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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yden Apr 24. 2018

폭력은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낳고

- 한 강, 채식주의자

채식주의자 / 한 강, 창비


※ 책의 내용이 일부 포함되어 있습니다.


 한 강 작가가 소설 채식주의자로 맨 부커상을 받았을 때 사람들의 관심이 쏠렸다. 유행에 뒤질세라 앞다투어 작품을 읽는 사람이 늘었고, 나 역시 그들 중 한 사람이었다. 처음 책을 집어 들 무렵에는 유명한 상을 받은 작품이니만큼 아름다운 이야기가 있으며, 많은 것을 배울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가 있었다.


 그러나 책을 읽으면서,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다. 책에는 일반적인 채식주의자가 아닌 정신질환을 앓는 주인공이 있었고, 그로 인해 철저하게 파괴된 가족의 이야기가 있었다. 주인공 영혜는 채식주의 선언 이후 살아 있는 동박새를 물어 죽이는가 하면, 자신을 식물과 동일시해서 음식을 거부하고 햇볕만 쬐는 등 병적인 행동으로 정신병원에 입원한다. 영혜의 행동으로 인해 남편은 영혜를 떠나고, 영혜의 온 가족은 불행해진다. 특히 가까이서 영혜를 돌보는 언니 인혜는 피폐해진 삶 때문에 차라리 죽어버리고 싶다는 자살 충동만을 느끼며 아무런 저항을 하지 못하는 비극적인 이야기를 반복한다. 작가가 독자에게 온통 비극뿐인 질문을 던졌다.


 처음에 든 생각은 왜? 였다. 왜 영혜는 병적인 행동으로 자신을 파괴했으며, 작가는 왜 인간의 깊숙한 트라우마를 꺼내어 펼쳐 놓았을까. 내가 찾아낸 답은 주변 환경에 있었다. 주변 환경은 우리가 흔히 보았던 가부장적인 집안 분위기였고, 그것이 영혜를 비극의 한가운데로 내몰았다.


 작품은 영혜 남편의 시각으로 영혜를 바라보며 시작한다. 매일 먹고살기 바쁜 월급쟁이 남편에게 영혜는 사랑하는 여자가 아니라 같이 살아도 별 문제없을 '무난한 여자'였다. 어느 때는 술을 먹고 늦게 들어와 놓곤 다음날 늦게 깨웠다고 영혜에게 버럭 화를 냈다. 계속되는 남편의 재촉에 급하게 요리하던 영혜가 실수로 조그만 칼 조각을 불고기에 빠뜨렸을 때 사람 죽일 일 있느냐며 영혜를 몰아세웠다. 영혜는 묵묵히 견뎠고 남편은 그런 일들을 아무렇지 않게 지나갔다.


 영혜의 아버지는 전직 군인이다. 둘째 딸인 영혜에게 그는 항상 엄격하고 무서운 아버지였으며, 이러한 성향은 채식주의를 선언한 영혜를 대한 장면에 잘 드러나 있다. 식구들이 모인 자리에서 영혜가 고기를 먹지 않겠다고 선언했을 때, 그는 딸의 뺨을 냅다 후려갈겼다. 이 상황에서 영혜는 손목을 긋는 자해를 한다. 남아있던 영혜의 이성은 이때 끊어졌을 것이다. 가족들 모두 갑작스레 채식주의를 선언한 영혜를 이상한 사람 취급했지만, 정작 영혜를 그렇게 만들어 버린 건 당연시 여겨졌던 강요와 폭력이었다.


 작품 속에는 이탤릭체로 기록된 영혜의 독백이 등장한다. 채식주의를 선언하기 전 영혜는 매일 꿈을 꾸었다. 누군가를 죽여 고깃덩이를 씹는 꿈, 나를 물었던 개, 그 개를 잔인하게 죽인 아버지. 영혜는 온통 핏빛으로 가득한 이 잔인한 꿈 때문에 채식주의자가 되겠다고 생각했다. 잔인한 꿈으로 묘사된 폭력.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폭력이 영혜를 채식주의자로 내몰았다. 이러한 이야기를 접한 독자는 무엇을 느끼는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 한 강 작가는 묻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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