다시 되새기며 책을 읽기 시작했고, 어느덧 훌쩍 지난 시간을 보며 나는 다시 책을 접고, 바로 앞 시드니 대학교로 발걸음을 옮겼다.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시드니 대학교의 볼거리는 그리 많지 않았다.
어찌 보면 관광객이 즐비하는 시계탑만이 내가 보고자 했던 단 하나의 공간이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그저 드넓은 잔디밭을 온몸으로 느끼길 반복했고, 나는 대학교에서 금세 나와, 다시 뉴타운으로 향했다.
무더운 날씨에 급하게 롱블랙 한잔을 찾게 되는 날이었다.
근처 유명한 캄포스커피에 들어갔고, 한국인 점원이 내게 어떤 걸 주문하겠냐고 물었다.
메뉴판을 보다 문득 필터커피가 마시고 싶어, 아이스 필터커피를 주문했지만,
콜드부르만 ice 가 가능하다는 답변을 받곤, 아이스 필터 커피 대신 아이스 콜드브루를 한잔 주문했다.
주문 후 또다시 꺼내든 Hayden 이름을 알아듣지 못하는 한국인 점원에 이따금 쉬운 이름을 고르다 Kim 이름을 정말 오랜만에 입 밖으로 꺼냈고,
한국인 관광객으로 가득 찬 가게 안에서 나는 급하게 take away 커피를 들고 밖으로 나왔다.
뉴타운 거리는 쉽게는 한국의 서울, 그리고 조금 어렵게는 미국의 테네시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가게 주인들이 본인이 좋아하는 것들로 가득 채운 그 가게 하나하나 들이 너무도 보기 좋아 이따금 미소가 지어지곤 했다.
나는 그중에서도 나와 취향이 비슷해 보이는 가게들을 들어가길 반복하며,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그 뉴타운 거리를 채웠다.
그러다 들어간 예쁜 ‘엘리자베스 서점’은 내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가득 꽂혀있는 수많은 영어 책들을 보며 금세 흥미가 사라져 되돌아 나올 수 밖에 없었다.
(영어책도 내 마음대로, 그리고 내가 원하는 분위기와 취향으로 고를 수 있을 정도로 영어를 잘하고 싶다는 생각을 정말 많이 했다.)
그러다 들어간 예쁜 돌들이 모여있던 가게에선, 시드니를 닮은 돌을 하나 골랐다.
푸르른 하늘과, 바다, 그리고 습도 없는 시원한 바람, 때로는 눈이 부실 정도로 하얀 구름들.
그 모든 것들을 아우를 수 있는 내가 생각하는 시드니의 색깔로 채운 돌로 말이다.
그렇게 끊임없이 거리를 걷다, 가게를 구경하길 반복하다 보니 금세 배가 고파졌다.
나는 근처 유명하다던 야끼소바빵집을 찾아갔지만, 그곳에도 한국인 관광객들이 붐볐고, 심지어 그 빵은 이제 판매하지 않는 듯해 보였다.
그렇게 나는 아쉬움을 가득 안고, 근처 음식점 검색에 나섰다.
그러다 우연히 특이해 보이는 김타코 가게를 발견했다.
많은 빵들로 끼니를 며칠간 채워서 그런지, 사진을 보자마자 이곳이다! 하는 생각과 함께 바로 김타코를 먹으로 향했다.
가장 유명할 것이라 추정되는 가장 첫 번째 메뉴를 시키곤 걸으며 흘린 땀을 에어컨 바람 대신 시원한 바깥바람으로 식혔다.
그렇게 나온 김타코는 생각보다도 더 맛있었다.
밥 위에 짭짤한 바베큐 소스, 그리고 고기와 간단한 채소들이 올라가 있었고, 그 겉을 바삭한 김부각 튀김이 싸고 있었다.
처음 보는 비주얼에 의심을 하다가도, 한입 베어 물며 뉴타운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세트로 나온 고구마튀김까지 야무지게 먹곤, 한껏 보송해진 몸으로 다시 뉴타운 거리를 걸었다.
그러다 우연히 들어간 아랍(?)풍 가게에 예쁘게 꾸며진 조명을 두 눈에 담았다.
점원은 내게 tea를 타고 있는데 혹시 마시면서 둘러볼 생각이 있냐고 물었다.
그녀의 맑은 미소에 이따금 기분이 좋아져 흔쾌히 그러겠다고 했고, 레몬이 띄워진 따뜻한 유리잔에 차 한잔을 건네받았다.
pay를 하겠다는 내 말에, 그저 free 라며 웃어 보이던 그녀의 가게 안에서 그 어느 때보다 열심히 그녀의 취향을 두 눈에 담으려 노력했다.
(내 앞에 들어간 한국인 두 명은 그녀가 한 질문에 yes라고 답했지만, 짧게 구경을 하고 나갔다. 그녀는 그 한국인 두 명을 붙잡으며 너희를 위해 tea를 타고 있는데 어디 가냐며 붙잡았지만, 몰랐다며 미안하다는 말을 남긴 채 가게를 나갔다. 아마도 그들은 그저 못 알아들은 외국어에 가벼운 동의를 한 것으로 보였다.)
엄마가 좋아하는 빈티지 그릇을 사러 우연히 블로그에 나온 뉴타운 거리의 한 빈티지 그릇 가게로 향했다.
가게에는 다양한 낡은 그릇들이 정말 많았다.
나는 그중에서도 가장 멋지게 낡고, 그 세월을 잘 간직한 두 개의 그릇을 집어 들었고,
그 낡은 그릇들은 할아버지가 보관하고 계시는 낡은 신문지에 싸져 내 품으로 돌아왔다.
