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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yden Apr 18. 2018

행복은 덜어냄에서 온다

- tvN, 숲속의 작은 집

숲속의 작은 집
편성 : tvN, (금) 오후 09:50 방영
시청률 : 3.2%(닐슨코리아), 2.8%(TNMS)


 '나영석표 예능'에 공통적으로 들어가는 레시피가 있다. 시청자들이 평소 꿈꾸는 판타지를 실현시켜 줄 것. 단, 판타지와 관계없는 요소는 과감히 덜어내어 온전한 대리만족을 가져다줄 것. 삼시세끼에서는 시골에서 자급자족하는 삶을 그려내지만 고생스럽게 작물을 키우는 일은 덜어냈다. 윤식당 역시 낯선 타국에서 식당을 개업한 후 벌어지는 일들을 그리지만, 장사가 망하면 어떡하나 하는 막막함은 없다.

자발적 고립 다큐멘터리, 숲속의 작은 집 / tvN

 숲속의 작은 집은 이러한 레시피의 끝판왕이라고 할 수 있다. 두 연예인 피실험자가 각자 다른 오프 그리드(off-grid, 공공 전기, 수도, 가스가 끊긴) 하우스에서 지내면서 행복을 실험하는 다큐멘터리인데, 이 행복 실험의 초점은 꼭 필요한 것을 제외한 것들을 덜어내는 미니멀 라이프에 맞춰져 있다. 피실험자가 셀프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시청자에게 미니멀 라이프를 설명하는 모습은 영화 마션의 주인공 마크 와트니를 생각나게 한다.

'화성판 삼시세끼'의 주인공 마크 와트니 / 영화 마션

 사실 프로그램의 소재로만 놓고 본다면 새로울 것도 아니다. KBS에서 종영한 인간의 조건 시리즈도 다양한 조건들을 없애가며 인간에게 꼭 필요한 조건은 무엇인지에 관한 실험을 했고, SBS의 간판 예능 중 하나인 정글의 법칙은 아예 문명과 멀리 떨어진 곳에서 생존하는 중이다. 그럼에도 이 프로그램이 기존 프로그램과 다른 느낌의 만족을 선사해주는 이유는 바로 '덜어냄'에 있었다.


 먼저 사람을 덜어냈다. 주인공인 두 명의 피실험자는 각기 다른 시간과 장소에서 지내고 있으며, 서로 아무런 관련이 없다. 박신혜와 소지섭, 이 둘은 내레이션에서 실명이 아닌 피실험자 A와 B로 불리며 그나마 나오는 대화도 제작진과의 짧은 인터뷰뿐이다. 예능에서 당연히 존재해왔던 멤버들 간의 '케미'는 없고, 대신 최대한의 고독이 남았다. 셀프 카메라를 통해 열심히 자신의 생활을 이야기하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어 프로그램은 꽤나 침묵을 지킨다. 그런데 지루함이 아닌 색다른 몰입감을 주는 요소가 있었으니, 바로 ASMR이다. 피실험자들이 침묵을 지키는 사이, 프로그램은 계곡 물 흐르는 소리, 장작불 타는 소리,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를 길게 들려준다. 이러한 요소는 진짜 그 장소에 있는 듯한 편안함을 전달해주었고, 내가 실제로 피실험자가 되어 홀로 여행을 온 듯한 착각을 주었다(홀로 여행을 가면 보통 혼잣말보다는 저런 소리를 가만히 듣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자극적이지 않고 편안한 몰입의 탄생 순간이다.

tvN, 숲속의 작은 집

 다음으로 생존을 걷어냈다. 복불복을 하고, 오지에서 먹을 것을 찾아 헤매거나, 낯선 여행지에서 길을 물으며 고생하는 등 익숙지 않은 곳에서 지내는 대부분의 예능 프로그램은 필연적으로 생존을 위한 노력을 동반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여기는 그런 거 없다. 피실험자 A(박신혜)가 오프 그리드 하우스에서 떨어져 가는 물을 걱정하는 장면이 잠깐 나오지만 어느샌가 저절로 채워져 있고, 식사는 가져온 재료와 흰쌀밥으로 해결한다. 대신 주어지는 것은 단순한 실험들이다. 한 가지 반찬으로 식사하기, 음악 없이 독서하기, 물 흐르는 소리 담아오기 등 긴장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실험이지만 실험자들은 그 안에서 자신만의 사색에 빠진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나도 다른 맥락을 생각할 필요 없이 행동 그 자체에 집중한다. 다른 예능이 자기만의 이야기를 하며 시청자들을 휘어잡을 때 이 프로그램은 시청자들의 머릿속 공간을 시청자들에게 돌려준 느낌이다. 마치 스크린을 넘어 진짜 여행을 떠난 것처럼.

물 흐르는 소리 담아오기 / tvN, 숲속의 작은 집

 이렇듯 숲속의 작은 집은 불필요한 연출을 덜어내고, 대신 자연스러움을 채워 독특한 편안함을 안겨주는 프로그램이다. 제작발표회에서 나영석 PD는 "정말 졸린 프로그램이 될 것이다"라고 이야기했다는데, 지루함에 찾아오는 졸음이 아닌 편안함에서 오는 졸음 때문에 반은 맞았고 반은 틀렸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다만 몇 가지 보완했으면 하는 부분이 있다. '세 시간 동안 식사하기'나 '한 번에 한 가지 행동만 하기' 등 일부 실험은 미니멀 라이프를 지나치게 추구한 나머지 오히려 새로운 규칙으로 피실험자를 묶는 느낌이다. 인위적이지 않은 삶에서 오는 행복을 실험하기 때문에 실험 조건은 최대한 인위적인 거품을 빼야 할 것이다.

tvN, 숲속의 작은 집

 너무 많은 것들을 머리에 담고 사는 요즘 사람들에겐 아무리 재미있는 예능도 새로운 포맷 학습의 반복일 뿐이다. 주변의 많은 것들에 지쳐서 홀로 아무것도 없는 곳으로 불쑥 여행을 떠나고 싶을 때, '숲속의 작은 집'으로 잠시 여행을 떠나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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