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속 실패의 이미지 걷어내기
내 안에는 두 개의 모순된 마음이 자리하고 있다. 항상 새로운 경험을 원하는 마음, 또 다른 하나는 익숙하지 않은 도전을 실패했을 때 따라오는 위험을 두려워하는 마음이다. 색다른 자극에서 오는 단 맛을 취하고 쓴 맛은 피하려는 모습이 영락없는 욕심쟁이다. 좋아 보이는 일은 일단 시도하고 보는 이 욕심 때문에 살면서 이것저것 벌여놓은 일들이 꽤 많은데, 일이 조금만 어려워져도 중간에 그만두어 발만 담갔다 뺀 일들이 상당하다. 나에겐 수영을 배우는 것도 그저 넓고 얕은 경험들 중 하나였다.
처음 수영을 배우기 시작했을 때는 재미있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강습을 받았다. 배우는 대로 쭉쭉 잘 나간다는 강사님의 말씀은 듣기 달콤했고, 반 내 1등을 자처하며 수영을 내 것으로 만들겠다는 다짐을 했다. 그런데 그 다짐이 접영을 배울 때 즈음 순식간에 깨졌다. 접영을 배우면서 내가 이렇게 많은 물을 코로 마셔본 적이 있었나 싶었다. 마침 수영강사님도 다른 분으로 바뀌었는데, 잘못된 자세에 대해 시종일관 혼나기 일쑤였다. 고질병이라고 할 수 있는 위험 회피 본능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고, 결국 아직도 한참 남았던 군 입대 핑계를 대며 수영장에서 돌연 도망치고 말았다. 그 후 5년이 지났다. 나는 어디 가서 더 이상 수영을 배웠다는 말을 하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도망쳤다고 해서 아쉬움마저 지워낼 수는 없었나 보다. 5년 후, 이번에는 진짜 잘 해보자고 스스로 생각하면서 다시 처음부터 수영을 배우기 시작했다. 이때 수영을 배우면서 알게 된 유쾌한 형님이 한 분 계셨는데, 웃으며 입버릇처럼 “수영은 팔다리만 달려있으면 누구나 잘할 수 있다”는 말을 달고 다니셨다. 나는 이 말이 재밌다고 생각했다. 그 형님은 말은 그렇게 해놓고 수영장 물은 자기가 다 먹었기 때문이다. 재밌다는 나의 생각 뒤에는 ‘설마 진짜 되겠어?’ 하는 은근한 조롱도 깔려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곧 그만둘 줄 알았던 이 형님, 그렇게 물을 먹더니 제법 수영하는 모양이 난다. 내 생각도 따라서 ‘어, 진짜 되네?’ 로 바뀌게 되었다.
실패를 생각하지 않게 된 건 그때부터였다. 5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내가 달라진 건 그것 딱 하나다. 그때의 내 머릿속에는 물을 잔뜩 먹고 혼나는 나로 가득 차 있었고, 지금은 낄낄거리며 잔뜩 물을 먹으면서도 즐겁게 수영하고 있는 내가 보인다. 두려워하면서 반드시 잘 하겠다고 결의를 다지는 모습이 아니라, 실패하는 이미지 자체가 사라진 것이다. 팔다리가 있으니 수영을 잘 하게 될 것이 아주 당연한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에 수영장을 두려워할 이유가 전혀 없어졌다. 잘 안 되는 건 그저 지나가는 재밌는 이야기가 되었고, 새로운 영법을 배울 때도 두렵기는커녕 즐겁게 도전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수영을 다시 배운 일은 난관에 부딪힐 때 떠올릴 수 있는 소중한 경험으로 남겨졌다. 어려운 일이 있더라도 실패한 이미지 대신 당연히 잘하게 되는 나의 모습만을 떠올린다면, 허우적거리는 일은 재밌는 추억거리가 될 것이고 쓰러져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비록 또 물먹을 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