‘낡은’이라는 말은 그저 시간이 흘러 바래진 것이 아닌, 그간의 시간을 간직하고 있는 내게 온 또 다른 선물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과 함께 말이다.
8시에 시작되는 달링하버의 불꽃놀이를 보기 위해 5시가 넘어갈 때 즈음 버스를 타고 다시 시티로 향했다.
버스에 내려 우연히 찾아간 바에서 happy hour 맥주를 한잔 하며 시간을 때웠다.
시음해 본 두 개의 페일에일 맥주 중 더 취향에 맞는 맥주를 골라 직원이 알려준 2층 루프탑으로 향했다.
따사로운 햇살 아래 맥주를 한잔 마시며 다 읽지 못한 책을 다시금 펼쳤다.
맥주의 온도가 따가운 햇빛 아래 시드니의 온도와 같아질 때 즈음 나는 다시 달링하버로 떠났고,
걷다 보인 공원 앞에서 저녁 식사를 때울 곳을 찾기 시작했다.
처음 가보는 달링하버에 묘한 긴장감을 안고, 나는 그날 유독 당기던 국물 있는 음식점인 라멘집을 택했다.
그렇게 식당으로 향하는 오르막길을 오르길 반복하다 보니 금세 식당에 도착할 수 있었다.
들어가자마자 언뜻 보기에는 일본인으로 추정되는 주인아주머니가 대뜸 문 앞에 서있는 내게 다가와서 한 명이냐고 물었다.
나는 그렇다고 답했고, 그녀는 갑자기 문 앞에 붙어있는 페이퍼를 읽어보라며 손으로 문쪽을 가리켰다.
나는 당황해서 그 페이퍼를 읽기 시작했는데 대충 그날 안 되는 음식들 종류가 나열되어 있었고, 20달러 이상의 음식을 주문해야 한다고 쓰여있었다.
첫 입장부터 그런 문구를 보며 호주에는 없는 문화, 그리고 당황스러운 그녀의 태도에 기분이 상했지만,
그 집의 라멘이 20달러가 족히 넘었기 때문에 대수롭지 않게 라멘 하나를 주문할 거라고 그녀를 안심시켰다.
하지만, 그녀는 퉁명스러운 말투로 라멘을 먹을 수는 있지만 30분이 넘게 기다려야 된다는 말로 대답을 대신했다. (사람도 많이 없었는데 말이다.)
나는 그 대답에 이곳에서는 나의 달링하버에서의 하루를 망칠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어 Sorry라는 말을 남긴 채 식당을 나왔다.
그렇게 나와 급히 근처 음식점을 찾았지만, 간단히 먹을 수 있을만한 식당이 딱히 없었다.
하지만 8시의 불꽃놀이를 보기 위해서는 1시간도 채 남지 않았던 터라 나는 급히 근처 일식풍 음식을 판매하는 식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가리비 구이와 작은 치킨을 하나 시켰고, 처음에는 일본인인 줄 알았던 직원들이 나누는 한국어 대화를 들으며 그제야 마음 편히 음식을 먹을 수 있었다.
내가 외국인인 줄 알던 그들은 내게 계속 영어로 질문을 했고, 나는 그들의 무안함을 없애고자 줄곧 영어로 계속 대화했다.
그럼에도 마지막엔 그들에게 나름의 인사를 남기고 싶어, 저도 한국인이라며 너무 맛있게 잘 먹었다는 인사를 남기곤 불꽃놀이를 보러 떠났다.
떠나며 확인한 불꽃놀이 일정은 정확히 8시가 아닌 9시였다.
그럴 줄 알았으면 음식점을 더 찾아봤어도 됐는데! 하는 아쉬움과 함께 나는 남은 시간을 급히 때우기 위해 근처 마트에서 전날 가이드님이 추천해 주신 유칼립투스 꿀을 사러 향했다.
(어제 가이드님이 말씀해 주시기로는, 호주에서는 마누카꿀 보다 유칼립투스 꿀이 훨씬 흔하다고 한다. 하지만, 마누카 꿀이 호주에서 유명한 이유는 단지 유칼립투스 꿀이 너무 저렴해서 마진이 안 나오기 때문이라고 알려주셨다.)
하지만 coles와 woolworth 모두 유칼립투스 꿀은 보이지 않았고,
급히 가이드님께 메시지를 남기고, 우연히 본 유칼립투스라는 단어가 쓰여있는 꿀을 보며 이거다! 싶어 두 개를 집어 담았다.
그리곤 불꽃놀이를 보러 정확한 시간에 맞춰 길을 걷던 중, 나는 무언가 잘못됐음을 자각했다.
지도상 찍은 위치가 Rd로 되어있던 것을 불꽃놀이가 시작되기 7분 전에 알아차렸던 것이다.
나는 급히 지도의 위치를 다시 찍었고, 다행히 6분 만에 도착할 수 있는 거리여서 급히 경로를 틀었다.
가는 길에는 나와 같이 허겁지겁 뛰어가는 한 한국인 가족이 있어, 그들을 뒤따라 무사히 불꽃놀이 장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아마도 그들도 경로를 잘못 알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그렇게 시작한 불꽃놀이는 생각보다 빠르게 끝났다. 영상을 찍을 틈도 없이 약 7분 만에 끝나버린 불꽃놀이를 뒤로하고, 내가 이걸 보러 여기까지 이렇게 힘들게 왔을까 싶다가도, 이 또한 여행의 추억으로 남긴 채 나는 떠밀러 내려가는 사람들과 함께 숙소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