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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yden Aug 09. 2018

그곳은 생각보다 멀지 않았다

'빨리빨리'보다 중요한 것에 대하여

30분만, 딱 30분만 더 일찍 일어날 걸...


 게으름은 언제나 초조함이라는 꼬리를 달고 온다. 허둥지둥 세수를 하고, 아침은 먹고 가라는 부모님의 성화에 못 이겨 밥숟가락을 입에 문 채 외출 준비를 한다. 나 혼자 늦는 거라면 상관없다 쳐도, 오전 상담 약속이 잡힌 오늘 같은 날은 기다리고 있을 상대방을 생각하면 그만 아찔해진다. 집을 나서며 서둘러 스마트폰 길 찾기 앱을 켜고 버스정류장까지 남은 시간을 대충 계산해본다. 5분 30초. 걷는 시간을 좀 아껴서 뛰면 아슬아슬하게 늦진 않겠다. 뛰자! 아슬아슬하게 버스를 잡아탄다. 됐다! 이제야 한숨 돌리고 에어컨이 잘 나오는 빈 좌석을 찾아 무너지듯 앉는다. 초조했던 마음이 쑥 내려간다.


 그런데 웬걸, 더한 문제가 터진다. 버스를 운전하시는 기사님. 느려도 너무 느리게 운전하신다. 종종 운전대를 잡은 내 감에 비추어봤을 때 이건 아무리 빨리 잡아도 시속 40km를 넘지 않으리라 장담한다. 평소 교통사고 영상을 보며 늦더라도 첫째는 무조건 안전이지! 하고 외치고 다녔던 나였건만 오늘 같은 상황에서는 '조금 빨리 가면 안 되나..'하는 얄팍한 마음이 슬그머니 고개를 든다. 평일 오전이라 그런지 버스 기사님도, 승객들도 가든지 말든지 하는 시큰둥함으로 꽉 차있는 것만 같다. 기사님께 차마 빨리 가달라고 한 마디 하지 못하는 속만 시커멓게 태운다. '망했다. 늦으면 어떻게 사과해야 하나...' 대신 나오는 건 깊은 한숨뿐.

기사님, 제발 빨리 가주세요. / Indy Boys Inc.

 혹여나 하는 마음으로 스마트폰에게 물어봐도, 이 속도라면 이미 지각 당첨이란다. 그렇게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하릴없이 창밖만 바라보게 된다. 그 사이 세월아~ 네월아~ 가던 버스가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했다. 얼마나 늦었을까, 시계를 봤는데 어? 약속시간에서 빌딩 엘리베이터를 타고 상대를 만나기까지 충분한 시간인 5분이 남아있었다. 버스는 너무도 제시간에 맞게 목적지에 도착한 것이다. 겉으론 태연한 척 해도 속으로 얼마나 기사님을 원망했는데, 여전히 태연하신 기사님을 미안한 마음으로 흘끗 쳐다보고 내렸다. 뒤늦게 무안함이 밀려왔다. 다시 갈 길 가시는 버스기사님의 저 여유로움이 어쩐지 부럽기까지 했다. 그 뒤에는 모든 일이 조금만 늦는 것 같아도, 조금만 뒤처지는 것 같아도 불안해하는 내가 있었다.


 '남들 다 자기 분야에서 승승장구하는데, 나만 혼자 뭐 하고 있나..' 하는 자괴감이 마음을 지배할 때가 있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각자 다른 인생의 루트가 있고 각자에게 맞는 타임 존(Time-Zone)이 있다. 버스가 목적지에 늦게 도달한다고 노선을 갑자기 바꾸거나 앞서가는 버스를 이유 없이 추월하는 일이 없듯이, 남들과 다른 방식으로 살아온 내가 다른 사람들만의 성과를 가질 수 없는 노릇이다. 늦었다는 마음이 앞서 브레이크 없이 액셀러레이터를 밟기만 한다면 심각한 교통사고를 마주칠 각오를 해야 할지도 모른다.

KEEP GOING!! / www.keepcalm-o-matic.co.uk

 중요한 건 오늘 만난 버스 기사님과 같은 태도일 것이다. 버스기사님은 속도의 흐트러짐 없이 묵묵히 루트를 밟으셨다. 안전하게 주위를 살피면서, 급하게 빨라지거나 느려지는 일 없이 정해진 코스를 주행하셨고 버스는 생각보다 이른 시간에 목적지에 도착했다. 시계보다 나침반을 보라는 말이 있다. 주변 상황이나 사람의 말에 동요하는 일 없이 방향을 잘 확인하며 가야 할 길을 멈추지 않고 가다 보면 정확한 시각에 목적지를 밟을 수 있을 것이다. 잠깐 눈을 마주쳤을 뿐인데, 짐짓 평화로워 보이는 버스기사님의 표정이 내내 잊히질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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